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짐을 갖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고(故) 김수미가 남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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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김수미

"어쩜 이 짐을 갖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지난 10월 25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 김수미(본명 김영옥·1949∼2024)의 일기 곳곳에는 화려한 배우의 모습 뒤 고통 어린 속내, 일에 대한 열정과 불안, 가족을 향한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가장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던 곳은 바로 작은 수첩이었습니다.

내용은 때마다 달랐습니다.

한 페이지 빼곡하게 감사 기도를 담기도 했고, 때로는 흐트러진 글씨체로 절절한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김수미가 1983년 30대부터 말년까지 솔직하게 써 내려간 일기가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으로 오늘(12일) 출간됩니다.

유가족은 김수미가 말년에 겪었던 고통을 옆에서 지켜봐 온 만큼 안타까운 마음에 일기를 공개했다며 책 인세는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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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남긴 글에서도 일기를 책으로 펴내겠다는 의지와 그 이유가 읽힙니다.

김수미는 "이 책이 출간된 후 제 가족에게 들이닥칠 파장이 두렵다"면서도 "주님을 영접하고 용기가 생겼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제가 지금 이 나이에, 이 위치에 있기까지 제 삶의 철학을 알려주고 싶어서다"라고 썼습니다.

출간 전 입수한 책에 따르면 별세 직전 김수미는 자기 이름을 걸고 식품을 판매하던 회사와의 분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2023년 10∼11월 일기에서 확인됩니다.

고인은 "하루하루가 고문이다. 기사가 터져서 어떤 파장이 올지 밥맛도, 잠도 수면제 없이 못 잔다", "지난 한달 간 불안, 공포 맘고생은 악몽 그 자체였다. 회사 소송 건으로 기사 터질까 봐 애태웠다"고 털어놨습니다.

이 시기는 아들이 김수미의 이름을 걸고 식품을 판매해 온 회사의 A 씨를 횡령 및 사기 혐의 등으로 고소하고, 상대가 맞불 기사를 내겠다고 맞섰던 때입니다.

올해 1월에는 회사 측이 회사 대표이던 아들을 해임한 뒤 김수미와 함께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해 관련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고인은 "주님, 저는 죄 안 지었습니다", "오늘 기사가 터졌다. (중략) 횡령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는 글을 쓰며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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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수미의 일기 속 내용

고인의 딸은 "엄마는 나중에 무혐의나 무죄가 되는 문제가 아니라 기사 한 줄이 나는 게 무섭고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다"며 "겉보기와는 달리 엄마가 기사, 댓글에 엄청나게 속상해하고 견디기 힘들어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수미는 말년에 공황장애도 앓았습니다.

올해 1월부터 "정말 밥이 모래알 같고 공황장애의 숨 막힘의 고통은 어떤 약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날에는 "공황장애, 숨이 턱턱 막힌다. 불안, 공포, 정말 생애 최고의 힘든 시기였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가족들은 생전 고인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비춘 홈쇼핑 방송과 관련해 모두 만류했지만, 회사의 압박 탓에 출연한 것이 가슴 아팠다고 말했습니다.

딸은 "스트레스와 공황장애로 정신적으로 힘드셔서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태였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해도 에너지 소모가 큰 게 홈쇼핑인데 압박 속에서 하시려니 힘들어했다"고 기억했습니다.

일기장에 삶의 고통만 담긴 것은 아니다. 일에 대한 애정도 빼곡히 기록했습니다.

고인은 1971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해 최근까지 50년 넘게 쉼 없이 활동해 온 배우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은 권태를 모르고 이어졌습니다.

"목숨을 걸고 녹화하고, 연습하고, 놀고, 참으면 어떤 대가가 있겠지"(1986년 4월), "어제 녹화도 잘했다. 연기로, 70년 만에 다시 데뷔하는 마음으로 전력 질주해서 본때를 보여주자"(2004년 1월), "너무나 연기에 목이 말라 있다"(2017년 2월)

김수미는 연기뿐만 아니라 손맛과 푸짐한 음식 인심으로도 이름이 잘 알려졌습니다.

그는 "중1 때부터 고3까지 난 늘 배가 고팠다"며 자신과 밥은 뗄 수 없는 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원일기' 녹화 당시 부엌칼을 들고 다니며 무나 고구마를 깎아 먹고, 소품으로 차려진 밥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소품 그만 좀 먹어요"라는 스태프의 타박을 들었다는 일화도 언급했습니다.

일기에는 가족을 향한 복잡한 애정도 담겼습니다.

40년 전 남긴 글에서는 배우가 아닌 엄마의 마음이 읽혔습니다.

"앉아 있을 힘도 없는 육신을 끌고 곤하게 천사처럼 자는 딸아이 이마에 입을 맞추고 매일 맹세한다. '너희를 위해 이 엄마 열심히 살게'라고."(1985년 10월)

고인이 무엇보다 바라왔던 것은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글을 쓰는 평화로운 삶이었습니다.

그는 1986년 일기에서 "화려한 인기보다는 조용한, 평범한 애들 엄마 쪽을 많이 원한다. 적당하게 일하고 아늑한 집에서 자잘한 꽃을 심어놓고 좋은 책들을 읽으며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고 싶다"고 바랐습니다.

2011년에도 "마지막 소원이 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아니면 1층 담에 나팔꽃 넝쿨을 올리고 살아보고 싶다. 그러면서 글을 쓰고 싶다"고 소망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49재는 오늘 오후 경기 용인에서 열립니다.

(사진=유가족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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