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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 같은 짓 하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이유 [스프]

[한비자-정치적 인간의 우화] 권세가들의 깡패 같은 행동은 왜 칭송받을까 (글 : 양선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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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孤憤)은 [한비자]에서 가장 유명한 글 중 한 편입니다. 훗날 진시황이 된 영정이 섭정을 받던 청년 진왕 시절, 한비자가 쓴 <고분>과 <오두>(五蠹) 두 편을 읽고서 "글쓴이와 교류할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고 했다는 옛이야기는 유명하죠. 이후 '한비앓이'를 하던 진왕이 한나라를 위협하며 한비자를 내놓으라고 닦달해 그를 진나라로 불러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한비자는 1년여 만에 순자 밑에서 동문수학한 이사에 의해 진나라 감옥에서 독주로 자살당하게 되죠.

어쨌든 한비자의 운명을 갈랐던 글, 청년 시절의 진시황을 격동시켰던 글 <고분>은 나 홀로 분노하면서 쓴다는 뜻으로 썩어빠진 권세가들이 어떻게 국정을 농단하는지 생생하게 기록합니다. 어째서 권세 높은 실권자들은 깡패같이 행동해도 칭송받는지, 어째서 그런 자들 주변엔 불초한 인간들만 꼬이는지... 읽다 보면 저절로 긴 한숨이 나옵니다. 이 얘기들이 옛날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겠죠.

<고분>에서는 국정을 농단하고, 깡패 같은 짓을 하는 권세가들이 칭송받는 메커니즘을 먼저 밝힙니다. 현대 왕(군주)이 없는 민주주의 사회에선 '군주'의 자리에 '주권시민'을 대입해서 읽어보면 훨씬 몰입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1
요직을 차지하고 실권을 장악한 자는 국정을 농단하여 나라 안팎이 그를 위해 움직이게 하므로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군주를 장악하여 군주의 비서인 낭중조차 그를 통하지 않고는 군주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까닭에 군주 측근들도 그를 위해 잘못을 숨겨주게 된다. 학자들도 그를 통하지 않고는 봉록이 깎이고 대우가 낮아지는 까닭에 그를 위해 변호해 준다. 제후와 백관, 낭중, 학자 등 네 계층의 도움으로 사악한 신하들은 스스로를 분식할 수 있게 된다.
실권을 장악한 세도가가 실력 있는 관리들을 천거할 리 없고, 군주 역시 이들 네 계층의 도움을 얻지 않고는 사악한 신하들의 의도를 밝힐 수 없다. 군주의 눈이 더욱 가려지고 신하의 세도가 더욱 커지는 이유다.
요직을 차지한 자들이 군주의 신임과 총애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오랫동안 친숙한 사이라면 더 말할 게 없다. 군주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에 따라 비위를 맞추는 것은 원래 이들이 출세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관작이 높고 귀해지고 따르는 무리가 많으면 온 나라가 그를 칭송하게 된다.

그렇다면 청렴하고 실력 있는 사람들은 왜 요직을 차지하지 못할까요. 『한비자』에선 그들이 부패 고리 혹은 그들만의 리그에 끼어들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특성을 들어 설명합니다.

#2
청렴결백하고, 자신의 합리적인 능력으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뇌물을 써서 남에게 빌붙을 수 없고, 자기 능력을 믿으므로 법을 굽혀 편의를 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권세가나 왕의 측근에 빌붙지 않고 청탁을 받아들이지도 않으므로 적대적 관계가 된다.
군주의 측근들은 백이(伯夷)가 아니다. 청탁하지 않고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청렴이나 능력은 묵살하고 헐뜯고 중상한다. 일의 성과는 측근에게 제동 걸리고 청렴결백한 행위가 비방을 들으면, 이들은 벼슬자리에서 쫓겨나고 군주의 총명이 막혀 버릴 것이다.
실제 공적으로 평가하거나 사실 조사로 죄과를 심리하지 않고 측근이나 친숙한 자의 말만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조정엔 무능한 자와 부정한 관리만 남게 될 것이다.
큰 나라의 근심거리는 중신들의 권력이 지나치게 큰 데 있고, 작은 나라의 근심거리는 측근들이 지나치게 신임받는 데 있다.
#3
아부와 기만에 길든 군주의 마음을 법도에 맞는 말로 바로잡으려 하는 이는 오히려 군주의 심기를 거스른다. 군주와 소원한 자가 신임과 총애를 받는 신하와 겨루면 이길 승산이 없고, 첫 유세를 하는 이가 군주와 오래된 사이인 신하와 다투면 이길 도리가 없다. 군주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해야 하는 자가 군주의 비위를 잘 맞추는 신하와 다투면 이길 수 없고, 세력 없고 신분이 낮은 자가 존귀하고 권세 있는 신하와 다투면 이길 수 없고, 혼자만의 입으로 온 나라가 칭송하는 자와 싸우면 이길 도리가 없다.
#4
지혜로운 선비는 멀리 내다보므로 허무한 죽음이 두려워 중인(세도가)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현명한 선비도 몸을 닦아서 청렴하므로 간신과 함께 그 군주를 속이는 일을 부끄러워하여 결코 중인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요직에 있는 중신의 패거리들은 어리석어서 장래의 화를 미리 알지 못하는 자가 아니면 반드시 심성이 더러워서 간악한 일을 피하지 않는 자들이다.
중신들은 어리석고 타락한 탐관오리를 끼고 위로는 이들과 함께 군주를 속이고 아래로는 이들과 함께 이익을 찾아 백성의 이익을 일삼아 침탈한다. 파당을 짜서 한 패거리가 되어 서로 말을 맞추어 군주를 현혹하고 법을 파괴한다. 그리고 백성의 생활을 어지럽혀 마침내는 나라를 위험에 빠뜨려 영토가 깎이고 군주는 치욕을 당하게 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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