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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역사와 역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입니다. 1987년 개헌을 통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헌법재판소는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 다양한 헌법적 갈등을 해결해 왔죠. 특히 헌법소원이 전체 사건의 97.5%를 차지할 정도로 국민의 기본권 구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늘어나는 만큼, 처리되지 못한 사건들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2편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직면한 현실적 문제와 그 원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건 증가와 처리 지연, 미제사건의 증가뿐만 아니라, 헌법재판관 임명 지연과 정치의 사법화라는 더 큰 문제까지. 헌법재판소의 현재 상황을 짚어보며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부분들을 다뤄보겠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처리 못한 사건만 해도 1,401건최근으로 오면 올수록 헌법재판소에 접수되는 사건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1990년대엔 1년에 평균 489.7건만 처리하면 됐지만, 2000년대엔 그 규모가 1,297.4건으로 증가했죠. 2010년대엔 한 해 평균 2,000건을 돌파(2,003.9건)했고, 오늘날 2020년대엔 2,802건을 기록 중입니다. 이러한 증가세라면 헌법재판소에서 한 해에 처리해야 할 사건이 3,000건을 돌파할지도 모릅니다.
헌법재판소법에서는 헌법재판소에 사건이 접수된 지 180일 이내에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규정대로 지켜지질 않고 있죠. 물론 정치적으로 신속한 판결이 필요한 탄핵심판은 여태껏 180일을 넘겨서 선고된 적이 없었습니다. 헌법재판소에 들어온 수많은 사건들 중에 더 중대하고 다툴 여지가 많은 탄핵심판과 정당해산심판은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건들의 처리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게 되겠죠. 지금 상황을 생각해 보면 될 겁니다. 대통령 탄핵 사건이 접수되었는데, 다른 헌법소원 사건을 처리하긴 어려울 테니까요.
그러다 보니 사건 하나당 평균 처리 기간을 보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4년 이후 연도별로 헌법재판소 심판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을 살펴보면 2014년엔 542.5일로 약 1년 6개월 정도 걸렸다면, 2023년엔 835.3일로 2년을 넘어가버렸죠. 180일을 지키는 건 사실상 어렵고, 1년을 넘는 건 부지기수, 늦어지면 2년도 더 걸리는 경우도 많다는 겁니다.
처리되지 못하고 미제로 남는 사건들도 당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위의 그래프는 월별 헌법재판소의 미제사건 건수인데요, 2022년 4월엔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 1,752건으로 가장 피크를 찍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그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지난해 연말에 탄핵 등 중차대한 사건이 많이 접수되면서 다시 미제사건 규모가 늘어나는 모습입니다. 2024년 12월 말 기준으로 미제사건은 모두 1,401건입니다.
사실 헌법재판소에서 처리할 수 있는 사건 규모는 크게 변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건을 처리해야 할 헌법재판관이 9명으로 정해져 있으니까요. 게다가 재판관 규모가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크지 않은 편이라 속도를 내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죠.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독립된 헌법 재판기관이 꾸려진 오스트리아는 14명의 재판관으로 운영하고 있고, 독일은 16명, 대만도 15명이 담당하고 있거든요.
헌법재판관의 수를 늘리면 되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그게 또 간단치가 않아요. 왜냐하면 헌법재판소와 헌법재판관은 헌법을 근거에 운영되는 만큼, 수정하려면 헌법을 수정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헌법재판소에서는 헌법재판소규칙을 개정해서 추가 인력을 늘리고 있습니다. 1988년엔 헌법재판소 사무기구 인력이 145명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347명까지 늘어났습니다. 물론 이렇게 인력이 늘어났다고 해도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는 탓이라 여전히 미제사건 규모는 상당히 많습니다.
완벽한 9인 체제에 틈이 생기고 있다?재판관의 규모를 쉽게 늘릴 수 없다면, 있는 9명이라도 잘 유지하는 게 무척 중요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또 쉽지만은 않아요. 임명 과정을 두고 정치권에서 협의가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면서 공백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기본적으로 헌법재판관 9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중에 3명은 국회에서 선출된 사람을, 또 다른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사람을 임명합니다. 그중에 국회에서 선출이 안 되어서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임기를 마무리하는 헌법재판관과, 새롭게 임기를 시작하는 헌법재판관의 임명 시점을 붙여서 재판 공백이 없도록 하고 있는데요. 가령 1월 9일로 임기가 마무리되는 재판관이 있다면, 이 재판관을 이을 후임 재판관은 1월 10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도록 하는 식으로요. 만약 이 타이밍이 맞질 않으면 헌법재판관 공백이 생길 수 있겠죠.
그렇다면 역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는 얼마나 많은 공백이 있었을까요? 마부뉴스가 여태껏 대한민국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61명의 임기를 그래프로 그려봤습니다. 줄 하나가 재판관 한 명의 임기를 나타냅니다. 재판관의 임기는 6년인데, 그래프를 유심히 보면 6년보다 더 길게 이어진 선이 보일 겁니다. 바로 김진우 재판관과 김문희 재판관인데 두 재판관은 연임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9인 체제가 주욱 이어지는데, 가끔 그 규모가 줄어드는 경우가 생기고 있습니다. 2011년 부근을 보면, 헌법재판관이 8명으로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어요. 당시 2011년 7월 10일을 끝으로 조대현 재판관이 임기가 종료되었는데요. 조대현 재판관은 국회 몫의 재판관이었던 만큼 국회에서 후임을 추천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재판관 후보자를 두고 청문회가 파행을 겪으면서, 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었어요. 이후에도 국회에서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시간이 지체되면서 헌법재판소는 8인 체제로 1년 넘도록 운영된 바 있죠. 최근엔 국회 추천 몫 3명의 재판관 후임이 정해지지 않으면서 6인 체제가 이어지기도 했고요.
전문가들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공백이 이어지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가뜩이나 사건도 늘어나고 있는데, 사람마저 없으면 안 되잖아요. 참고로 독일과 스페인에서는 임기 만료가 되거나 정년으로 퇴임하는 재판관은 후임이 임명될 때까지는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예비 재판관 6인을 두어 재판관의 자리가 빌 경우 예비 재판관이 그 직을 수행할 수 있게 해서 공백을 막고 있죠. 전문가들은 해외 헌법재판소의 사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도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정치의 사법화로 상황이 심각해진다면현재 헌법재판소가 처해 있는 상황을 정리해 보면 결국 핵심은 정치의 부재에서 비롯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사건이 과거보다 많이 늘어났고, 그중에서도 특히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정치적인 영향력이 큰 탄핵심판 같은 사건이 늘어난 걸 보면,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사법적으로 판단을 받겠다는 '정치의 사법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또 하나는 국회 몫으로 있는 3명의 헌법재판관 문제가 과거보다 더 자주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부분 역시 정치의 부재 때문에 발생한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서로 잘 협의해서 헌법재판관을 임명해 주어야 하는데, 과거보다 갈등이 더 심해지면서 임명에 시간이 걸리고 그 결과로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워진 거죠. 결국 현재 헌법재판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대화와 타협이 함께하는 정치일 겁니다.
나아가 재판관 규모 같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위해서도 정치가 필요합니다.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선 국회의 찬성을 얻어야 하니까요. 어떠한 측면을 보더라도 지금의 헌법재판소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헌법 질서를 유지하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선, 정치가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