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①] 돈 없는데 병원 개원?…경찰, ‘허위 잔고 증빙’ 수사 착수

신용보증기금 예비창업보증 악용…브로커 ‘활개’


매년 새롭게 문을 여는 병·의원과 약국이 동네에 1-2곳은 꼭 있죠. 사실 동네에 병원이 더 생기면 대기 시간도 줄어들고 생활 인프라 측면에서는 주민으로서 나쁠 게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병원들이 어떻게 개원하는지 그 과정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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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이 개원하고 폐업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세금이 정당하지 않게 쓰였다면 어떨까요?

SBS 취재진은 여러 병·의원들이 개원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방식으로 개원자금을 마련한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신용보증기금 예비창업보증, 의료 전문직에 90% 가까이 집중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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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국에서 의원급 의료기관은 매년 평균적으로 1800여 곳이 개원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2078곳, 2023년에는 1511곳이 문을 열었습니다. 병·의원들이 문을 열 때 생각보다 자금이 많이 필요합니다. 개원 자금은 진료과마다, 규모에 따라,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공통적으로 개원자금에는 임대 보증금, 인테리어, 홈페이지 운영 및 마케팅, 의료장비, 초기 운영비 등이 들어갑니다. 서울 마포구 지역에 60평 대 치과를 개원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서울 마포구 일대 60평대 치과 의원 개원 시 예상 필요 자금>

임대료: 보증금 2억 원 / 월세 1천만 원

인테리어: 1억 5천만 원

홈페이지 및 마케팅: 5백만 원

의료장비: 1억 원

전자제품 등 기타: 2천만 원

초기 운영비 (직원 월급 등 6개월치): 1억 5천만 원

총 필요 자금: 6~7억 원 이상

생각보다 개원자금이 많이 소요되는데, 자금이 부족할 경우 어떻게 할까요? 먼저 의료인 전용 은행 대출 상품이 있습니다. 소위 ‘닥터론’이라 불리는 상품들입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에 한도도 높습니다. 치과의 경우엔 최근 6억 원까지 한도가 나오는 시중은행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금이 충분하지 않고 이미 대출이 있는 상태라면 은행 대출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겠죠. 이런 상황에 개원의들은

신용보증기금

을 많이 이용합니다.

신용보증기금은 기업이나 개인이 대출을 받을 때 보증을 제공해 부족한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돕는 준정부기관입니다. 즉, 정부가 보증을 서서 은행 대출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겁니다. 신용보증기금은 여러 보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개원의들이 많이 사용하는 건

‘예비창업보증’

이란 제도입니다.

예비창업보증은 전문 자격을 갖고 있거나 기술과 지식 분야에서 유망한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제도입니다. 전문자격에는 변호사, 의사 등이 포함되고 기술과 지식은 이공계 석박사 등이 포함됩니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최대 10억 원까지 보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자기 자본의 100%까지만 보증을 서줍니다. 다시 말해, 10억 원을 보증받으려면 내 통장에 10억 원이 있는 걸 증빙해야만 합니다. 예비창업보증은 매년 평균 7-8천억 원 정도 운용되는데, 의사나 약사 같은 의료 전문직에게 90% 가까이 집중 지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5년 간 예비창업보증을 통해 대출받은 병·의원과 약국은 10,093곳에 달합니다.

허위로 잔고 증빙…심지어 의사가 ‘쩐주’?

그런데 일부 병의원과 약국들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이 제도를 이용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개원 자금은 많이 필요한데, 자기 자본이 부족해 예비창업보증을 이용할 수가 없는 의사들에게 대출 브로커가 개입해서 해결을 해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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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법은 간단합니다.

대출 브로커가 잠깐 의사의 통장에 돈을 넣었다 빼 허위로 잔고 증빙을 하는 겁니다.

대신에 의사한테 직접 송금을 하지 않고, 의사의 가족 계좌를 한번 거칩니다. 타인으로부터 빌린 돈, 즉 상환 의무가 있는 차입금은 자기자본으로 인정이 안 되지만, 배우자나 부모님 등 직계가족으로부터 받은 돈은 인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실태를 알려온 의료 대출 업계 관계자는 “돈을 빌려주는 기간은 딱 3주면 된다”며 “예전에는 잔액증명서 찍어서 신용보증기금에 제출하는 날, 딱 하루만 빌려줘도 걸리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렇게 잠깐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브로커는 수수료를 받는데 통상 대여금의 3~7% 수준으로 형성되어있습니다. 10억 원을 잠깐 빌려주면 3천만 원부터 많게는 7천만 원까지 수수료로 받아가는 겁니다. 수수료 지불 방법은 브로커마다 상이한데, 보통 현금으로 받으며 국세청 추적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대출 브로커들은 이를

‘개원 컨설팅’

형태로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의료인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들어가보면 ‘신용보증기금 활용 대출법’ 등 여러 광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시중은행과 위탁계약을 체결한 법인에 소속된 대출 상담사들입니다. ‘닥터론’ 같은 의료인 전용 대출 상품을 판매하면서, 신용보증기금을 활용한 대출까지 도와주는 겁니다. 업계 관계자는 “신용보증기금 컨설팅만 하더라도 대출 상담사로서 수당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수익이 생기니까 다들 브로커로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돈을 제공하는 이른바 ‘쩐주’는 누구일까요? 취재진은 브로커들 간의 대화 녹취를 입수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쩐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한 브로커는

“우리 쩐주는 다 원장이에요”

라는 말을 합니다.

다시 말해, 의사들에게 돈을 불법적으로 대여하는 사람도 의사라는 겁니다.

취재진이 파악한 쩐주들은 의료기기 업체 대표, 컨설팅 업체 대표, 세무사 등이었습니다. 심지어 부자되는 법에 대해 논하는 유튜버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비싼 수수료를 받고 돈을 대여하는 행위는 미등록 대부 행위에 해당해 엄연한 불법입니다.

이런 불법 알선 대출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부실 대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은 한 사례를 찾아냈습니다. 지난 2020년 대구에서 개원했다가 2년 만에 부도가 난 한방병원인데, 당시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약 7억 4천만 원의 보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해당 병원장은 자기자본이 5천만 원 수준으로 턱 없이 부족했고, 대출 브로커를 통해 허위 잔고 증빙을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병원장도 SBS 취재진에 “다른 사람이 통장에 돈을 입금해준 것은 맞다”며 “대출 상담사로부터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대출을 받는 방법이 있다고 소개받았을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결국 신용보증기금은 보증 서줬던 금액 대부분을 손실로 떠안게 됐습니다.

이렇게 부실이 발생하면, 신용보증기금은 피보증인을 대신해 은행에 대출금을 변제해줍니다. 변제 후 피보증인에 구상권을 행사해 상환을 요구하지만, 파산한 경우에는 온전히 우리의 세금으로 갚아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미 신용보증기금 예비창업보증 부실액은 지난해 513억 원, 올해 9월까지 301억 원이 발생했습니다. 박은선 변호사는 “신용보증기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정부 출연으로 만들어진 기관이다”라며

“허위 외관을 토대로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이뤄진 건데, 이는 제도 자체를 흔드는 문제며 결국 우리 세금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고 꼬집었습니다.

신용보증기금은 정말 몰랐을까…제도 운영에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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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신용보증기금은 이런 불법 알선 대출 행위를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요? 이미 지난해 비슷한 사건이 불거진 바 있습니다. 한 프랜차이즈 한의원 업체가 지점을 늘리는 과정에서 돈을 돌려가며 허위 잔고 증빙을 한 혐의가 드러나 현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 금액만 250억 원대에 달합니다. 신용보증기금은 이 사건이 터진 후 추가 대책을 내놨습니다. 바로 피보증인으로부터

확약서

를 받는 것입니다. 자금을 부풀리거나 위변조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대책은 대출 브로커들의 비웃음만 살뿐이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확약서라는 자체가 솔직히 무의미하다”며 “내 자금이라고 내가 사인할 뿐이지, 신용보증기금이 따로 확인을 하는 절차가 아니라 실효성이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취재진은 거액이 갑자기 송금되는데 이상 거래에 걸리진 않는 건지, 신용보증기금에서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취재해보니, 이렇게 브로커들이 활개를 쳐도 못 잡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신용보증기금은 국세청과 달리 계좌를 조회하거나 자금을 추적할 수 있는 조사 권한이 없습니다.

따라서 잔고 증빙을 받을 때 피보증인으로부터 계좌 잔액 증명서만 제공받는 형태로 검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용보증기금 측은 “고객으로부터 수집한 자료와 직원의 현장조사를 통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자금 출처를 확인하고 있지만, 자금 출처에 대한 조사 권한이 없어 한계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이렇게 불법 대출을 알선하는 브로커들과 돈을 대여한 쩐주들, 그리고 이를 통해 보증을 받은 의사와 약사 등 10여 명에 대한 고발장이 서울 송파경찰서에 제출됐습니다. 구체적인 수법이 취재로 드러난 만큼, 불법 의료 컨설팅 업계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합니다. 신용보증기금도 SBS 보도로 확인된 업체들의 불법 행위가 확인되면 고소 고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허위 잔고 증명이 발각되면, 3년간 신규 보증 제한뿐만 아니라 기존 보증 금액을 전액 회수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SBS 취재진은 고발 대상에 포함된 브로커 외에도 많은 대출 상담사들이 같은 수법으로 불법 수수료 장사를 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개원 예정의와 함께 직접 브로커를 찾아가 취재한 내용들은 다음 취재파일에서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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