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초상화 모신 신성한 곳…경복궁 선원전 편액 일본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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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선원전 편액

역대 왕의 초상화를 모시며 조선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궁궐 건물의 '이름표'가 일본에서 돌아왔습니다.

일제강점기 궁궐이 간직한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흔적으로 주목됩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지난해 라이엇게임즈의 후원을 받아 경복궁 선원전(璿源殿)에 걸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편액을 환수했다고 오늘(3일) 밝혔습니다.

궁궐과 같은 건물 지붕 위에 얹는 장식 기와인 잡상(雜像) 1점도 함께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편액은 종이나 비단, 널빤지 등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쓴 액자를 일컫습니다.

보통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두는데 건물의 규모와 격식에 맞게 다양하게 제작됐습니다.

이번에 고국 땅을 밟게 된 편액은 가로 312㎝, 세로 140㎝ 크기로 큰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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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서 '구당서'(舊唐書)에서 왕실을 옥으로 비유한 점에서 유래해 '옥의 근원'이라는 뜻을 가진 '선원'(璿源) 글자가 검은 바탕에 금빛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테두리를 연장한 봉에는 구름무늬를 조각하고 부채, 보자기 등 보물 문양을 그려 넣어 과거 격식이나 위계가 높은 건물에 걸렸으리라 추정됩니다.

국가유산청과 재단은 전문가 평가와 문헌 조사 등을 거쳐 이 편액이 조선시대 궁궐 안에서도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졌던 선원전 편액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선원전은 역대 왕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을 봉안한 건물로 왕이 분향, 참배 등 의례를 거행한 곳입니다.

충과 효를 통치의 근본으로 삼은 조선 왕실의 '뿌리'이자 중요 건물입니다.

실제 조선 왕실은 경복궁, 창덕궁,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 선원전을 각각 뒀는데 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옮길 때는 어진도 함께 옮겨 지극한 예를 갖춰 모셨습니다.

국가유산청은 "각 궁궐의 선원전 건립 및 소실과 관련한 정황, 기록 등을 고려하면 1868년 재건된 경복궁 선원전에 걸렸던 편액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1865∼1868년 경복궁을 다시 짓는 과정을 기록한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에 따르면 경복궁 선원전은 1868년 재건했는데, 그때 걸어둔 편액일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1444년 처음 지은 경복궁 선원전과 1897년 건립된 경운궁 선원전 편액은 화재로 소실됐고, 창덕궁의 신 선원전에는 1901년 재건한 경운궁 선원전 편액만 전합니다.

창덕궁의 옛 선원전의 경우 현재 편액이 남아있지 않으나 편액을 거치하는 철물 흔적의 위치와 환수 유물의 크기 등을 비교한 결과, 맞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편액에 남아있는 글씨 또한 경복궁 선원전 편액이라는 추정에 힘을 싣습니다.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 각종 행정 사무 등을 기록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따르면 1868년 재건한 경복궁 선원전 편액은 서승보(1814∼1877)가 글씨를 썼다고 돼 있습니다.

글씨 필획 등 서체 특성을 분석한 결과, 서승보의 글씨로 추정된다고 국가유산청은 전했습니다.

국가유산청은 "편액에 사용된 안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1900년 경복궁과 창덕궁 선원전의 공사를 기록한 의궤에 적힌 재료와도 대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국가유산청과 재단은 2023년 일본의 한 경매에 유물이 나온 사실을 확인해 추적에 나섰습니다.

경매사 측은 유물이 '19세기 경복궁 선원전의 편액'이라며 일제강점기 초대 조선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1852∼1919)와의 연관성을 언급했습니다.

경매사는 데라우치 총독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당시 "경복궁 일부 (건물을) 철거하고 이전했다"며 "1942년 태풍으로 건물이 파괴됐으나 철거 작업을 한 직원이 보관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소장자 측에 조선 왕실의 문화유산인 선원전 편액이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당위성을 전달하고 적극적으로 설득해 협상했다"고 말했습니다.

선원전 편액이 일본으로 어떻게 반출됐는지는 조사가 더 필요할 전망입니다.

2020년 국립고궁박물관이 펴낸 '조선 왕실의 현판 Ⅰ' 자료에 따르면 경복궁 선원전은 1897년 고종(재위 1863∼1907)이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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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선원전과 부속 전각은 1932년 서울 장충동에 있던 박문사(博文寺)를 짓는 데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박문사는 조선총독부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절입니다.

1966년 국립종합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선원전 권역의 전각 9동이 헐리기도 했는데,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이 있는 곳이 경복궁의 선원전 권역입니다.

경복궁 선원전 편액은 라이엇게임즈의 도움으로 고국 품으로 돌아온 7번째 유산입니다.

라이엇게임즈는 2012년 국가유산청과 협약을 맺은 이래 보물로 지정된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 책봉 죽책(竹冊)', '석가삼존도' 등의 환수를 도왔고 이번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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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선원전

국가유산청과 재단은 이달 2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편액 실물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국가유산청 측은 "선원전 편액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한 뒤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이라며 "향후 학술 연구·전시 등 다양하게 활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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