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 송국리 유적 27차 발굴 조사 전경
한
반도의 청동기 시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충남 부여 송국리 유적 일대에서 대규모 토목 공사를 한 흔적이 새로 확인됐습니다.
국가유산청과 부여군, 한국전통문화대는 사적 '부여 송국리 유적' 일대를 조사한 결과, 청동기 시대에 대지를 조성하기 위해 흙을 쌓고 평탄하게 다진 흔적을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송국리 유적은 청동기시대 중기를 엿볼 수 있는 농경 유적입니다.
1975년에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돼 지금까지 타원형의 구덩이와 기둥 구멍으로 이뤄진 집터, 목이 외부로 벌어진 큰 항아리, 삼각형 돌칼 등이 나온 바 있습니다.
올해 조사에서는 약 1천㎡에 걸쳐 대지를 조성한 흔적을 확인했습니다.
조사단은 "기존에는 흙을 쌓은 성토층이 매우 한정된 양상으로 파악됐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넓은 면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흙을 쌓고 다지는 지점에 따라 다양한 재질의 흙을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사가 있는 지층에서는 위쪽의 암반층을 깎아낸 뒤, 흙을 쌓았을 것이라고 연구소는 설명했습니다.
대지를 조성하며 만든 도랑 형태의 유구(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자취)에서는 회색과 적색 점토 덩어리 등도 발견됐습니다.
조사를 진행한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관계자는 "한반도 내에서 비슷한 시기 청동기 유적에서 이 정도로 대규모 성토층이 확인된 사례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대규모 공사를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며, 이를 주도할 강력한 사회 체계도 있어야 한다"며 "청동기시대 사회 구조와 규모를 입증할 수 있는 주요한 자료"라고 덧붙였습니다.
올해 조사에서는 길게 늘어선 나무 기둥 흔적도 확인됐습니다.
나무 기둥 구멍이 열을 지어 배치된 유구를 뜻하는 '목주열'은 방어 시설, 의례 시설, 지상식 가옥 등 여러 시설을 축조할 때 활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번에 발견된 목주열은 동·서편에 각각 두 줄로 약 200m에 걸쳐 이어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동쪽과 서쪽 모두 19개의 흔적이 확인됐으며 모두 북쪽에 있는 무덤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이 무덤에서는 비파형 동검과 짧은 대롱 모양의 구슬 등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이 나와 마을의 지배자가 묻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연구소 측은 "동쪽과 서쪽 목주열은 약 40m 정도 떨어져 있다"며 "무덤군으로 향하는 점을 볼 때 제의를 위한 통로 시설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가유산청은 향후 대지 조성 과정과 정확한 규모, 유구 성격 등을 조사할 방침입니다.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