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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이 현실로…기묘한 상황"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스프]

[마부뉴스] 2024 올해의 인물 : 한강(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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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슈를 데이터로 깊이 있게 살펴보는 뉴스레터, 마부뉴스입니다.

지난 10일, 우리는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라는 역사를 썼습니다. 제주 4.3 사건과 광주 5.18 민주화운동처럼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이를 문학으로 풀어낸 한강 작가의 작품은 전 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습니다. 한강 작가의 수상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편에서는 한강의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한강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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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2024 was awarded to Han Kang "for her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

2024년 노벨문학상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한강에게 수여되었습니다.

한강 작가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스웨덴 아카데미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언급했습니다. 한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소년이 온다>에서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루었는데요. 두 사건 모두 국가 권력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던 우리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 사태를 포함해서 1954년 9월 21일까지 약 7년 가까이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합니다. 2024년 3월 기준으로 4.3 사건으로 발생한 민간인 피해자 규모는 1만 4,822명.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6.25 전쟁 다음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죠. 진상조사위원회에서는 집계되지 않은 피해자까지 포함한다면 인명 피해 규모는 최대 3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5.18 민주화운동에서도 민간인 사망자는 다수 발생했습니다. 지난 3월에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4년간의 활동 결과를 담은 종합보고서를 공개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한 민간인은 모두 166명으로 집계되었죠. 현재까지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행방불명자 73명도 있고, 당시 입은 부상이 직간접적으로 원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 경우도 113명이나 됩니다. 집계된 사망자의 연령대를 살펴보면 73.5%가 미성년자와 청년층에 집중되어 있을 정도로 애꿎은 민간인 피해자 규모가 상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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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은 단순히 우리나라만 겪은 고통이 아닙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에 Atrocity Forecasting(잔혹행위 예측 프로젝트)라는 게 있는데요. 이 프로젝트에서는 전 세계에서 발생한 집단학살 사건들을 다루는데, 제주 4.3 사건이나 미얀마 군사정부의 민간인 학살 같은 국가 권력에 의한 자국민 학살 등의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정부에 의한 민간 학살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 규모 등 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피해 수치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래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피해자 규모를 제외하고도 전 세계에선 비슷한 역사적 트라우마가 반복되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장 불룩 튀어나온 1952년과 1962년은 모두 중국의 사례인데, 1947년부터 진행된 중국 공산당의 토지개혁운동은 1952년까지 약 350만 명의 민간인 숙청이 이뤄졌죠. 1958년부터 4년간 이뤄진 대약진운동 과정에서도 약 250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나왔고요.

한강 작가는 생명을 짓밟은 역사적 사건과 그로 인해 개인이 겪어야 하는 트라우마를 문학으로 극복해 냈습니다. 반면 동시대의 어떤 이는 다시금 과거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켰고, 자칫 잘못했으면 민간인 사상자까지도 발생할 수 있었을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의 종신회원인 스웨덴의 작가 엘렌 맛손은 한강의 책 내용이 현실이 된 셈이라며 참으로 기묘한 상황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독자들도, 학자들도... 한강에 대한 관심 UP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서 국내 서점가는 말 그대로 들썩였어요. 한강 작가의 도서 판매량은 급증했고, 주요 인터넷 서점의 실시간 베스트셀러 1위부터 10위까지를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차지하면서, 음원 차트에서만 보던 차트 줄 세우기를 볼 수 있었죠. 주문량이 늘어나면서 출판사들도 계속 책을 찍어냈지만, 사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원활한 판매가 이뤄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한강 작가의 작품만 많이 팔린 게 아닙니다. 이번 노벨문학상의 영향으로 문학 작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늘어났어요. yes24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강 작가의 작품을 제외하고도 '소설/시/희곡' 분야 판매량이 노벨문학상 발표 주간에만 전년 대비 49.3%나 증가했더라고요. 노벨문학상 말고 다른 문학상 수상 작품이나, 후보로 함께 오른 도서들의 판매량이 많이 늘어났고, 한강 작가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책들도 많이 팔렸습니다.

온 나라가 들썩였지만 동네 책방에게는 남의 집 잔치였다는 맹점도 있었습니다. 교보문고 같은 대형 서점엔 아침부터 오픈런이 벌어질 정도였지만 동네 책방엔 책이 없어서 판매할 수가 없었거든요. 교보문고는 대형 서점(소매점)이기도 하지만 도매업 기능도 같이 하고 있는데요. 평상시엔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때처럼 판매할 책이 부족한 상황이 되니까 동네 책방에 책을 판매하는 도매업 기능은 하지 않고, 자사 서점에 우선적으로 판매하는 소매업 역할을 우선시했습니다. 관련해서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뒤늦게 교보문고는 동네 책방에 넘기는 부수를 늘리면서 상생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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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뿐 아니라 학계의 관심도 한강 작가를 향하고 있습니다. 세계 3대 학술지 중 하나인 네이처에서는 AI를 활용해 주제별로 연구 동향을 확인할 수 있는 'Nature Navigator'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기능에서 한강 작가를 검색해 보면 과거와 비교해서 최근에 관련 학술 저작물이 크게 늘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2007년 국내에 출판된 <채식주의자>는 2015년이 되어서야 영어 번역본이 처음으로 출간되었고, 뒤이어 2016년 <소년이 온다>와 2017년 <흰>의 번역본이 차례로 나왔어요. 해외에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2016년 한강 작가는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 학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죠. 2017년부터 확 늘어난 한강 관련 학술 저작물은 2024년 10월 10일 기준으로 총 138건입니다.

사실 음악이나 영화와 비교해서 문학 작품은 언어 의존성이 매우 큽니다. 각국의 언어로 번역을 해야 하고, 또 그 번역도 원문의 의도를 적확하게 담아내야만이 제대로 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만큼 일종의 시차는 있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한강 작가는 그 시차를 극복하고 주요 문학상을 휩쓸고 노벨상까지 수상한 겁니다.

"문학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의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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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의 반대 편에 서 있습니다.

한강 작가는 노벨상 만찬에서 문학의 역할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 제주도와 광주에서는 권력에 의해 수많은 생명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 행위에 반대하기 위해 펜을 들어온 한강 작가의 모습은 지금 오늘날 우리에게 더 크고 선명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주 우리는 무장한 군인들을 마주했지만 정말 다행히도 최악의 상황은 마주하지 않았습니다.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며 제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총을 메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장한 젊은 경찰과 군인들 역시도 민간인을 상대했지만 소극적으로 움직였죠. 일부 결정권자를 제외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생명을 파괴하려는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희망이 다수에게 있기에, 우리는 앞으로도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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