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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어 죽겠다"…이런 사회에서 필요한 걸 꼽아보자면 [스프]

[뉴스페퍼민트] 공감 능력과 사회의 품격, 그리고 소설의 가치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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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처지와 경험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이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자주 들리는 요즘입니다. 

커다란 고통을 겪는 사람들

 앞에서도 내 몸의 작은 상처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이치 같아도 그 정도가 지나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다들 사는 게 힘들 테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예전에 비하면 객관적인 경제 지표가 분명 나아졌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순전히 경제적 풍요만으로 원인을 둘러댈 수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AI), 그것도 분야와 부문을 망라하는 범용 인공지능(AGI) 시대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가 됐습니다. 요즘 같은 때 가장 귀한 능력은 무엇일까요? 궁극적으로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기계', '지능적인 로봇'과 함께 번영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 덕목을 갖추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연습하고 훈련해야 할까요?

여러 답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도 제대로 하자면 논문 몇 편을 참고해 답해야 하겠지만, 사안을 이해하고 이게 왜 문제의 핵심에 닿아 있는 질문인지 최소한 스스로 설명할 수 있으려면 일단 사안을 구체적으로, 또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다시 요구되는 능력이 공감 능력일 텐데, 이건 역지사지하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지 않았다면" 갖추기 어려운 능력입니다.

이 습관을 들이는 가장 좋은 훈련 프로그램이 바로 문학, 특히 소설입니다. 함축적인 시나 연극의 대본인 희곡보다도 수많은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복잡다단하게 얽히고설킨 소설이 제격입니다. 소설은 하나의 사건을 여러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더없이 좋은 교재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문학이 도대체 우리에게 주는 가치가 무언지 묻는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공감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답할 겁니다. 물론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해 성공하려고 공감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미 분 지 꽤 오래된 "코딩 학원 열풍"만큼 책 읽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강조되고 회자하지 않은 건 참으로 아쉽고 씁쓸한 일입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데이비드 모리스가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도 비슷한 점을 지적합니다. 모리스는 특히 문학 하는 사람, 소설가뿐 아니라 문학 작품, 소설을 읽는 사람 중에 (젊은) 남성이 급격히 줄어드는 세태를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사회를 이루고 있는 여러 집단 가운데 특정 집단의 세계관만 좁아지고 공감 능력이 줄어든다면, 이는 여러모로 좋지 않은 신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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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문학 소년'이 줄어드는 현실이 우려스러운 이유"

모리스는 지난 미국 대선 결과와 "문학 소년이 줄어든 현실"을 직접 인과관계로 연결하진 않으면서도, "책 읽을 시간에 비디오게임이나 포르노에 빠진 젊은 남성들"이 "주로 페미니즘을 혐오하고 철저히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에 천착한 이들"의 왜곡된 세계관과 편협한 설명에 기대 세상을 바라보게 된 세태가 트럼프의 당선과 무관하지 않다고 짚었습니다.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한 분석

은 이미 여러 차례 했으므로, 오늘은 그보다도 소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기르고 익힌 사례를 같이 돌아보려 합니다. 마침, 모리스가 칼럼에서 언급한 소설가와 소설 중에는 제게도 깊은 울림과 충격을 준 작품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들입니다. 모리스는 "시녀 이야기"를 언급했지만, 저는 애트우드가 30여 년 만에 쓴 후속작 "증언들"을 먼저 읽었고, 뒤에 "시녀 이야기"를 읽고 나서도 "증언들"을 더 좋아합니다. 오늘날 벌어지는 상황에 비춰 보기에 더 정확한 묘사라고 생각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2022년 미국 대법원이 반세기 동안 여성의 기본권으로 보장해 오던 임신중절권을 더는 국가가 보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돕스 판결을 내린 뒤 다시 읽었을 때의 충격 때문이기도 합니다.

임신중절권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에서 빠진 뒤 미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과 미국 사회의 반응은 애트우드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시시해 보일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책을 읽을 땐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이 있겠어? 과장이 심하네...'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소설을 납작하게 만든 거죠. 다시 집어 든 "증언들"은 소설이 아니라 예언서 같았습니다. 임신중절 시술을 받지 못해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산모에 관한 뉴스를 단칼에 가짜 뉴스로 치부하며, "중요한 건 내가 먹고사는 문제"라고 집요하게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해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곳이 많았습니다.

모리스가 특히 남학생들에게 애트우드의 작품을 꼭 읽게 한다는 대목에선 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특히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에 붙은 "페미니즘"이라는 딱지에 거부감을 느껴 책을 펴보지도 않은 분이 있다면, 그러지 말고 직접 읽고 스스로 소설의 세계에 몸을 흠뻑 담가본 뒤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엘레나 페란테가 쓴 베스트셀러 "나의 눈부신 친구들"도 코로나19 팬데믹 때 첫 권을 펼쳐 들었다가 닷새 만에 잠을 줄여가며 네 권을 다 읽었습니다. 평소에 책을 빨리 읽지 못하는 저로서는 기록적인 속도였는데, 밥때를 잊게 하고 졸린 눈 비벼가며 다음 장을 펼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실감한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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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이자, 주인공의 성장기인 1950, 60년대 나폴리와 이탈리아 남부의 상황은 어머니가 제게 들려준 본인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1960년대 한국과 닮은 점이 많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도 책을 추천해 드렸고, "어렸을 때 우리도 똑같았어", "딸들의 삶이 다 특히 힘들었겠구나..." 같은 이야기로 시작하는 생생한 비교를 듣고 작품을 더 음미해 볼 수 있었습니다. 혼자 하는 독서로 그쳤다면 미처 생각지 못하고 보지 못했을 것들을 떠올려 보며, 이야기에 한 번 더 빠져볼 수 있었습니다.

엘레나 페란테는 필명

으로, 아직 공식적으로 누구인지 정체가 공개된 적이 없습니다.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이메일 인터뷰만 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엘레나 페란테가 누구인지를 두고 수많은 추측과 가설이 존재하는데, 실제 작가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나이가 몇 살이든, 혹은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여러 명이 모여 만든 하나의 정체성이든 중요한 건 페란테의 작품 세계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인간의 삶을 성별과 세대에 따라 묘사하고 그려낸 방식입니다.

모리스는 아마도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는 모리스의 칼럼이 발행된 지난달 7일, 온 사회가 트라우마에 떨 수밖에 없는 공포의 순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적인 계엄 선포가 트라우마를 불러일으켰는데, 그 이전 가장 최근의 계엄령이 한국 사회에 남긴 끔찍한 상처와 무서움을 몸서리칠 만큼 선연한 필체로 풀어낸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을 준비하던 중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지금 봐도 공교롭습니다.

저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이 무수한 시민들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진 뒤에 태어난 세대입니다. 살아서 직접 보지 못한 일을 뒤늦게 접하고 복기해 가슴에 새겨 넣을 수 있던 건 문학 덕분이었습니다. 역사책과 훌륭한 다큐멘터리도 사실을 파악하고 공부하는 데 물론 도움이 됐지만, 당시 광주에 있던 사람들이 과연 어떤 마음으로 결심하고 행동하고 또 다짐하고 반응한 것들이 모여 역사가 되었는지를 조심스럽게나마 짐작하고 추정하게 해준 건 소설이었습니다. 때로는 움찔하면서 같이 아파하고, 반대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가하는 폭력을 묘사한 장면을 읽다가는 화를 이기지 못한 채 책을 덮고는 하나부터 스물이고 서른까지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 뒤에야 간신히 다시 책을 펼 수 있었습니다. 역사책은 그런 식으로 읽게 되지 않지만, 소설이라 그랬을 테고, 소설이라 그때의 감정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2024년의 계엄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덮고 무마하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고통이 온몸을 휘감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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