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요구한 연인의 지인 500명에 은밀 동영상 유포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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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장

대학생 커플이 있었습니다.

남자가 물리적 폭행을 반복하자 여자는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남자는 성행위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자꾸 그러면 유포하겠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당장 이 자리에서 지우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습니다.

남자가 거절하자 여자는 신고하러 가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경찰서에 도착하기 전에 그 동영상이 유포됐습니다.

남자가 홧김에 여자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그곳에 저장된 연락처의 모든 사람에게 일괄로 동영상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휴대전화에는 대학의 같은 학과 동기들, 교수님, 초중고 동창 등 지인뿐 아니라 부모님과 친척들의 연락처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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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영상을 받은 사람은 500명도 훨씬 넘었습니다.

여자는 그 사건 이후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은둔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수치감에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남자를 만난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는 자책감에 우울감도 깊어졌습니다.

수도 없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도 무너졌습니다.

이는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이 전한 교제 폭력들 가운데 사이버폭력 사례입니다.

김 소장은 "동영상 유포, 딥페이크 등의 사이버 성폭력은 연인 사이에서도 종종 일어난다"면서 "그런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 자체가 정신적 살인에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런 협박을 받으면 고민할 것도 없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면서 "전문가와 경찰의 도움 없이 가족들이 홀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상대방을 자극해서 오히려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 소장은 "근원적으로는 교제폭력특별법을 제정해서 가해자를 엄중 처벌하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이런 법안은 2017년부터 국회에 제출됐지만 국회의원들은 관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대학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보건소, 대학 병원 등에서 임상 경험을 쌓았습니다.

2014년에는 한국청소년자살예방협회를 창립해 정서적으로 힘든 청소년들을 도왔습니다.

2016년에는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를 만들어 교제 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과의 관련 인터뷰입니다.

Q. 연인과의 성행위 장면을 동영상이나 스틸 사진으로 촬영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그러는 것인가?

소유 욕구가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촬영물을 갖고 있어야 온전하게 상대방을 소유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성적 착취를 통해 우월성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중에 연인이 떠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협박용으로 그런 영상물을 미리 찍어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격적으로 병리적인 것입니다.

Q. '리벤지 포르노' 가해자는 어떤 심리에서 그런 행위를 하나?

말 그대로 복수를 위한 것입니다. '네가 나를 버렸으니 내가 모욕당했다. 네가 날 무시했다. 그러니 너도 똑같이 한번 당해봐라.' 이런 복수 심리로 성행위 불법 영상물을 유포합니다.

Q. 피해자가 그 전에 동영상 촬영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인가?

거절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인이 달콤한 말로 "나 혼자 볼게", "너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기록물로 남기고 싶은 거야", "추억으로 간직하겠다"면서 간청하면 외면하기가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런 요구를 들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몸을 스스로 촬영해서 연인한테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연인이 "나를 사랑한다면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니 거절하지 못합니다.

Q. 그런 가해자들은 주로 남자들인가?

가해자로는 남자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그렇지만 여자인 경우도 있습니다. 30대 초반의 남녀 A와 B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1년 정도 만난 뒤 헤어졌습니다. 남자가 이별하자고 했습니다. B의 집착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헤어진 후 다른 여자친구 C를 사귀었습니다. 4년이 지났고 자연스럽게 C와 결혼까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때 갑자기 전 여친 B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다시 사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다른 남친을 만나봤지만 A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A는 거절했지만 B는 매달렸습니다. A가 흔들리지 않자 B는 A의 여친 C에게 반복적으로 성행위 동영상을 보냈습니다. 그 영상에는 A와 B의 성행위 장면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동영상을 본 C는 더 이상 A를 만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Q. 성행위 동영상 유포는 엄청난 고통을 초래할 듯한데?

동영상이나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 자체가 살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는 그 동영상이 유포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초긴장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Q. '디지털 장의사'를 통해 그런 동영상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나?

피해자들은 그런 전문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동영상은 복제되고 양산되기 때문입니다.

Q. 연인한테 사이버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성관계 장면을 기록으로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본인 스스로 촬영하려 하지 말고, 상대방이 찍자고 하면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Q. 연인이 불법 동영상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삭제하라고 분명히 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헤어지는 게 좋습니다. 불법으로 촬영했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Q. 상대방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유포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와 적당히 타협하면 또다시 협박당하고 평생 끌려다닐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요구에 따라 돈을 주면 그다음에 더 많은 돈을 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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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때는 연인이었는데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한데?

파트너를 성적 착취, 경제적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재고의 여지가 없습니다. 강력히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고통에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Q. 딥페이크는 인공 지능을 이용해 만든 합성 동영상인데, 이런 피해자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딥페이크 동영상은 워낙 정교해서 조작물이라는 것을 눈치채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피해자들은 그 동영상을 누가 보는 것은 아닐까 하고 공포에 떱니다. 동영상이 모두 제거됐다고 하더라도 그걸 본 사람의 머릿속에는 그 장면이 남아 있으니 피해자의 고통이 매우 큽니다.

Q. 다른 방식의 교제 성폭력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음성 녹음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여성은 커피숍에서 남친을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 전체 5∼6시간의 모든 내용을 녹음했습니다. 거기에는 성적인 내용도 들어 있었습니다. 휴대전화에 녹음 기능이 있으니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집에 와서는 그 녹음을 반복해서 듣고 회사에서도 들었다고 합니다.

Q. 왜 그런 행위를 하나?

일종의 집착입니다. 본인은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병리적인 것입니다. 샤워할 때도 듣고, 화장실에서도 듣습니다. 잠도 안 자고 밤새워 들으니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이런 기록물은 최악의 경우 협박용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Q. 초등학생들이 사이버 성폭력을 당하는 일이 있나?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아이들이 어른으로부터 그런 피해를 입는 경우가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가해자는 전(全) 연령대입니다. 내가 파악한 사례 중 한 가해자는 50대 후반의 남자였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아내와 20대의 자식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Q. 초등학생이 어떤 경로로 그런 피해를 보나?

아이들이 친구 문제나 가정 폭력 등으로 힘들 때 우울증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는 일이 있습니다. 그때 어른들이 접근해옵니다. 그들은 부모와 달리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공감해줍니다. 그렇게 환심을 산 뒤에 아이에게 만나자고 해서 성추행 또는 성폭행하고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합니다.

Q. 아이가 피해를 입으면 부모한테 즉각 알려야 할 것 같은데?

가해자는 다정하게 보살펴주고 용돈도 주니 아이는 심리적으로 그 사람한테 의존하게 됩니다. 심지어 자기 부모보다 낫다고 생각해서 부모를 멀리하기도 합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잔소리를 많이 하는 부모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부모에게 알리지 말라고 협박하는 일도 많습니다. "부모가 알면 큰일 나고, 너도 나도 생활하기 어렵게 된다", "너희 부모도 회사에서 매장된다", "엄마 아빠한테 알리면 학교에 다 퍼트리겠다"고 협박합니다.

Q. 자녀에게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나?

평소에 자녀와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의 사생활도 알고, 주변 관계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행동 변화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위기의 징후로는 아이가 방에서 나오지 않고, 말이 없어지고, 귀가 시간이 달라지고, 성적이 떨어지고, 부모와의 관계가 멀어지는 현상 등이 있습니다. 의심되면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좋습니다. 피해 사실이 확인되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아이에 대한 심리 치료도 필요합니다.

(사진=본인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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