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무대 이후 단숨에 전 세계 주요 오페라극장을 누비는 '월드 클래스' 테너로 자리 잡은 백석종 씨. 그는 바리톤이었다가 뒤늦게 테너로 전향했다는 색다른 이력 외에도 드라마 같은 데뷔 스토리로 유명합니다. 그는 2022년 로열 오페라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오페라 두 편, '삼손과 데릴라'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잇따라 주역을 맡아 대성공을 거뒀는데요, 원래는 두 편 모두 '커버'로 참여했다가 주역 가수의 불참으로 대타 출연한 것이었습니다.
주역 가수의 연속된 펑크라는 우연, 신인에게 베팅한 로열 오페라의 안목에 백석종 씨의 인생을 건 결단과 노력이 어우러져, 극적인 데뷔 스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백석종 씨의 생생한 이야기 직접 들어보세요.
백석종 테너 :
돌이켜 보면 그렇게 데뷔한 게 좀 신기한 일 같아요. 왜냐하면 거의 그런 스토리는 들어본 적이 없고, 거의 테너로 경험이 없는 사람을 그렇게 큰 무대에 세운 것은 아직도 미스터리인 것 같아요. 저를 왜 세우셨지?
테너로 전향하고 물론 오랜 기간 세틀 다운(정착)을 했지만 제가 준비됐을 때는 '정말 준비가 됐네. 한번 확인을 받아야겠다' 그래서 대회를 나가는데 첫 경연에서 운 좋게 우승하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 가서 해봤는데 또 좋은 결과가 있어서 바로 로열 오페라 하우스 캐스팅 디렉터를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만났어요. '노래 한번 해볼래' 그래서 냉큼 했죠. 원래 데뷔한 역할이 '삼손과 데릴라'인데 원래 그건 커버를 하기로 했어요.
김수현 기자 :
주역이 있고, 무슨 일이 있을 때 대신 해 주는 커버.
백석종 테너 :
맞습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안토니오 파파노 뮤직 디렉터가 노래를 흥미롭게 들으시더니 내년에 '삼손' 하는데 커버 할 생각 있냐고. 감사하죠. 저는 첫 테너 역할이고 그렇게 커버를 하기로 했는데, 마침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극장에서 '토스카' 데뷔를 하기로 했었어요.
김수현 기자 :
그건 커버가 아니라 그냥.
백석종 테너 :
네, 하기로 했었는데 로열 오페라에서 갑자기 주역이 캔슬을 했어요.
김수현 기자 :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대요?
백석종 테너 :
허니문을 갔는데 다리를 다쳤대요. 그래서 갑자기 저한테 해볼건지, 오퍼가 새로 들어온 거죠. 커버가 아니라. 순간은 뜨끔했죠.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물론 팔레르모나 로열이나 비슷한 극장에 다 풀 프로덕션 하는 거지만 로열 오페라 하우스라는 게 너무 커서 긴장을 많이 했지만 그냥 냅다 하기로 했습니다.
김수현 기자 :
그럼 '삼손과 데릴라'를 그전에 해보신 적이 없는 거잖아요?
백석종 테너 :
당연하죠.
김수현 기자 :
테너로서 오페라 전막 무대에 서본 적도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백석종 테너 :
근데 또 그 오페라 자체가 보통 테너들이 나이 먹고 후기쯤에 하는 거예요. 무거운 역할이거든요. 그런 거 고민할 틈도 없이 그냥 찬스를 받았습니다. 두 달 전에 연락을 받고, 두 달 준비 기간이었어요. 그래서 리허설에 바로 투입된 거죠.
김수현 기자 :
처음에 리허설 들어갔는데 어떻던가요?
백석종 테너 :
또 특별했던 게 뉴 프로덕션.
김수현 기자 :
아예 연출을 새롭게 하는 프로덕션.
백석종 테너 :
극장 내에서 돈을 많이 새로 쓰는 거니까 신경 써서 하는 프로그램인데, 보통 뉴 프로덕션 할 때는 리허설 기간을 많이 잡아요. 4주에서 6주. 보통은 2~3주만 하고 무대에 오르는데 처음부터 새로 다 짜고 해야 하기 때문에 4주~6주를 하는데 저는 6주. 첫 리허설을 딱 갔는데 저 혼자 뮤직 디렉터 앞에 있고.
김수현 기자 :
좀 떨리셨겠어요?
백석종 테너 :
떨렸죠. 엄청 마음을 조마조마하면서.
김수현 기자 :
근데 파파노가 뭐라고 그러던가요? 처음에 딱 하니까.
백석종 테너 :
처음에는 그냥 아무...
김수현 기자 :
아무 얘기도 안 해요? 무표정하게?
백석종 테너 :
포커페이스 한 것 같아요. 근데 리허설이 흐르면서 안심을 하는 것 같아요. 얘가 잘할 수 있을까 의심은 많았는데 리허설 하고 나서 프로세스를 보니까 그래도 많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이게 프렌치 역할이니까. 프렌치가 상대적으로 좀 까탈스러웠거든요.
김수현 기자 :
프랑스어를 해야 되죠. 생상스니까.
백석종 테너 :
그래서 프렌치 코치를 두고 엄청 긴장하면서 준비해 갔죠. 다행히 딕션 이런 건 좋게 봐주고 그래서 리허설 시작했는데 마에스트로랑 저만 있었어요. 한 2주는. 그다음에 엘리나 가랑차는 2주 지나서 조인하고.
김수현 기자 :
엘리나 가랑차, 엄청 유명한 성악가잖아요. 긴장 좀 하셨겠어요?
백석종 테너 :
긴장했죠. 저는 팬이죠. 또 스타 중에 스타.
김수현 기자 :
그렇죠. 그렇게 하고
백석종 테너 :
두 달 했습니다. 두 달 하고 이제 리허설을 6주 하고
김수현 기자 :
그전에는 따로 연습을 하고
백석종 테너 :
제가 준비해 갈 시간이 2개월 있었죠.
김수현 기자 :
네. 그리고 같이 리허설 하고. 맨 첫 공연 마쳤을 때의 기분?
백석종 테너 :
기분? 없죠.
김수현 기자 :
없어요? 그냥 해냈다. 했구나.
백석종 테너 :
딴생각이 들 수도 없어요. 그냥 리허설에 충실하고 내가 디렉터들이 원하는 거 다 이끌어내줘야 하니까 집중할 생각밖에 없지요.
김수현 기자 :
관객들 반응은 좀 보였어요?
백석종 테너 :
테너로서의 무대는 처음이니까 좀 의아해했어요. 왜 이렇게 좋아해 주지? (웃음) 물론 제 커튼콜 할 때는 엘리나랑 같이 나갔어요. 원래는 따로따로 나가려고 했는데 엘리나가 같이 나가자고. 타이틀이어서 그런지 같이 쭉 나오긴 해서 박수를 엘리나 덕에 더 받았나 싶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가지고
김수현 기자 :
제가 로열 오페라 보러 갔더니 '삼손과 데릴라' DVD가 샵에 사진 딱 이렇게, 타이틀로 있더라고요.
백석종 테너 :
보통 운이 아니죠. 어떻게 첫 데뷔인데 뉴 프로덕션에.
김수현 기자 :
원래 커버였는데 허니문 갔다가 다치는 바람에. (웃음) 근데 그게 끝이 아니잖아요. 그 공연 준비 하고 있는데
백석종 테너 :
하고 있는데 끝날 무렵쯤 마에스트로가 얼굴이 상기돼 가지고 전화를 하는 거야. 우리 더블 빌이 있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랑 '팔리아치' 더블 빌이 있는데 그걸 요나스 카우프만이 하기로 했었어요.
김수현 기자 :
그 유명한 요나스 카우프만.
백석종 테너 :
하기로 했는데 리허설은 안 오는 거예요. 공연은 2주가 좀 안 남았고 바로 올리는 건데, 3~4주 잡고 리허설을 시작했어야 하는데 계속 안 오다가 일주일 조금 남았거든요. 근데 거의 마지막까지 안 오니까 디렉터가 얼굴이 상기돼 가지고.
김수현 기자 :
왜 안 왔대요?
백석종 테너 :
그때 코비드가 걸려서 아프다고. 그때 한참 시즌이었잖아요. 저한테 와서 너 커버할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남주인공 터리베오 역할. 그래서 커버를 할래? 생각해 보니 커버니까. 커버는 보통 무대에 안 섭니다.
김수현 기자 :
대기하고 있다가 무슨 일이 있지 않으면.
백석종 테너 :
주역들이 펑크를 내면 리허설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 커버를 쓰거든요. 리허설을 안 끊기게 도와주는 게 커버의 역할이고, 커버가 실제 무대에 서는 경우도 아주 가끔 있어요. 근데 거의 못 서죠.
김수현 기자 :
리허설을 그냥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한 역할.
백석종 테너 :
네, 그게 커버예요. 왜냐면 주인공이 캔슬을 하면 거기에 맞는 비슷한 급의 가수를 데리고 와야 돼요. 표를 비싸게 팔았는데 인지도가 없는 사람은 쓸 수 없으니까.
김수현 기자 :
그 가수가 온다고 생각을 하고 커버를 제안하신 거네요.
백석종 테너 :
그래서 마음은 가볍게.
김수현 기자 :
커버니까.
백석종 테너 :
매니저랑 상의해 보고 '그래, 하겠다' 새로운 레퍼토리를 늘릴 겸 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왔나 봐요. 카우프만이 오프닝을 못 오겠대요. 오프닝은 못 오는데 그 뒤에는 할 수도 있다. 오프닝을 해야 되면 준비를 해야 되잖아요. 완전히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끔 준비를 해야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