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노동법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 서울고용노동청 광역근로감독과는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김앤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진행했다. 로펌 업계 최초로 진행된 근로감독으로 알려졌다. 김앤장의 직원이었던 미국 변호사가 노동청에 청원을 넣은 결과다. 해당 직원은 김앤장이 노동법을 지키지 않은 채 어쏘 변호사(Associate lawyer, 로펌에 고용되어 파트너 변호사의 지시를 받아 일하는 1~9년차 정도의 변호사)들에게 과중한 업무를 부여하고 있다며 노동청에 근로감독을 요청했다. 서울고용노동청은 7개월 간의 조사 끝에 김앤장이 근로기준법 제17조와 제93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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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내 1위' 로펌 근로감독…시정 지시에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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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이 위반한 내용은 노동법 중 기본적인 부분이다. 근로조건을 근로계약서에 명시하고 근로자에게 나눠주는 것(제17조), 근로조건이 적힌 취업규칙을 작성해서 노동관서에 신고하는 것(제93조)이다. 근로계약서에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 핵심적인 근로조건을 써서 나눠주는 건 편의점이나 중국집 등 5인 미만 사업장도 해야 하는 의무다. 취업규칙을 써서 게시하는 건 10인 이상 사업장이면 지켜야 할 의무다.
또한 노동청은 김앤장에 주52시간제와 관련해 변호사 등 전문직군의 근로시간 관리 체계와 운영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김앤장을 포함해 수백 명이 넘는 어쏘 변호사를 고용한 대형로펌은 2019년부터 주52시간제 적용대상이 됐다. 광장, 태평양, 세종, 율촌, 화우 등 김앤장을 뺀 다른 대형로펌들은 2019년 전후 재량근로제를 도입했다.
재량근로제는 근로시간 계산의 특례를 줘 주52시간제를 사실상 뛰어넘도록 하는 제도다. 근로시간 규제의 예외를 주는 것인 만큼 법에서 규정한 업무(신기술 개발 연구원, 기자, PD, 회계, 법률 업무 등)로 제한하고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다른 대형로펌들은 어쏘 변호사들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쳐 재량근로제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주52시간제에 대처해왔는데, 김앤장은 이런 절차 없이 주52시간제 자체를 무시하고 어쏘 변호사들이 연장, 야간 근로를 하도록 해온 것이다.
밤샘 근무하는 어쏘 변호사들김앤장의 어쏘 변호사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주 60시간에서 70시간 가까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매일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일요일 오후에 출근해 잔업을 하느라 주말 이틀을 쉰 적은 거의 없다.
김앤장의 한 어쏘 변호사는 "평균적으로 밤 11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퇴근한다. 건강이 안 좋아지는 걸 굉장히 많이 느낀다. 운동이나 치료가 필요하다고 느껴도 낼 시간이 없다. 실제로 건강 문제 때문에 퇴사하는 변호사들도 있다. 업무가 과중해 스트레스가 많아 정신과를 다니는 변호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로펌 변호사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타임(의뢰인에게 수임료를 청구하기 위해 작성하는 근무시간)이 40시간 정도인데 실제로는 1.5배가 소요돼 주60시간은 넘게 일한다. 한창 바쁠 때는 잠을 거의 못 자면서 개발자들 '크런치 모드'하는 것처럼 일을 한다. 로펌 경영진이 경영 관리를 잘하지 못한 비효율성을 근로자(어쏘 변호사) 개개인이 건강으로 갚아 나가고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어쏘 변호사들이 심한 업무 강도 탓에 법정근로시간인 주52시간을 훌쩍 넘겨 일하는 구조에서, 다른 대형로펌은 형식적이나마 어쏘 변호사들의 동의를 받아 재량근로제를 도입해 법 테두리 내에서 일을 시켜 왔다. 하지만 김앤장은 주52시간제 도입 이후 5년 동안 법 밖에서 어쏘 변호사에게 일을 시켜온 사실이 이번 근로감독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5년 혹은 50년 간의 침묵주52시간제가 도입된 지 5년이 지났는데 김앤장은 어떻게 이 제도와 무관하게 일을 시킬 수 있었을까. 또한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만들어진 지 50년이 지났는데, 현재까지 노동법에서 규정한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운영될 수 있었을까. 이번 근로감독이 이례적으로 로펌업계에 대해 이뤄진 만큼, 김앤장의 근무 환경에 대해 외부에서 감시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50년간 이번 노동청 청원이 있기 전까지는 내부 고발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먼의 'EVL 모델'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국가나 기업,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행동 방식을 분석한 이론이다. 구성원들은 공동체에 대한 불만이 생겼을 때 세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공동체를 떠나거나(Exit) 항의하거나(Voice) 충성하거나(Loyalty). 김앤장의 어쏘 변호사에 대입해보면 퇴사를 해 기업의 사내변호사나 개업을 하는 길을 택하거나(Exit), 김앤장에서 항의의 목소리(Voice)를 내어 근로조건을 개선하거나, 김앤장에 남아 회사에 충성(Loyalty)하며 파트너 변호사가 되는 길이 선택지에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떠나거나, 충성하는 선택지만 있을 뿐 목소리를 내는 선택은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대형로펌 어쏘 변호사는 "4~5년차들은 회사에서 연수를 선정해서 외국 유학을 보내주기 때문에 회사 눈치를 본다. 7~8년차가 되면 파트너 심사를 앞두고 있어서 회사에 목소리 내기는 쉽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노조가 목소리를 내어 회사에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대형로펌 변호사들에게 기업별 노조가 없을 뿐 아니라 어쏘 변호사들의 협회 같은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쏘 변호사들이 파편화되어 있어 뭉쳐서 소통하고 목소리를 낼 공간이나 조직은 없었기 때문에, 주 60시간이 넘는 과도한 근로시간에도 어쏘 변호사들은 회사와 교섭할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 스트레스와 과로로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쳐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경우, 단지 개인적으로 퇴사하는 길을 선택해온 것이다.
법조계 변화와 터져 나온 목소리최근 들어 긴 침묵이 깨졌다. 대형로펌들은 지난 2019년을 전후해 재량근로제를 도입했다. 5년 기한으로 도입한 경우가 많아 올해 초 다시 어쏘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재량근로제에 동의하는지 합의가 시작됐다. 재량근로제 동의 투표를 시행한 광장과 율촌에서는 반대표가 과반을 넘는 결과가 한 차례씩 나왔다. 어쏘 변호사들 중 다수가 주52시간제를 넘어서는 업무를 시키기 위해서는 처우를 더 개선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수년간 이어진 과로에도 침묵하던 어쏘 변호사들이 지금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법률 산업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3년 1만 5,900명이었던 변호사 수는 2023년 3만 3천여 명으로 늘었다. 사법고시에서 로스쿨로 변화하면서 변호사 숫자가 10년 새 2배가 넘게 늘어난 것이다. '네트워크 로펌'의 등장도 대형로펌을 위협했다. 전국 주요 지역에 사무소를 여러 개 내고 운영되는 이 로펌들의 매출액은 수년 만에 대형로펌 수준으로 따라왔다. 변호사는 많아지고, 대형로펌은 떠오르는 로펌에 위협받으면서 재야 법조계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 결과 어쏘 변호사 처우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됐다. 임금상승 폭이 예전에 비해 더뎌졌고, 당연시 됐던 외국 유학도 보장되지 않게 됐다. 전문직의 상징과 같았던 개인 사무실도 비용 절감을 위해 줄이면서 한 대형로펌에서는 4명이 하나의 방을 쓰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최근 들어 10대 대기업의 연봉은 대체로 꾸준히 올랐다. 대기업 직원이 주52시간을 준수하면서도 연봉 1억 원을 넘게 받는 사례들이 생겨나자 어쏘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생겨난 측면이 존재한다. 한 김앤장 어쏘 변호사는 "굳이 이렇게까지 건강을 갈아 넣어가면서 부당한 대우를 참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이탈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불만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로펌의 어쏘 변호사는 "선배 세대 변호사들이 받았던 급여는 사회 전체와 비교해 볼 때 굉장히 높았다. 그런데 지금 세대 변호사들은 대기업 다니는 직원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갭이 줄어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법률 산업의 변화와 맞물려 어쏘 변호사들의 연봉과 복지 등 처우가 예전만 못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대형로펌에서 어쏘 변호사들은 '주52시간제를 준수하라'는 주장을 지렛대로 삼아 회사를 상대로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O냐 X냐…'오징어게임' 같은 투표다른 빅펌들과 달리 지난 5년간 재량근로제 도입 없이 주52시간제를 지키지 않은 김앤장도 근로감독이 진행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근로감독 결과가 통보된 뒤 지난 1월 초쯤, 김앤장은 어쏘 변호사들에게 재량근로제에 대해 동의 여부를 묻는 절차를 진행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불투명하고 일방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앤장의 한 어쏘 변호사는 "시니어(파트너) 변호사가 어쏘(주니어) 변호사 10여 명을 불러놓고 보는 앞에서 동의 여부를 기명으로 투표해야 했다. 투표 또한 재량근로제 합의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합의를 근로자 대표단에 위임할 것인지 묻는 것이었다. 어쏘 대표단이라며 뽑은 5명은 어쏘 변호사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회사가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지정한 것인데 일종의 '어용 노조' 아닌가"라고 밝혔다.
어쏘 변호사들은 회사에 잘 보여야 외국 유학을 갈 수 있고 이후 파트너 변호사가 될 수 있는 회사원의 입장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인데 상사가 보는 앞에서 본인의 투표 결과가 공개되는 O/X 선택지에서 반대표를 던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투표 결과 330여 명의 어쏘 변호사 중 80%는 권한 위임에 찬성을 했고 20%는 반대에 투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대형로펌의 경우 최근 재량근로제 동의 투표 과정에서 임금이나 식대 등 처우를 높여달라는 협상과정이 어느 정도 존재했다. 하지만 김앤장의 경우 재량근로제 동의 과정에서 처우 개선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어쏘 변호사들의 교섭력 부재를 보여준다.
한 로스쿨 커뮤니티에는 김앤장의 이러한 동의 과정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2>에 빗댄 글도 나왔다. 오징어게임에서 O를 누르면 더 많은 돈을 얻지만 건강(목숨)을 잃을 수 있고, X를 누를 경우 건강을 지키되 돈은 적당히 얻는 데서 만족하는 선택이라는 점을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는 O나 X 어떤 선택을 하든 승자는 없었고, 주최 측이 짜놓은 구조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김앤장의 해명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 해"취재 과정에서 김앤장 측의 요청에 따라 40분 가까이 해명을 들었다.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주52시간제를 준수하지 않고,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을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것에 대해 김앤장 측은 "법이 변호사의 프로페셔널한 업무 방식을 따라가지 못 하는 면이 있다"며 "변호사들은 고객의 의뢰에 따라 업무를 자율적으로 수행하다보니 출근과 퇴근 시간을 명시하기 어렵다. 때문에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에 소정근로시간을 명시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른 로펌들처럼 재량근로제를 도입해 법 테두리 안에서 주52시간을 넘겨 일하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김앤장 측은 "재량근로제 도입도 검토를 했지만, 자체적으로 어쏘 변호사 인력을 더 뽑고 일을 골고루 배분하는 방식을 통해 변호사들도 성장하고 근무시간도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근로감독 이후에 재량근로제에 대한 동의를 묻는 과정이 일방적이었다는 질문에 대해서 김앤장 측은 "회사가 신망이 높은 어쏘 변호사들을 선정해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법에도 재량근로제 동의를 묻는 방식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규정된 바가 없다"고 답했다.
김앤장의 해명을 들어보았지만 다른 대형로펌 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마저 행여 법을 위반할까 신경 써서 관리해 온 내용을 김앤장만 사실상 무시해온 것에 대해 완전히 해소가 되지는 않았다. 바꿔서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만약 김앤장이 다른 기업에 노무 관련 자문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근로자 수백 명이 넘는 기업을 상대로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주52시간제도 지키지 않고 자체적인 노력을 하면 된다'고 법률 자문을 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변호사는 근로자일까?변호사의 업무방식과 주52시간제 관련해서 두 가지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첫 번째는 변호사가 근로자가 맞느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주52시간제가 잘못된 정책이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우선 변호사가 근로자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판례가 있다. 2012년 대법원은 회사 지분을 소유하지 않은 파트너 변호사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2012다77006)한 바 있다.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은 대형로펌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파트너 변호사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보고 과로사를 인정(2022구합82813)한 바 있다. 주당 평균 56시간을 일해 온 파트너 변호사에 대해서도 과로와 근로자 여부를 법원이 인정한 만큼, 종속적인 관계에서 일하는 어쏘 변호사가 근로자로 인정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주 60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과로임은 부연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우리 법은 연봉이 높다는 것을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다. 고연봉자라 하더라도 스스로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통제할 만큼의 교섭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근로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형로펌의 어쏘 변호사들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주52시간제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법이 최장 근로시간을 규제하는 목적이 존재한다고 답할 수 있다. 국내 노동법이 근로시간을 규제하는 목적은 고용을 창출하고 건강권을 확보하는데 있다. 풀어서 설명하면, 한 사람이 오래 일할 것을 두 사람이 짧게 일하도록 해서 일자리를 나누도록 권장한다는 뜻이다. 또한 근로자가 임금을 많이 얻기 위해서, 혹은 회사에서 시키는 과도한 업무를 모두 수행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일하며 건강을 해치는 것을 법으로 막는다는 의미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주52시간제 도입 이전에도 주68시간의 최장 근로시간 규제는 존재해왔다.
최근 들어 고연봉 전문직을 대상으로 최장 근로시간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경영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의 제도를 예시로 드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이라는 이름으로 관리직, 운영직, 전문직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를 제외하는 제도가 있다. 그런데 미국은 일반 근로자도 법정 근로시간을 통해 근로시간 총량을 제한하지 않는다. 다만 주 40시간 이상의 경우 1.5배의 할증 임금을 주도록 노동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근로시간 총량 제한이 없는 만큼 미국 제도는 한국과 단순 비교하거나 도입을 논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의 노동법은 독일 노동법을 계수한 일본 법의 영향을 받은 만큼, 일본과의 비교가 더 적합할 수 있다. 일본은 2019년에 '고도 프로페셔널(高度-professional)'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고연봉을 받는 전문직에게 근로시간 총량 규제를 제외시키는 방식이다. 연봉이 1,075만 엔(1억 원 수준) 이상의 전문직의 경우, 최장 근로시간 규제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요건을 부여했다. 우선 근로자 본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1년에 104일(일주일에 2일 수준)의 휴일을 확보할 의무를 부여했다. 또 회사가 건강관리시간을 체크하며 건강검진을 주기적으로 하도록 하는 등 일반 근로자보다 엄격하게 건강을 관리하도록 만들었다.
미국과 일본의 모델을 가져다 근로시간 제한 면제를 도입하는 것은 한국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과로사 문제가 대두됐었던 일본(1,637시간)도, 천재들이 밤을 새우며 혁신을 이끈다는 미국(1,810시간)도 연간 근로시간을 보면 한국(1,874시간)에 비해 적다. 한국보다 근로시간이 높은 국가는 멕시코나 칠레 같은 국가다. 근로시간 규제를 풀어달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미국의 제도를 가져와야 한다고 말하지만, 미국은 한국과 달리 과로사나 과로 자살 같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문제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해보면, 어쏘 변호사는 근로자라고 법원이 판단하고 있으며 최장 근로시간 규제는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다. 법원의 판단과 다르게 어쏘 변호사가 근로자가 아니어서 노동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인정한다면 법치주의는 흔들린다. 입법자의 의도와 다르게 근로시간 규제에 관한 법률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한다면 민주주의는 흔들린다. 착하고 성실해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개인이 법의 적용을 피해갈 수는 없고, 모두가 능력에 따라 원하는 만큼 열심히 일하는 '유토피아' 같은 기업이 있다고 해도 법과 제도를 무시해서 운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구도 법 위에 존재할 순 없다다시 김앤장 얘기로 돌아와보자. 근로감독에서 김앤장이 위반했다고 밝혀진 내용은 동네 식당이나 중소기업도 지켜야 하는 것들이다. 근로계약서에 근무시간을 포함한 근로조건을 써서 근로자에게 나눠주는 것, 취업규칙에 근로조건을 써서 게시하는 것, 법정근로시간인 주52시간제를 준수하는 것 등이다.
다른 로펌도 지켜야 하는 주52시간제와 근로기준법을 홀로 지키지 않고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되면 '규제 차익(regulatory arbitrage)'을 얻기 때문에 불공정한 경쟁이 된다. 또한 근로자(어쏘 변호사)의 건강권을 어떤 기업의 선의에만 맡기는 것은 기업의 경영 상황에 따라, 사업주의 결정에 따라 유동적이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김앤장이 아무리 효율적인 운영을 하고 있고, 업계 최고 연봉을 주더라도 법은 따라야 하는 것이다. 사실 국내 최고의 법률전문가 집단인 김앤장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법의 취지를 설명하고, 왜 법을 지켜야 하는지 장황하게 말한 것은 멋쩍은 일이다. 정계성 김앤장 대표변호사는 올해 신년사에서 '법치주의를 굳건히 하는데 앞장서자'고 구성원들에게 강조했다. 정계성 변호사는 김앤장 최초의 어쏘 변호사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김진원, 『글로벌 로펌 김앤장』, ㈜리걸타임즈, 2023
최석환, "예외적 근로시간 규제 근거로서의 고액임금", 노동법학 제71호(2019)
최석환, "2015년 일본 노동법 개정 논의의 지형", 노동법연구 제40호(2016)
박수경·김희성,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과 일본의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 강원법학 제71권(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