지난해 임대 계약을 맺은 서울 아파트 월세 세입자 10명 중 4명가량은 월 100만 원 이상의 고액 월세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시행 첫해인 4년 전에 비해 10%포인트 가까이 비중이 확대됐습니다.
500만 원 이상의 초고액 월세를 지불하는 임차인의 비중도 4년 전보다 많아졌습니다.
전세의 월세화와 월세의 고액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외국계 자본이 유입되는 등 임대주택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오늘(7일)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날까지 신고·취합된 지난해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 23만 8천548건 가운데 100만 원 이상 고액 월세(보증금 제외)를 지불한 경우는 3만 9천 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전체 전월세 계약의 16.3%로, 전세를 제외한 월세 계약(10만 206건) 중에서는 38.9%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임대차 2법 시행 첫해인 2020년 100만 원 이상의 월세가 전체 월세 계약의 29.3%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해 4년 만에 10%포인트 가까이 비중이 확대됐습니다.
월세액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100만 원 이상∼500만 원 미만의 월세를 납부한 임차인은 전체 월세 세입자 중 37.5%에 달했습니다.
이는 지난 2020년(28.9%)에 비해 비중이 8.6%포인트 증가한 것입니다.
이중 100만∼300만 원의 월세 임차인은 2020년 27.0%에서 지난해는 32.9%로 늘었고, 300만∼500만 원 월세 계약도 같은 기간 2.0%에서 4.6%로 증가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4인 가구 기준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세전)은 824만 8천 원, 1인 가구는 447만 6천 원 선인 것을 감안하면 근로소득의 많은 부분이 월세로 지출되는 셈입니다.
수백만 원대의 고액 월세 거래는 강남 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지역에 주로 포진했습니다.
초고액 월세 계약도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 500만 원을 초과하는 초고액 월세 계약은 1천404건으로 전체 월세 계약의 1.4%에 달했습니다.
2020년에는 0.4%에도 못 미쳤는데 4년 새 1%포인트 늘었습니다.
대부분 법인이나 외국계 임원·연예계 종사자 등의 계약으로 추정되는 1천만 원 이상 초고액 월세 거래는 179건이었습니다.
성동구 성수동 아크로서울포레스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한남·한남더힐, 성수동 갤러리아포레·트리마제 등의 펜트하우스에서 2천만∼3천만 원대의 월세 계약이 이뤄졌습니다.
고액 월세 거래가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은 2020년 7월 31일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급등한 영향이 큽니다.
오른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해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후 금리 인상과 전세대출 규제가 강화된 사이 전셋값이 급락하고 역전세난, 전세사기 문제가 심화하면서 월세화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전세사기 문제가 컸던 연립·다세대(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은 자발적 전세 기피 현상까지 더해져 월세 계약이 대세가 됐습니다.
국토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전체 주택 월세 비중은 57.6%로 최근 5년 평균치(46.2%)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이중 아파트 월세 비중은 44.8%로 절반이 안되지만, 전세사기 피해가 컸던 연립·다세대 등 비아파트는 월세 비중이 69.7%에 달했습니다.
빌라 10건의 임대차 계약 중 7건이 월세 계약인 것입니다.
아파트 월세 비중이 5년 평균(39.3%)에 비해 5.5%포인트 늘어난 반면, 비아파트는 직전 5년 평균(52.6%) 대비 17.1%포인트가 급증했습니다.
월세가 확산하고 금액도 점차 고액화되면서 최근 주택 임대시장에는 해외 투자은행과 부동산 회사 등 외국계 자본 유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간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전세제도로 인해 매달 임대료를 내고 거주하는 기업형 임대사업이 활성화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외환위기 이후 유입된 해외 투자자본이 주로 오피스 등 상업용 부동산 거래에 치중한 반면, 최근 들어서는 주택 임대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미국계 투자회사 모건스탠리나 미국 사모 펀드 KKR, 영국 자산운용사 ICG 등이 대표적입니다.
미국 부동산 개발회사 하인즈를 비롯해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 등 글로벌 연기금까지 국내 임대시장 진출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들은 국내 자산운용사, 임대주택관리 업체 등과 손잡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낡은 도시형생활주택(도생)이나 오피스텔, 호텔, 미분양 주택 등을 싸게 사들여 리모델링한 뒤 월세를 놓거나 호텔형 단기 임대주택 등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 강동구 길동에서 입주자를 모집 중인 '지웰홈스 라이프 강동'은 지난해 모건스탠리가 국내 그래비티자산운용과 함께 공매에 나온 도시형생활주택 및 오피스텔 '한미스카이캐슬'을 133억 원에 낙찰받아 리모델링한 것입니다.
이월무 미드미디앤씨 대표는 "현재 시중에 공급되는 기업형 임대주택은 주변 도생·오피스텔 등에 비해 임대료가 최소 10∼20% 이상 비싸지만 임차 수요가 충분히 있다고 보는 것 같다"며 "전세사기 여파로 높은 임대료를 내더라도 보증금이나 월세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기업이 집주인'인 임대주택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동산 업계는 앞으로 국내 주택 임대시장에 외국계 자본의 유입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부도 판을 깔았습니다.
국토교통부는 20년 이상 기업형 장기임대 공급을 확대하기로 하고,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 중입니다.
올해부터 2035년까지 10년간 10만 호 이상의 기업형 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외국계 투자회사들과 달리 아직 국내 건설사나 개발회사, 금융사 등은 반응이 시큰둥합니다.
최소 20년 이상 투자자금이 묶이는 데다 매매차익 없이 임대 수입만으로 수익 구조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임대료를 적정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부지 매입을 포함한 사업비를 줄여야 하는데 높은 땅값과 공사비가 걸림돌입니다.
정부는 기업형 임대의 첫 단계로 고령자 맞춤형 20년 장기민간임대주택인 '실버스테이'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년 기업형 임대 도입을 위한 관련 법 개정 처리가 지연되는 가운데 실버스테이는 법 개정 없이 시행규칙의 공공지원민간임대의 임대 기간을 10년에서 20년으로 바꿔 사업 추진이 가능합니다.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해 12월 진행한 구리갈매역세권 실버스테이 시범사업 공모에는 중견 건설사와 개발회사·금융기관 등 27개 사가 신청하는 등 일단 기대 이상의 관심을 보였습니다.
정부는 LH 공공택지 외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출자·지원하는 민간 제안 공모 임대주택 사업도 연내 1천500호가량 추진할 계획입니다.
민간 택지를 활용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임대료 수준입니다.
정부는 주변 노인복지주택 시세의 90% 선에서 실버스테이 임대료를 책정한다는 방침이지만, 주로 지자체가 운영하는 노인복지주택들은 임대료가 매우 저렴해 이를 기준으로 민간의 수익성이 보전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전문가들은 최근 가파른 월세화로 기업형 임대 시장이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은 마련됐지만,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시장 활성화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주거용부동산팀장은 "기업형 임대의 성패는 결국 수익률에 달려있는데 땅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공택지나 미분양 주택, 경·공매를 통해 사업 부지를 최대한 싸게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기업형 임대가 시장에 정착한다면 일반 아파트도 월세 전환 속도가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