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블로그 '와인직구의 모든 것'에 글을 쓰며, 직구 플랫폼 주류사업실장이기도 한 '아이추워' 최원준. 직구로만 와인을 즐길 것 같지만, 사실은 국내 샵에서도 꾸준히 많은 와인을 구매한다는 그가 슬기로운 와인 생활, 그리고 와인업계에 대해 이야기해드립니다.
전편
'와인 콜키지 비용, 얼마가 적절? 얼마까지 낼 수 있냐고요?'
에서 콜키지 비용에 대해 살펴본 데 이어, 이번에는 혹자는 필수 매너, 혹자는 필수까진 아닌 배려와 센스라고 언급하곤 하는, 소위 콜키지 에티켓들에 대해 살펴본다.
업장 와인 리스트에 있는 와인은 콜키지 하지 않는 것이 예의?콜키지(와인 반입)를 허용하는 레스토랑이나 바 중에서, <본 매장에서 판매 중인 와인과 동일한 와인은 콜키지 이용이 불가합니다> 식의 정책을 운영 중인 곳들이 더러 있다. 또한, 이런 정책과 무관하게 "콜키지 이용 시, 업장에 구비된 것과 동일한 와인은 피해야 한다"고 콜키지 에티켓을 언급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굳이 겹치는 것보다는 '당연히' 피하는 것이 좋을 테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내가 가져가고자 하는 와인이, 해당 업장에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해외에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업장에 구비되어 있는 와인 리스트를 조회할 수 있는 곳들도 제법 있지만, 국내는 그런 경우가 극히 드문 편이다. 실제로, 콜키지 와인을 특정 레스토랑에 가져갔다가, 업장에서도 판매 중인 와인이라 콜키지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를 받고 당황했다거나 심지어 업장 측과 실랑이를 벌였다는 후기도 수차례 접해보았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업장보다는 고객의 편을 들고 싶다. 업장에 구비되어 있는 와인과 동일한 와인을 이미 가져와 버린 고객을 상대로 '해당 와인 콜키지 이용 불가' 원칙을 고수할 업장이라면, 고객의 예약을 받는 시점에 이러한 콜키지 정책 전달과 함께, (홈페이지 등에 와인 리스트를 공개해 두거나) 가져오려는 와인이 정해지면 사전에 업장에 (업장 와인과 중복 여부를) 문의해달라는 안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예약 접수 시에 관련 안내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와인 리스트를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지도 않은 업장에서 '정책도, 업장 리스트와 중복 여부도, 전혀 모르고 가져왔다'고 하소연하는 고객에게 할 수 있는 당부는 '(이번에는 모르고 가져오셨으니 이용하시되) 정책이 이러하니, 다음에는 부디 사전에 문의해 주시라' 정도가 최선이겠다.
물론, 행여 고객이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업장에 구비되어 있는 와인임을 알고도 일부러 와인 반입을 시도하는 것이라면, 콜키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장 측에서는 상당히 황당하고 충격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상적인 매너, 고객의 센스·배려를 논하기 전에 보다 본질적인 부분을 업장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고객이 이미 가져온 와인을, 업장 리스트와 겹친다는 이유로 콜키지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 고객이 콜키지 이용을 포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일한 와인을 업장에서 주문해 이용하리라 기대하는 것인가?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것인지, 그냥 기분이 나빠서인지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여겨진다. 오히려 위에서 예로 들었듯 '업장 리스트에 존재하는 와인으로 반입 불가가 원칙이나, 모르고 가져오셨을 테니 이용 도와드리겠다' 식의 응대로 해당 고객의 업장에 대한 호감도를 끌어올리는 기회로 활용하기 좋지 않을까.
콜키지 이용을 하는 경우, 별도로 해당 업장 와인도 1병은 주문하는 것이 매너?이 또한 애호가들 간에, 또는 업계 관계자의 언급으로 심심찮게 들어온 소위 '콜키지 에티켓' 중의 대표적인 내용 중 하나이다. 너무나도 당연히,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업장 측의 환영을 받을 테다. 하지만, 그러면 이렇게 하지 않는 (콜키지 와인만 이용하고, 업장 주류는 추가로 주문하지 않는) 경우는 비매너, 즉 에티켓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업장으로부터 환영받는 손님이 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매상을 많이 올려주는 것은 그중에서도 꽤나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겠다. (물론, 이를 상쇄할 만한 미움받을 짓을 하지 않은 것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이다.) 콜키지를 주로 이용하는, 매장을 자주 찾는 고객이 (술이 다소 남더라도) 매번 꼬박꼬박 업장 와인도 잊지 않고 주문해 준다면, 업장 관계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고마운 마음이 들고 호감이 갈 테다.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는 고객을 상대로 아쉬운 마음이 들고, 더 나아가 불평까지 하게 된다면? 안타깝고 끔찍한 일이다.
업장 주류 주문 없이 콜키지만 이용하는 고객이 불편하다면, 이것이야말로 업장의 운영 정책을 보완하여 막으면 그만일 일이다. 실제로 "업장 와인 1병 주문 시 콜키지 1병 가능" 식의 정책을 운영하는 곳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업장의 여건 등을 감안하여 충분히 설정할 수 있는 정책이라 생각하며 존중한다. 이런 식의 정책을 운영하면 이용객이 줄어들까 봐 설정하지 못한 채, 콜키지만 이용하고 떠나는 고객을 상대로 아쉬운 마음을 품는 못난 업장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고객 또한, 마음에 드는 업장을 이용할 때는 권리만 찾을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더 환영받는 고객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보다 슬기롭게 식도락을 즐기는 방법이겠다. 업장의 주류·음료를 소비하는 등 매상을 더 올려주려는 노력은 아주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제가 바라는 콜키지 에티켓, '음식 페어링에 대한 고민'앞서 살펴본 두 가지, 필자는 다소 갸우뚱하게 느끼고 있는 '콜키지 에티켓'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에티켓을 하나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바로, 해당 업장의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준비해 가는 것이다.
술이 아닌 음료에 비유해 설명해 보겠다. 누군가가 아주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을 준비해 놓았으니 함께 곁들일 음료를 가져와서 함께 즐기라고 당신을 초대하였다. 여기에 가져갈 음료로, 아무리 1) 신선하고 2) 당도가 높은 3) 유기농 4) 착즙한 5) 값비싼 주스라고 한들, 오렌지 주스를 가져간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케이크도 음료도 그 본연의 맛을 느끼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게 대단한 신선·고당도·유기농·착즙이 아니더라도, 그냥 고만고만한 커피·차·우유 쪽이 훨씬 더 어울리는 선택 아니겠는가?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