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법원을 둘러싸고 있던 지지자들은 초유의 법원 난동 사태를 일으켰습니다. 순식간에 경찰 벽을 뚫고 법원 경내로 들어와 유리창을 깨고 법원으로 침입한 다음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는 모습은 법치주의가 위협받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법원 난동 사태는 실시간으로 유튜브를 통해 중계되기도 했는데, 당시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국민저항권'이라는 말들로 난동을 정당화했습니다. 한 마디로, 법원 난동은 불법적인 폭력 사태가 아니라 불가피한 저항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런 정당화는 초유의 법원 난동 사태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도달하는데요.
과연 이런 주장들이 근거는 있는 것인지, 확대 재생산될 때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에서 따져봤습니다.
'국민저항권'은 어떻게 등장했나'국민저항권'이라는 말은 12.3 계엄 사태 이후 극우 세력 사이에서 언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7일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헌법재판소가) 헌법을 위반하면 국민이 저항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12.3 계엄 발령 이후 윤 대통령을 향한 탄핵 및 수사가 반헌법적이기 때문에 시민들의 저항이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조 의원의 발언이 있고 사흘 뒤인 지난 10일, 이번엔 역술인 천공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국민저항권을 언급했습니다. 특히, 그는 "22대 국회는 잘못된 국회로 국민저항권을 통해 해산을 명령해야 한다."라면서 "그래서 국민들이 광화문에 모이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계엄 사태를 옹호하고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수사를 반대하는 행위는 이제 저항권으로 둔갑을 마친 겁니다,
국민저항권 주장은 지난 19일 새벽 서부지법을 침입했던 지지자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당시 극렬 지지자들이 경찰을 밀치고 법원 청사를 부수며 "이젠 전쟁이야. 국민저항권이야."라고 소리치던 모습은 유튜브를 통해 고스란히 생중계됐습니다. 난동이 모두 진압된 뒤에도 극우 인사인 전광훈 목사는 국민저항은 이제 시작됐다며 혁명을 통해 헌법을 바꾸자고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국민 저항권이 이제 시작됐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도 구치소에서 우리가 데리고 나올 수도 있어요. 이 국민 저항권이 제일 강렬하게 집행된 게 4.19 아닙니까? 그때는 뭐 헌법도 다 바뀌고 체제도 다 바뀌었지 않습니까? 결국은 저항권에 의해서 완성됐을 때 헌법이 새로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겠죠."
-전광훈 목사(출처 : 전광훈 TV)-법원 난동, 국민저항권 행사라 처벌 대상 아니다?
우리 헌법은 저항권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항권의 근거가 없는 건 아닙니다. 헌법 전문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구가 분명히 포함돼 있고, 헌법재판소 역시 저항권을 헌법을 통해 보장되는 하나의 권리로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헌재가 규정하는 저항권이란 무엇일까? 헌법이 구현하고 보장하는 민주적 기본질서가 공권력에 의해 침해됐을 경우, 이를 회복하기 위해 국민이 마지막 수단으로써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국민저항권도 바로 이 저항권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만 보수 정치인과 극우 유튜버, 극렬 지지자 등은 '마지막 수단'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이미 헌법 질서가 무너져 회복하기 어려울 땐 국민의 저항만이 유일한 답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저항권이 헌법 위에 있다는 주장이 반복되고 있고, 이번 난동 사태가 처벌 대상이 아니란 결론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헌재는 지난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에서 저항권의 행사는 본질적으로 질서교란의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에 3가지 요건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이 3가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저항 행위는 저항권이라 주장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⓵저항권의 행사에는 개별 헌법조항에 대한 단순한 위반이 아닌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전체적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있거나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⓶이미 유효한 구제수단이 남아 있지 않아야 한다는 보충성의 요건이 적용된다. ⓷또한 그 행사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 회복이라는 소극적인 목적에 그쳐야 하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다.
-헌법재판소 2013헌다1 중 발췌-
첫 번째 요건은 정당한 저항권 행사를 위해서는 국가 권력에 의해 민주적 기본질서 자체가 침해받거나 위협에 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수사는 민주적 기본질서 침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만약, 법에 기초하지 않고 현직 대통령을 범죄자로 몰아세워 구속시켜 국정을 마비시키고 헌정 질서를 혼란케 했다면 이에 해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수사는 정반대 상황입니다. 국회에서의 탄핵 결정, 수사기관의 강제 수사, 법원의 영장 발부 등 일련의 과정은 모두 법률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법률적 요건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반헌법적인 12.3 계엄 사태를 일으킨 건 윤 대통령이었습니다.
정당한 저항권 행사를 위한 두 번째 요건은 유효한 구제 수단이 남아있지 않아 저항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경우에는 구속영장이 발부됐지만, '구속적부심 청구'라는 구제 수단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향후 재판에 넘어갈 경우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툴 수 있고,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보석 신청 등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항은 마지막 수단이 아니었고, 두 번째 요건도 충족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요건은 바로 소극적 행사입니다. 침해되거나 위기에 처한 민주적 기본질서를 다시 유지시키고 회복시키는 선에서만 저항권을 행사해야 하고 그 범위를 넘어서는 목적으로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19일 새벽 서부지법을 장악했던 시위대는 사적 응징을 위해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판사를 찾으려 했습니다. 다행히 당시 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법원 청사를 빠져나간 상태였지만, 극렬 시위대는 영장 전담판사 사무실을 특정해 집중적으로 파괴했습니다. 그 결과 어떠한 질서도 회복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 굳건하게 유지되던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했습니다.
앞서 통진당 해산심판 사건에서 헌재는, 위 세 가지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에 저항이 아닌 '폭력'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같은 논리로 국민저항권의 탈을 쓰고 이뤄진 이번 서부지법 난동 사태는 극렬 지지자에 의한 폭력, 즉 폭동에 불과합니다.
"저항권 행사를 위해서는 헌법질서 전반에 큰 훼손이 있거나 중대한 침해가 발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훼손된 법적 질서를 수사나 재판, 영장 발부를 통해서 회복하는 과정이거든요. 다시 말해서 저항권 행사의 대상이라고 볼 수 없고, 법리에 맞지 않는 이런 주장들이 따옴표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위험한 징후라고 생각합니다."
-이황희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중형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이번 서부지법 난동 사태 역시 우리 법체계 속에서 저항권 행사로 인정받을 수 없다면, 당연히 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경찰은 이번 난동 사태 당시 현행범으로 90명을 체포하고 이 가운데 66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형법상 건조물침입죄와 공용물건손상죄가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소요죄와 같은 혐의까지도 적용될 걸로 내다봤습니다. 소요죄는 다중이 모여 폭행이나 협박, 손괴 행위를 한 경우에 적용되는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번 난동 사태에서 법원을 장악해 사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국헌 문란의 목적이 있었음이 드러난다면 내란죄까지 적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내란죄의 경우에는 단순 가담자라고 해도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고, 모의에 참여했을 경우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와 많이 비교되는 지난 2021년 미국 의사당 점거 사태의 경우, 이미 상당 부분 법원 선고가 이뤄졌습니다. 당시 처음으로 의사당에 난입했던 가담자에게는 징역 4년 5개월이 선고됐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두 극우 단체('프라우드 보이즈', '오스 키퍼스')의 수장에게는 각각 22년, 18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됐습니다.
물론 미국과 우리는 사법 체계나 양형 구조 등이 다릅니다. 다만, 정치적 불만을 동기로 삼아 부당하게 헌법기관을 장악하고 폭동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본질적으로 유사합니다. 때문에 이번에도 가담자들이 중형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일 경찰 버스를 탈취해서 방호벽을 들이받은 사례가 있었어요. 이 과정에서 스피커가 떨어져서 70대 남성이 또 사망했거든요. 그 사례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됐는데, 개별적 행동이었고 헌법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폭동이라고까지 보기는 어려웠어요. 그런데 이번 사건 같은 경우는 다릅니다. 법원 기능을 마비시켜서 내란죄에 해당할 수 있는 소지도 있기 때문에 처벌은 매우 강력하게 이루어질 걸로 예상됩니다."
-오지원 변호사-
(작가 : 김효진, 인턴 : 배시진, 사진=연합뉴스,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