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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이 되던 8년 전, 그의 곁을 지켰던 대표적인 자녀는 큰딸이자 둘째 자식인 이방카(Ivanka, 43)였다. 모델 뺨치는 매력과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방카는 거친 언행으로 자주 물의를 빚었던 아버지의 이미지를 보완하고, 아버지에게 등 돌리는 계층을 붙잡는 역할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역시 그런 딸에 대한 애정과 자랑을 숨기지 않았다. 딸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은 사위의 역할 확대로도 이어졌다. 트럼프의 사위인 재릿 쿠시너는 백악관 최고의 실세 가운데 하나로 통했다. 유대인인 그는 특히 국제관계에 있어서 영향력이 컸고, 중동 국가들과 트럼프 정부의 협상에서 상당한 막후 중재 역할을 수행했다.
그랬던 이방카와 재릿 부부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두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의 2020 대선 실패 이후 정치에서 손을 뗐다. 대통령 선거에 다시 도전할 뜻을 밝히던 2년 전, 도널드 트럼프는 딸 이방카와 그녀의 남편 재릿이 정치에 나서지 않고 가족의 삶에 집중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장녀 부부가 비운 힘의 공백은 누가 메웠을까. 바로,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46)였다.
1977년 12월 31일생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이하 돈 주니어로 약칭)는 아버지 트럼프와 첫 부인 이바나(Ivana)가 낳은 세 자식 중 맏이다. 딸 중 가장 위인 이방카, 차남 에릭까지가 이바나가 낳은 자식들이다. 돈 주니어가 12살 때 트럼프와 이바나가 이혼했다. 한참 사춘기 나이일 때 벌어진 일이라 돈 주니어는 아버지와 한동안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서는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웠다. 대통령 트럼프의 오늘을 만든 NBC 방송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에도 관여했다. 아버지에게 심한 말을 들은 참가자들에게 “당신이 잘못해서가 아니다, 당신 차례였을 뿐”이라고 위로하는 게 그였다는 후문이 있다. 2016년 아버지의 첫 대선 때 현장을 다니며 선거를 도왔다.
아버지의 첫 대통령 임기 동안 누이동생 이방카가 남편과 함께 백악관 고문으로 일한 것과 달리, 돈 주니어는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의 개발·인수 담당 부회장으로서 사업체 운영을 맡았다. 아버지 퇴임 후인 2021년부터 강경보수 이념을 전파하는 출판사와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아버지의 재선 도전을 도왔다.
돈 주니어(Don Jr.)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아버지의 대리인으로서 많은 지역을 누비며 연설을 하고, 유권자들과 스킨십을 강화했다. 78세인 아버지는 2016년 대선 때보다 체력이 떨어진 데다 각종 재판 때문에 유세에 나설 수 없는 날도 많았고, 7월 암살미수 사건 이후에는 경호 문제로 외부 유세에 제약이 따랐으며, 골프 치는 데에 쓰는 시간도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돈 주니어는 트럼프의 캠페인 구호인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의 신봉자다. 트럼프의 ‘마가주의’를 불편해하는 백인 지식층이나 여성층과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게 이방카 부부의 역할이었다면, 돈 주니어의 역할은 마가의 돌격대장이자 다음 세대 리더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보수우파돈 주니어는 어릴 때부터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자랐다고 한다. 어릴 적에 엄마 이바나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의 외가로 종종 놀러 갔는데, 소련 치하를 경험한 외할아버지와 사냥 등을 함께 하며 반공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체코어도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 나서기 전부터 그와 정치 얘기를 하던 유일한 아들이 돈 주니어였다. 당시 선거캠프 총괄 운영자였던 스티브 배넌이 인정하는 강경 우파였다고 한다. 극우파 온라인 매체인 ‘브레이트바트’에 실린 모든 걸 진실이라 믿는 자였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인터넷 우파 인플루언서들과 아버지 트럼프의 연결고리가 바로 돈 주니어라는 얘기가 많았다.
기독교 신앙심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8월에는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때 여의도 순복음교회 예배에 참석해 아버지의 7월 피격 사건 등을 언급하며 신앙 간증을 했다.
대선 전략에 큰 영향 미친 '후보님의 장남'이번 도널드 트럼프 선거전략의 특징은 상대편에 기운 사람들 데려오는 데에 연연하지 않기, 사회적 불만 많지만 투표 잘 안 하던 사람들 끌어내기로 요약된다. 공화당에서 전통적으로 선거를 치러왔던 전문가들은 검증되지 않은 전략이라며 우려를 제기했지만, 트럼프는 밀어붙였고, 승리했다.
이런 기조가 세워지고 집행되는 데에 장남 돈 주니어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이 나온다. 법무부 장관에 내정돼 트럼프 2기에서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보복을 담당할 맷 게이츠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돈 주니어의 기여를 이렇게 설명했다.
“돈 주니어는 우리의 시간을,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좀 덜 싫어하도록 설득하는 데 쓰기보다는, 현 상황에 불만이 있는 사람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데에 쓰자는 사람이었다.”
성전환자에게 우호적인 민주당⋅진보좌파를 강력 비난하는 선거 캠페인에도 기독교 우파 성향이 강한 돈 주니어가 크게 기여했다. 해리스는 ‘그들(they/them) 편, 트럼프는 당신 편’이라는 선거광고 문구는 이번에 상당히 큰 힘을 발휘했다. (성소수자이거나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he/him 또는 she/her라는 성별 대명사를 거부하고 단수임에도 자신을 they/them으로 불러달라고 한다.)
▶ 해리스는 감옥 수감자의 성전환수술을 세금으로 지원해 준다고 비난하는 트럼프의 정치광고
아버지 트럼프는 원래 TV 방송 등 전통 미디어를 좋아하고 팟캐스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올해 78세 노인임을 감안해야 한다) 젊은 남성들이 많이 듣는 팟캐스트를 이번 선거운동의 중심 매체 중 하나로 끌어올려 아버지를 자주 출연시킨 것 또한 돈 주니어의 역할이었다.
실세임을 남들에게 입증할 필요가 없는 실세도널드 트럼프의 사위 재릿 쿠쉬너는 대통령 고문 직책을 갖고 백악관에서 일했다. 또한, 다양한 이슈에 관여하기를 좋아했다고 알려졌다. 반면 돈 주니어는 본인이 관심 있는 이슈만 찍어서 관여하며, 대선캠프의 공식 조직에 포함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그걸 이번 트럼프 대선캠프가 효율적으로 돌아간 이유로 꼽기도 한다. 장남인 돈 주니어가 남들 눈에 띄는 직책과 역할을 탐냈다면, 캠프의 공식 조직과 매끄럽게 공존하기가 쉽지 않고 잦은 혼선이 발생했을 것이다.
대선캠프 총괄인 수지 와일스(백악관 비서실장 내정)가 하는 일에 돈 주니어는 웬만하면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수지 와일스 또한 철저히 음지에서 실무를 챙기는 스타일이고 자아 과시에는 관심이 없는 인물이라, ‘후보님의 장남’이 목소리를 낼 때는 혹시 의견이 달라도 자신이 양보했다고 한다.
2016 대선의 트럼프 캠프 총괄(CEO)이었던 스티브 배넌과 그 점에서 차이가 난다. 스티브 배넌은 자신이 트럼프 정부의 정신적 지주이고 트럼프는 배넌의 아이디어에 따라 움직이는 연예인이라는 세간의 수군거림을 즐겼다. 그러다가 오만한 자로 찍혀 트럼프 눈 밖에 났고,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끝나기 전에 사기 혐의로 사법처리되는 신세가 됐다.
돈 주니어는 여타 측근들과 달리, 자신이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라는 걸 구태여 남들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이 충만한 것으로 보인다. 왜? 아들이니까.
(물론, 아버지에게 능력을 입증해 보이고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고,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조선왕조의 몇몇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와 J.D 밴스를 데려온 사나이올여름까지만 해도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트럼프의 표를 5% 이상 잠식하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그랬던 케네디 주니어를 트럼프 캠프에 합류시킨 공로자가 바로 돈 주니어다.
선거가 막바지로 치닫던 올해 7월, 트럼프가 암살 위기를 넘기며 보수층의 더욱 열렬한 지지를 끌어내자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선거운동을 접고 도널드 트럼프나 카말라 해리스 어느 한쪽에 표를 넘겨주는 대신 자리를 보장받는 거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 기류를 감지한 돈 주니어는 백신에 대한 불신과 아웃도어 활동에 대한 애정이라는 공통점을 앞세워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와 친밀감을 쌓았다. 그는 아버지가 대선에 승리한다면 보건정책을 총괄하는 역할을 차기 정부에서 맡게 될 것이라는 제안을 던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의 백신 혐오는 가짜뉴스 수준이었던 데다 개인적인 괴짜 이미지도 강해서, 전통적인 보수 엘리트층에서는 그가 정부 정책에 관여하는 자리를 갖는 걸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돈 주니어는 케네디 주니어와의 거래를 관철했다. 이 역시 ‘장남이니까 가능했던 일’이었다.
아버지 도널드는 원래 백신을 불신하는 사람이 아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1기 임기 때 코로나백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민관 파트너십 ‘프로젝트 워프 스피드’를 밀어붙였고, 자신도 코로나19 백신을 부스터샷까지 맞았다. 이 때문에 극우보수층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한동안은 코로나백신 개발을 자신의 치적으로 자랑하던 트럼프는 그러나,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는 그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돈 주니어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보수우파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설득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본인은 백신의 의학적 효과를 의심하지는 않지만, 정치인으로서의 트럼프는 백신을 ‘의무적으로 맞도록 정부가 국민에게 강요하는’ 정책은 반대한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J.D 밴스를 아버지의 러닝메이트로 밀어 올린 것도 돈 주니어의 힘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J.D 밴스는 유력한 부통령 후보감이 아니었다. 표의 확장성이 떨어졌고, 과거에 트럼프를 비난한 이력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보수우파 운동에서 밴스가 가진 경쟁력을 알아본 돈 주니어가 강력히 천거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밴스가 러닝메이트가 되어 거친 입으로 해리스와 민주당을 공격하면서, 돈 주니어는 아버지를 우파 이념에 더욱 충실히 붙잡아둘 수 있게 됐다. (원래 도널드 본인은 사회적 종교적으로는 아들보다 덜 보수우파인 사람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