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사진은 니콘, 상업 사진은 캐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있었습니다. 이 말은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서서히 생명력을 잃어왔는데 지난해 이런 사실에 도장을 찍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작년 7월,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후보가 유세 도중 피격된 겁니다. 총알은 트럼프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고, 그는 피를 흘리면서도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높이 쳐들어 “싸우자!”라고 외쳤습니다. 이 순간이 사진에 찍혔고 이 사진을 찍을 때 쓰인 카메라는 소니 제품이었습니다.
퓰리처상 수상 경력의 AP통신 사진기자 에반 부치는 소니의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인 ‘알파9 Ⅲ’ 바디에 소니의 FE 24-70 표준 줌 렌즈를 장착하고 조리개 2.8, 셔터속도 1/4000초로 역사를 찍었습니다. 이 사진이 AP를 타고 전세계로 타전되는 순간, 이미 미국 대선은 끝났다는 평가마저 나돌 정도였습니다.
로이터통신의 베테랑 종군 사진기자인 리(커스틴 던스트)도 소니의 ‘알파7R’을 씁니다. 세계 도처의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는 이번에는 미국의 ‘내전’을 취재 중입니다. 1861년 발발했던 ‘남북전쟁’(The Civil War) 이후 미국 역사상 두 번째 내전입니다.
물론 이것은 영화입니다.
독립·예술 영화의 명가인 A24가 시도한 첫 번째 블록버스터인 이 영화의 제목은 바로《시빌 워 Civil War》. 즉, 내전입니다.
내전이 왜 일어났는지는 나오지 않는 가운데, 대통령(측)과 캘리포니아-텍사스주 연합군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전쟁을 벌입니다. FBI를 해체하고 시민에 대한 공습까지 명령한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은 지난 14개월 동안이나 인터뷰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녹화된 영상 담화로만 자신들이 승리를 목전에 뒀다고 주장합니다.
사진기자 리와 취재기자 조엘은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목숨 걸고 내전 상태의 국토를 가로질러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으로 향합니다. 리를 우상으로 여기는 사진기자 지망생 제시도 우여곡절 끝에 합류합니다. 급박한 순간에 부딪히면 카메라를 들 생각조차 못하고 허둥지둥하거나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는 제시에게 리는 냉정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묻지 않고 기록하지. 다른 사람들이 묻도록. 그게 우리 일이야.”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카메라를 꺼내드는 리조차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목숨 걸고 전장을 누비며 전쟁의 참상을 대중들에게 알려 왔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고, 미국은 결국 내전까지 치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저널리즘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뉴욕타임즈의 베테랑 기자인 새미까지 합류한 일군의 저널리스트 일행은 워싱턴으로 가는 길에 군인 복장을 한 정체불명의 사람들에 붙잡힙니다. 민간인 희생자 수십 명을 구덩이에 파 묻고 있던 이들은 정부군인지, 서부연합군인지, 민병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소총으로 무장한 이들 앞에서 리 일행은 덜덜 떨며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미국인입니다.”
섬뜩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어느 쪽 미국인인데?” (What kind of American?)
*
미국의 시사·문화 주간지 『더 뉴요커』는 최근 ‘두 번째 내전을 대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이 주간지에 따르면 많은 미국인들이 내전 등에 대비해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설 생존 공동체(시설)에 가입하고, 비상 식량을 비축하고, 총을 사고 있습니다. 미 연방재난관리청 통계로는 이런 시민들이 2천만 명에 달하고, 이는 2017년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라고 합니다.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미국도 증오와 분열에 위협받고 있고 《시빌 워》같은 영화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지금 우리도 이 영화 못지 않은 현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상대편을 향한 증오와 법 질서에 대한 막무가내식 부정 속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신뢰조차 유지하기 힘든 사회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상상조차 금기가 돼야 할 ‘내전’이라는 단어가 언급됩니다. 하지만 영화 《시빌 워》를 보십시오. 내전은 지옥입니다.
베테랑인 리가 소니 ‘알파7R’을 쓰는데 신세대인 제시는 오히려 니콘의 필름 카메라인 ‘FE2’를 들고 다닙니다. 처음에는 눈 앞에 폭탄이 터지면 당황할 뿐 어찌할 바를 모르던 제시도 내전의 참혹한 현장을 거쳐가면서 리만큼이나 물불 가리지 않는 종군 사진기자의 모습으로 변모해갑니다.
서부연합군과 함께 백악관으로 들어간 제시는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담아내고 이제 막 사진 저널리즘의 위력에 맛을 들이지만, ‘묻지 않고 기록한’(“We Record So Other People Ask”) 사진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숙고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제시의 특종 사진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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