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의 목적은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범인의 확보’와 ‘증거의 수집’이다. (형사소송법 제6판, 이재상 著, 167쪽) 체포나 구속은 수사의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체포나 구속을 통해 피의자에게 굴욕감을 주고, 피의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것이 수사의 목적이 될 수 없는 점은 너무나 당연하다.
수사의 목적: '범인의 확보'와 '증거의 수집'수사의 목적에 대한 규정을 윤석열 대통령 사건에 적용해보자. '범인의 확보’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범인을 찾아내거나 도주한 범인을 붙잡는 일을 뜻한다. 구속영장 심사에서도 도망의 염려는 인정되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구속한 것은 범인 확보라고 볼 수 없다. 현직 대통령인 윤석열이 12·3 비상계엄과 관련된 내란죄 피의자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증거의 수집’은 어떨까?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어제(26일) “(검찰) 특수본이 그동안 수사한 공범 사건의 증거자료, 경찰에서 송치받아 수사한 사건의 증거자료 등을 종합 검토“해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주로 검찰과 경찰이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기소했다는 뜻이다.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증거 수집은 검찰과 경찰이 한 것이다.
결국 수사의 목적인 ‘범인의 확보’와 ‘증거의 수집’ 양쪽 모두에서 공수처가 한 일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와 구속 과정이 세세하게 중계되는 와중에 배우로 참여한 것이 공수처가 이번 사건에서 수행한 역할의 본질이다. 그러니 공수처가 잘해놓은 수사를 검찰은 기소로 추인하기만 하면 된다는 주장은 수사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나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정파적 이해관계와 연결되면 자신의 식견 따위는 언제든지 왜곡할 준비가 돼있는 일부 전문가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 사건에서 수사의 목적과 관련된 일을 한 곳은 경찰과 검찰이다. 공수처가 아니다.
수사의 목적은 달성 못했지만…시한폭탄은 설치한 공수처공수처가 해낸 특별한 일이 있긴 하다. 전체 수사 결과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 있는 시한폭탄을 윤석열 대통령 사건에 설치했다.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를 공수처가 직권남용죄라는 고위공직자범죄와 직접 관련된 범죄로서 수사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례 등 판단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수처가 출범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동안 공수처가 사건을 성공적으로 수사한 적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사건 이전까지 구속영장이나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적이 아예 없었다. 그럼에도 공수처는 경찰과 검찰로부터 사건을 강제로 이첩받아 수사에 착수함으로써 위법 수사 논란을 스스로 만들었다. 근본적 권한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향후 재판에서 수사권이 없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검찰이 기소한 윤 대통령 사건은 공소기각 처리될 가능성이 있다. 사건 자체에 대한 판사의 유무죄 판단과 관계없이 다 날아간다는 뜻이다. 폭발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터질 경우 사건을 날려버릴 수 있는 시한폭탄을 공수처가 매설한 것이다.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방법원 판사로부터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발부받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역시 체포적부심에서 체포가 적법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이 ‘인정’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장난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은 판사로부터 ’일단’ 인정을 받은 것이다. 영장판사와 체포적부심 판사의 판단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 본안 형사재판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있는 판단이다. 대부분의 주요 형사사건 재판에서 피고인 측이 위법수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영장이 발부됐다는 이유만으로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이 의심의 여지없이 인정됐다고 말하는 것은 혹세무민에 가깝다.
(다만 향후 본안 재판에서 위법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수사 과정에서 판사가 발부한 영장의 집행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히 불법행위다. 법관이 발부한 영장은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이고, 이에 대한 불복은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나중에 본안 재판에서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판단이 나온다고 해도 영장 집행에 저항했던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직권남용죄와 직접 관련된 내란죄에 대한 공수처 수사권은 본안 재판에서도 인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수처가 한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폭발하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히 있는 시한폭탄을 설치한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폭탄이 터질지 안 터질지를 공수처를 포함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격 논란 없는 성인 대표팀 대신 논란 있는 유소년팀이 출전한 격시한폭탄 없이 윤 대통령 사건을 수사할 수 있는 길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공수처와 달리 수사권과 관련해 논란이 없거나 논란이 적은 기관이 2개나 더 있다. 경찰과 검찰이다. 게다가 경찰과 검찰의 수사 역량은 공수처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월등히 뛰어나다.
경찰의 내란죄 수사권에 대해서는 누구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아무런 논란이 없다. 검찰 역시 공수처와 달리 조지호 경찰청장 등 경찰공무원의 내란죄 혐의와 공모 관계에 있는 내란죄 혐의에 대해 윤 대통령을 수사하는 방식으로 내란죄 수사권 논리를 구성할 수 있다. (검찰청법 제4조 1항 1호의 '나'목) 공수처가 주장하는 논리보다 훨씬 논란이 적은 논리다. 내란죄 혐의가 적용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공수처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한 서울중앙지법이 김용현 전 장관에 대한 검찰의 청구는 인용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저 논리를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과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 논리가 똑같기 때문에 검찰 역시 수사권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전문가들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검찰과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 논리는 일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서울중앙지법 영장판사가 인정한 논리는 겹치지 않는 대목이다.
결국 내란죄 수사권과 관련해서는 경찰 > 검찰 > 공수처 순서로 법적 타당성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이 가장 논란이 큰 것이다. 그리고 수사 능력과 경험을 기준으로 하면 공수처와 경찰, 검찰의 수준 차이는 유소년팀과 성인 프로팀의 차이와 비슷하다. 현직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 수사라는 월드컵 본선 경기에 비견될 만한 초대형 사건에 출전 자격 논란이 없는 성인 대표팀 대신 부정 선수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12세 이하 대표팀을 출전시킨 셈이다.
성급한 영장 청구…다른 기관도 손 대지 못 하게 만든 공수처공수처가 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들이 손댔다가 상당 부분 꼬아놓은 사건을 결과적으로 남들도 손대지 못 하게 만들었다. 지난 17일, 공수처는 주로 검찰과 경찰이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덜컥 청구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다. 지난 18일 SBS 8뉴스에 출연해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형사소송법 110조에 근거해 경호처가 대통령 관저 압수수색 등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증거 인멸 염려는 인정될 수 있다. 공수처가 아니라 다른 기관이 청구했더라도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구속영장을 공수처가 너무 일찍 청구해 발부받은 것이 문제였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덜컥 구속한 탓에 윤 대통령 수사를 끝내야 하는 사실상의 마감 시한이 설정돼 버렸다. 구속기간 만기 이전까지는 피의자를 기소하거나 석방해야 하고, 기소할 경우 이후 강제수사는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정상적 식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대로 공수처는 윤 대통령 구속 이후에도 사실상 아무런 증거도 수집하지 못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윤 대통령 구속만기, 즉 수사 마감 시한을 향해 시계는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었다.
허송세월한 공수처는 공소제기 요구를 하며 서울중앙지검 검사에게 기록을 송부했다. 공수처가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고 불구속 상태로 사건을 보냈다면 검찰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보완수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너무 빨리 구속한 탓에 검찰에 부여된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구속기간 연장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10일 이상은 추가 수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검찰은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울중앙지법 영장판사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 한 대목에서 제동을 걸었다. 검찰은 공수처가 보낸 사건에 대해 보완수사(추가수사)를 할 수 없다며 구속기간 연장 없이 곧바로 기소 여부만 판단하라고 결정했다. 검찰이 구속기간 연장을 다시 신청했지만 소용없었다. 두 번째 판사는 검찰의 보완수사 자체가 불가하다고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구속기간 연장은 허가하지 않았다. 공수처가 확보한 의미 있는 증거가 극히 적은 상황에서 검찰은 피의자 조사 없이 검찰과 경찰이 공범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 위주로 윤 대통령을 기소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공수처를 무시하지 마라결국 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 사건에서 수사의 목적과 관련해서 한 일이 사실상 없다. 대신 사건 전체를 폭파시킬 가능성이 있는 시한폭탄을 설치하고, 다른 기관이 추가로 증거를 수집할 기회마저 날려버렸다. 지금까지 어떤 수사기관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했을 때 ‘공수래 공수처(空手來 公搜處)’라는 조롱이 쏟아졌다. 부당한 비난이다. 공수처는 이번 사건에서 ‘빈 손[空手]’이 아니었다.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불행히도 그 영향력이 이번 사건 수사의 목적이나 공수처 설립 목적과 반대 방향으로 행사됐을 뿐이다. 내란죄 혐의 사건 수사 과정 전반에 걸쳐 윤석열 대통령을 가장 크게 도운 국가기관은 대통령실도 아니고 경호처도 아니다. 공수처다. 다시는 공수처를 무시하지 마라.
※ [2025년 1월 28일 수정]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이 향후 재판에서 최종적으로 부정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공소기각 판결이 선고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을 반영해 2개 문장의 표현을 일부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