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프리미엄

"동맹마저 위협하는 트럼프, 1919년에서 실마리를 찾다"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Why Does Trump Threaten America's Allies? Hint: It Starts in 1919. by Jennifer Mittelstadt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 제니퍼 미텔슈타트는 럿거스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다. 미국 역사 속 국가, 군, 정치 사조를 연구하고 가르친다.

미국이

파나마 운하의 통제권

을 다시 가져오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을 때 지인과 동료들은 내게 질문을 쏟아냈다. 미국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지역에 대해 100년도 더 전에 내줬던 통제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이 뜬금없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가? 아무리 비싼 운하 이용료나 중국에 불만이 쌓였다 해도 어떻게 엄연한 주권 국가의 영토를 미국에 양도하라고 대놓고 위협할 수 있는 거지? 우리가 보지 못하는, 하지만 지금 상황을 설명해 줄 더 큰 그림의 무언가가 있는 거야?

나는 보수주의 정치 사조와 세계관이 20세기 외교 정책에 미친 영향에 관해 지난 7년여간 집중적으로 연구해 왔다. 아마 그 사실을 알던 친구들이 나라면 뭔가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을까 기대하고 내게 질문을 던진 것 같다. 하지만 도서관과 자료실에서 보낸 수많은 밤들이 무색할 만큼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관과 그 역사적 뿌리에 관해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 답답할 뿐이다.

역사 문헌들은 트럼프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학자들은 대개 보수주의자를 세 부류로 나눈다. (물론 이 세 부류는 서로 겹칠 때도 많다.) 반공주의자, 강경 국방론자, 그리고 신보수주의(네오콘) 국가 건설론자다. 이 분류는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를 그럭저럭 설명하기도 하지만, 본질을 잡아내지 못할 때도 많다.

트럼프는 자신의 정적들을 공산주의자나 빨갱이라고 부르며 원색적으로 비난했지만,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과는 기꺼이 포옹했다. (물론 나중에는 또 태도를 바꿔 비난했지만.) 그는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뽐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앞에서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누차 말했지만, 끝내 철군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기분 내키는 대로 변덕이 심하고, 또 국가 간 외교마저 철저히 비즈니스로 인식하는 독특한 성향에 일부러 예측하기 어렵게 돌발 행동을 일삼는 트럼프는 한마디로 어떻다고 규정하고 분류하기 너무 어려운 인물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대신 우파의 인물을 묘사하는 데는 거의 쓰인 적 없는, 무려 75년 된 낡은 기준을 꺼내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쓰는 언어를 바탕으로 그들은 트럼프를 고립주의자(isolationist)로 분류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몇몇 보수주의자들과 비슷한 부류로 묶은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트럼프는 고립주의자라면 절대 하지 않은 말과 행동을 잇달아 했다. 캐나다에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면 여러모로 좋을 거라고 말하더니, 그린란드를 사들이겠다고 하고, 이어 파나마 운하의 통제권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대놓고 미국의 영토를 확장하는 데 진심으로 보이는 사람을 고립주의자라고 부르는 건 아무래도 어폐가 있다.

트럼프의 본능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사조가 있었다. 좀 오래된 역사를 들춰봐야 해서 아직 많이 연구되진 않았지만, 미국 우파들이 일상적으로 하던 말과 행동을 담은 먼지 쌓인 신문과 자료집 속에 트럼프의 외교 정책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단서가 숨어 있었다. 그는

주권주의자(sovereigntist)

다.

미국 주권주의 정치의 기원을 찾으려면 100년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확히는 심각한 위기이자 가능성의 순간이던 1919년에 주목해야 하는데, 당시 세계는 (그때는 끝난)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부상하던 세계화에 대한 일종의 국민투표를 하고 있었다. 점점 더 서로 연결되던 국가들은 전쟁이 끝나면서 무역과 이민이 급작스레 중단돼 흔들리고 있었다. 동시에 제국들이 붕괴하면서 민족주의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 번성했다. 어떤 국가는 소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완전히 새로운 국가들이 우후죽순처럼 태어났다.

이런 극적인 변화의 한가운데서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형태의 초국가적 정부를 구성하는 논의가 시작됐다. 외교관과 법률가들이 토대와 요강을 짜는 동안 국민국가와 주권의 목적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세계 무역과 이민을 지지하던 사람들, 식민지 독립운동가, 흑인 국제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 기독교인들은 한목소리로 세계적인 통치 형태의 등장을 반겼다. 이들은 자결권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공법, 완화된 민족주의에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국제연맹을 결성하려는 시도를 경멸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이들이 바로 미국 주권주의 운동의 원조다. 오늘날 발호한 주권주의자들에게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도 이들이다. 1919년 "화해 불가론자(irreconcilables)"로 알려진 상원의원들이 미국의 국제연맹 가입을 가로막았다.

이 화해 불가론자들을 지원한 건 국제연맹이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통치권을 빼앗아 갈 거라고 믿는 애국주의 단체, 재향군인회, 개신교 근본주의자들로 구성된 풀뿌리 운동 조직이었다. 이들은 국제연맹이 초국가적인 세계 정부가 미국 헌법을 대체하고, 미국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후퇴시키며, 미개하고 백인도 아닌 데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국가가 미국 시민에게 권력을 행사하도록 길을 터주는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연맹에 비판적이던 헨리 캐봇 롯지 상원의원과 뜻을 같이하던 루이스 쿨리지는 이렇게 말했다. 

한 국가의 안녕이 국제주의에 종속되게 생겼습니다. 우리는 국민성의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불씨를 지켜야만 합니다.

이들은 국제 관계에서 미국의 주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엔 전부 백인이던 미국인 지도자들에게 익숙한 미국의 전통적인 통치 방식을 고수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앵글로색슨 혈통의 자치권에 특히나 예민하게 반응하던 이들은 국제적인 공조가 개인의 주권은 물론이고, 국가의 주권마저 위협할 거라고 믿었다.

주권주의 정치 운동은 새로운 형태로 변모한 자유주의와 좌파 국제주의에 대응해 진화하면서 지속됐다. 1930년대 들어 주권주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운동에 동참했는데, 미국 우선주의자들은 연합군 측에 서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데 극렬히 반대했다. 고립주의와는 분명 결이 달랐다.

주권주의자들은 파시즘의 반국제주의를 공개적으로 옹호했고, 스페인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일으킨 민족주의 반란을 지지했으며, 붕괴하는 국제연맹을 조롱하던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파시스트들과 뜻을 같이하고, 심지어 이들에게 환호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첫 부인인 이바나의 결혼에 주례를 선 노만 빈센트 필 목사가 주권주의 운동 초기에 가담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주권주의자들은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에 맞서는 오랜 싸움을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소년기인 1950년대, 유엔에 대적해 싸우는 과정에서 국제주의에 반대하는 여러 단체와 사상적 지도자들이 나타났다. 이 가운데는 존 버치 소사이어티(John Birch Society)처럼 오늘날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단체도 많다. 이들은 국제사법재판소를 세계 법정(World Court)이라 부르며 미국이 절대로 여기에 참여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신인 무역 및 관세 일반협정(GATT)에도 반대했다.

주권주의자들의 눈에 국제기구는 그저 미국의 주권을 제약하는 도구로 비쳤을 뿐이다. 그들은 유엔의 규약, 기구들이 공산주의자와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에 회원국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백인, 기독교적 가치를 중심으로 세워놓은 문명의 권위를 갉아먹을 거라고 우려했다.

훗날 주권주의자들은 로디지아(Rhodesia)를 향한 국제 제재에 맞서 싸웠다. 당시 우파 변호사이자 라디오쇼 진행자이던 클라렌스 매니언은 영국계 백인들이 흑인들을 식민 통치하던 아프리카의 내륙 국가 로디지아를 "용맹한 작은 나라"로 추켜세우며, 로디지아에서 백인의 통치를 지켜내는 싸움을 미국의 독립운동에 비유했다.

주권주의자들은 이어 1965년에는 거의 40년 만에 처음으로 이민의 문호를 개방한 법인 이민 및 국적법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이들은 새로운 이민법에 궁극적으로 국경을 철폐하고자 하는 국제주의자들의 저의가 숨어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논란이 등장한다. 1950년대와 60년대, 파나마 국민들은 유엔 헌장과 영토 분쟁에 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례를 근거로 미국이 여전히 운하를 통제하고 있는 건 부당하다며, 유엔에 운하의 통제권을 파나마로 이양하는 절차를 주관해 달라고 요청한다. 주권주의자들은 이를 미국의 영토를 부당하게 훔쳐 가려는 계획이라며 맹비난했다. 뉴욕 연맹의 패트릭 헨리는 파나마 운하가 "의사당 건물의 지붕과 국가와 꼭 마찬가지로 누가 뭐래도 우리 땅"이라고 말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걸쳐, 범아메리카 정책위원회와 미국 애국주의자 연맹 같은 단체들은 파나마의 요구를 들어주고 운하의 통제권을 양보하려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대통령을 줄기차게 비난했다. 하지만 이들은 끝내 패배했다. 1973년 파나마 지도자 오마르 토리호스는 파나마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개최, "내 나라 심장부의 작은 식민지"에 대한 청문회를 열어 결정타를 날렸다. 대규모 시위와 함께 파나마에 운하 통제권을 넘기는 협상에 즉각 임하라는 미국을 향한 압력도 거세졌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마침내 1977년,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넘겨주는 조약에 서명했다. 주권주의자들은 격분했다. 수십 년간 쌓여온 이들의 분노에 찬 주장은 마침 떠오르던 대선 후보 로널드 레이건을 비롯한 신보수주의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주권주의 운동은 1980년대에도 명맥을 이어간다. 이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향한 유엔의 제재를 막아섰고, 레이건 대통령을 부추겨 유엔 교육·과학·문화위원회에서 탈퇴했다. 위원회는 이름대로 문화와 교육을 통해 평화와 인권을 증진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기구다.

냉전이 끝나자, 이들의 '성전'은 더 중요해졌다. (이제 소련이 사라졌으니)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새로운 세계 질서"로 명명한 세상에서 물리쳐야 할 적은 국제주의자들만 남았다. 미국은 다자 간 무역 협정을 맺고, 새로운 신자유주의 합의를 끌어냈고, 소말리아나 이후 발칸반도에서 국제 평화 유지 업무를 주도했다.

이것이 바로 주권주의자들이 늘 두려워하던 일이다. 이들은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의 움직임에 저항하면서 세계화를 향한 불만과 반발을 자양분으로 삼아 발호할 포퓰리즘 지도자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트럼프는 이를 활용해 인기를 얻고 성공한 정치인이다. 국제기구를 위시한 거버넌스와 국제 질서 전반을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이들과 이를 미국의 주권을 내주는 굴욕적인 조치로 여기는 이들 사이의 반복되는 싸움을 중심에 놓고 보면, 파나마 운하를 다시 미국의 영토로 복속하겠다는 트럼프의 위협은 주권주의 운동이 오늘날 우파에 얼마나 큰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트럼프는 주권주의자들이 기다려온 메시아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파나마 운하 의제를 던지기 한참 전부터 트럼프가 주권주의자들의 숙원을 풀어주는 데 앞장서리란 징조는 분명했다. 첫 임기 4년 동안, 또 재선에 실패한 뒤 4년간 그는 끊임없이 유엔과 나토, 그리고 무역과 기후에 관한 국제협약을 싸잡아 비난했다. 모두 주권주의자들과 정확히 생각이 일치했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이나 이탈리아의 조르지아 멜라니 등 국제기구에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지도자들과 트럼프가 가까워진 것도 이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예측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주권주의가 트럼프가 해온 말과 행동의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고 해도 다른 데 정신이 팔리거나 쉽게 마음이 바뀌곤 하는 트럼프의 성정을 고려할 때 주권주의의 가치에 별 관심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구성원 중에는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처럼 주권주의 관점과 접근법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주권주의자들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다. 프로젝트 2025는 "우리의 헌법과 법치, 소중한 국민 주권을 훼손하는 모든 국제기구와 협약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다. 폐기되어야 마땅하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댓글
댓글 표시하기
스브스프리미엄
기사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