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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도 제사 눈감아줬다…성인으로 추앙받는 '충의의 아이콘' [스프]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형주의 수호신 관우가 잠든 당양 '관공방' - 후베이·당양 (글 : 모종혁 중국문화평론가·재중 중국 전문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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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가 성을 쌓아 올린 뒤 명대에 증축한 후베이성의 징저우 고성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자동차로 서쪽으로 3시간을 달리면 형주(荊州, 징저우)가 있다. 형주는 소설 《삼국지》에서 제갈량과 함께 가장 사랑받는 관우가 지켰던 곳이다.

관우의 출생연도는 명확하지 않다. 산시(山西)성 운성에서 태어나서 허베이(河北)성 탁현에서 유비를 만났던 것은 확실하다. 나관중은 관우의 외모를 다음처럼 묘사했다.

"키가 9척이고, 수염은 2척이다. 얼굴은 무르익은 대추 같고, 입술은 연지를 칠한 듯 붉다. 봉황의 눈에 누에 모양의 눈썹을 가졌다. 모습이 늠름하고 위풍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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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가 생전 사용했던 관저인 관공관에 지어진 관제묘

관우는 도원에서 유비, 장비와 의형제를 맺은 뒤 대륙 곳곳을 누볐다. 하지만 일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이 형주다. 당시 형주는 오늘날 징저우와 다르다.

후한은 지방 행정조직으로 13개의 주와 서역도호부를 뒀다. 따라서 형주는 후베이와 후난(湖南)의 전부, 산시(陝西)와 허난(湖南)의 남부, 구이저우(貴州)와 광시(廣西)자치구의 북부에 해당하는 7개 군이었다.

징저우는 강릉(江陵)이었다. 208년 적벽대전에서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은 위나라 대군을 물리쳤다. 조조는 패한 뒤 각 군에 심복을 남겨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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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묘 정전에는 중앙에 관우가, 양옆에는 주창과 관평이 서 있다.

그러나 유비는 관우, 장비, 조자룡 등을 이끌고 형주 남부의 4군을 함락했다. 주유는 강릉과 이릉을 점령했다. 그러자 손권은 노숙의 권유에 따라 유비를 형주자사로 세웠다.

여동생도 유비에게 시집보내 휘하에 두고자 했다. 형주는 위군의 침입을 막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손권은 무력과 지략을 모두 갖춘 유비 집단이 이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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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손권 밑에서 만족할 유비가 아니었다. 213년 유장의 요청과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에 따라 방통, 황충 등을 이끌고 지금의 쓰촨(四川)인 익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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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묘 내전에 서 있는 관우상. 명 만력제가 내린 시호가 아래 있다.

출정에 나서기 전 유비는 관우에게 형주 북부를 지키도록 했다. 이때 관우는 징저우에 성곽을 쌓았다.

214년 유장이 유비의 속셈을 알아채면서 양측 간에 전투가 벌어졌고, 방통이 낙성에서 죽었다. 유비는 제갈량, 장비, 조자룡 등을 호출해서 익주를 차지했다. 215년 유비가 익주를 취한 사실을 알고 손권은 형주를 되찾으려 했다.

손권의 요구에 유비가 응하지 않자, 양측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 빠졌다. 이때 위군이 지금의 산시성 한중을 점령하고 친링(秦嶺)산맥을 장악하면서 쓰촨의 코앞까지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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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의 머리 없는 시신을 모신 후베이성 당양의 관릉

유비는 위의 침략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형주 남부 3군을 손권에게 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관우는 징저우에 관저를 두고 형주를 지켜 촉나라의 동부를 방어했다.

218년 조조는 눈엣가시 같은 관우를 치기 위해 조인을 파견했다. 조인은 남양에 주둔하며 혹독하게 군졸을 모으고 군량미를 수탈했다. 이에 따라 지방관과 백성의 불만이 팽배해져, 완성태수 후음과 위개가 반란을 일으켰다.

조인은 대군을 앞세워 반란을 진압했다. 이러한 혼란상을 기회라고 여긴 관우는 군사를 일으켜서 위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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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릉의 마전(馬殿)에는 관우와 전장을 누볐던 적토마가 서 있다.

조조는 우금과 방덕을 보냈고 번성 주변에서 양군은 격전을 벌였다. 처음에는 병력이 많은 위군이 압도했지만, 마침 닥친 장마를 이용해 관우는 방덕을 죽이고 우금을 사로잡았다.

관우는 기세를 올려 번성에서 농성 중인 조인마저 압박했다. 위기감을 느낀 조조는 서황을 대장으로 증원군 20만 명을 파견했다. 처음에는 관우가 징저우의 수비군까지 차출해서 위군에 맞섰다.

그러나 점차 위군의 공세에 밀려 패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몽이 이끈 오나라 군대가 상인과 상선으로 위장해서 징저우를 함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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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릉 침전(寢殿) 안에 서 있는 관우상

위군과 오군의 협공에다 가솔이 오군에게 사로잡힌 관우의 군사들은 진영을 이탈했다. 219년 말 관우는 지금의 허베이성 당양(當陽)인 맥성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임저에서 오군에게 사로잡혀 관평과 함께 참수당했다.

관우가 죽자, 징저우 주민은 관우의 관저였던 관공관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오군은 이런 행동을 눈감아줬다.

그 뒤 세월의 풍파 아래 관공관은 불타버렸다. 이를 1396년 명조가 관우의 사당인 관제묘(關帝廟)로 복원했다. 청조는 관우와 그의 모든 가족까지 모시도록 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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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릉의 관우상은 모두 예술적 가치는 떨어지지만, 전신의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중일전쟁 시기 일본군의 포격으로 관제묘는 다시 잿더미로 변했다. 현재의 관제묘는 1987년 옛 유적지 위에 청대 그렸던 건축 도면을 기초로 복원한 것이다.

관제묘는 진한 향불 냄새와 함께 사시사철 관우상을 향해 소원을 비는 중국인으로 들끓는다. 정전에는 관우가 《춘추》를 든 채 앉아 있다.

내전 앞에는 청룡언월도를 든 관우상이 서 있는데, 밑에 '신위원진'이라 쓰여 있다. 이는 명대 만력제가 관우를 '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三界伏魔大帝神威遠震天尊關聖帝君)'에 봉한 데에 유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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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느낌의 관우묘. 정자에 '한수정후묘'라고 새겨진 비를 세웠다.

관우는 역대 황제로부터 수많은 작위를 하사받았다. 청대에는 작호가 26자에 이를 정도로 칭송은 깊어졌다.

역대 봉건왕조의 관우 숭배 열기를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은 징저우에서 1시간 떨어져 있는 당양이다. 관우가 죽은 뒤 손권은 관우의 수급을 잘라 조조에게 바쳤다. 그리고 머리 없는 시신은 제후의 예를 갖춰 당양에 묻었다.

조조도 관우를 형왕(荊王)으로 봉했고, 향나무로 몸을 깎아 만들어 머리를 붙인 뒤 뤄양(洛陽)에 안장했다. '머리는 뤄양을 베개 삼았고, 몸은 당양에 누워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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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양은 《삼국지》 장판파 전투의 무대로, 조자룡이 유선을 구했다.

관우의 시신이 묻힌 곳이 당양의 관릉(關陵)으로, 명 가정제가 하사한 명칭이다. 본래 관우의 시신만 묻은 작은 봉분이었다. 15세기에 중건하면서 면적은 4만 5천㎡에 달했고 4개의 전각, 5개의 정원이 직선으로 겹치도록 했다. 관우의 수급을 묻은 뤄양의 묘는 18세기 청 강희제가 관림(關林)이라는 한층 높은 칭호를 부여했다.

중국에서 '릉'은 황제의 능원에만 붙이고, '림'은 성인의 무덤에만 바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자의 묘인 공림(孔林)이다. 명대에 황제로 추존된 관우가 청대에는 성인의 경지까지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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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장판교에서 장비가 위 대군에 맞서는 장면을 묘사한 부조

관우는 '충의의 아이콘'이 됐다. 실제로 중국 전역과 세계 곳곳에는 관우의 사당인 관제묘가 세워졌다.

그 이유는 관우가 임금이 백성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데 아주 유용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관우는 유비와의 의리만 지켰고 절대적으로 복종했다. 군주 입장에서 민족과 국가의 안위보다 왕조와 임금만 지켜주는 충신이 더욱 반갑고 소중하다.

따라서 역대 봉건왕조는 적극적으로 관제묘를 세웠고 관우 우상화에 매진했다. 게다가 관우는 백성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대장부의 품격과 기상을 갖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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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묘 내전에 있는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상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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