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알' 재일한국인 아내 살인사건, "나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그가 무죄 주장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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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억울한 사법 피해자일까?

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에서는 '계단과 삭흔 - 나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라는 부제로 아내 살인죄로 8년째 복역중인 재일한국인 박 씨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지난 2016년 8월, 만화 '진격의 거인'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 출판사 고단샤(講談社)에서 편집차장으로 일하던 재일한국인 박 씨의 아내가 사망했다.

7년 연애 끝에 일본인 가나코 씨와 결혼해 슬하에 4남매를 두며 성공한 삶을 살고 있던 박 씨.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가장이었다.

그런데 넷째를 낳고 산후 우울증을 앓던 박 씨의 아내 상태가 악화되었던 것. 사건 당일인 8월 9일 새벽 1시경 귀가한 박 씨에게 아내는 다짜고짜 아이를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며 칼을 들고 위협했고, 이에 박 씨는 아내에게서 칼을 빼앗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고, 이후 아이를 안고 2층의 아이들 방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30여 분 뒤 나와 보니 아내가 계단 손잡이에 자신이 벗어둔 재킷으로 목을 매고 숨져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 씨는 아이들이 아내의 자살을 아는 것이 두려워 구급대원과 경찰에 "아내가 계단에서 떨어진 걸로 해 달라"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수사 기관은 이를 수상하게 여겼고 사건 발생 5개월 뒤 박 씨를 아내 가나코를 살해한 용의자로 체포했다.

검찰은 1층 침실 매트리스에서 나온 소변 자국과 침 등을 근거로 박 씨가 가나코를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의심했다. 그리고 그 후 박 씨가 가나코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가 떨어뜨려 사고처럼 위장했다는 것. 이에 검찰은 계단에선 소변 자국이나 묶인 재킷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박 씨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이에 1심과 2심은 박 씨를 유죄라 판명하며 그에게 11년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 2022년, 사건 발생 6년 만에,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사실오인에 따른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제작진은 박 씨에게 연락을 해 방송 제작을 의뢰했다. 그러나 박 씨는 자신의 무죄 판결을 확신하며 만약에 환송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면 그때 다시 방송 제작을 검토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면 뒤집기 힘든 일본 사법부에서 환송심은 몹시 드문 일이기 때문에 박 씨는 자신의 억울함이 증명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올해 열린 환송심에서 다시 유죄가 선고된 것이다. 피고의 진술은 전체적으로 신뢰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유죄를 판결하며 재차 징역 11년을 선고한 재판부.

이미 1심에서 선고된 11년 중 8년이 지난 현재 박 씨는 아직도 무죄를 주장하고 있을까? 그는 제작진에게 "저는 결코 아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의 법률 대리인도 그의 죄가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라고 생각해 재상고를 신청한 상태.

법률 대리인은 "심리한 증거를 토대로 유죄 판결이 난 것이 아니다. 심리한 부분에서는 피고 측이 이겼다. 이긴 부분을 제외하고도 유죄가 성립된다면 법의학 의견은 거의 무시하는 판단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부검 결과와 증거들이 모두 자살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유죄 판결을 냈다고 착잡한 얼굴을 했다.

한꺼번에 어머니와 아버지와 이별하게 된 4남매.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믿기 힘들 정도로 아이들은 건강하고 밝게 자라 있었다. 특히 아이들과 박 씨의 어머니는 8년 전 사건이 일어난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사건 하루 전날인 2016년 8월 8일, 박 씨의 아내 가나코는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여러 차례 제목뿐인 메일을 보냈다. 여러 통의 부재중 통화 이후 오후 7시 30분경 박 씨는 전화를 통해 가나코와 육아에 대한 고민과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8월 9일 새벽 1시경 집에 도착한 박 씨. 그는 물을 마시기 위해 재킷을 난간에 걸어두고 2층의 냉장고로 향했다. 이때 2층 거실에 있던 아내 가나코를 발견했다.

가나코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고, 이에 박 씨는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가나코는 아기랑 같이 죽겠다며 칼을 들고 아이에게 가고 이를 본 박 씨가 가나코가 아이를 해치지 못하게 밀친 뒤 칼을 떨어뜨린 아내를 눌러 진정시켰다는 것. 그러나 검경은 이때 박 씨가 고의로 가나코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안고 아이들의 방으로 피신했다가 30분 뒤 밖으로 나와보니 아내가 계단 손잡이에 재킷으로 목을 매고 자살했다고 주장한 박 씨. 하지만 검경은 아내를 살해한 박 씨가 곧바로 아내의 시신을 계단으로 끌고 올라가 추락사로 위장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아내가 계단에서 떨어진 것으로 해달라고 말한 박 씨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박 씨가 아이들에게 아내의 자살을 숨기고 싶은 마음에 했던 행동들을 증거 인멸을 위한 행동이라 여겼다.

사건 당시 가나코는 구급대가 현장에 갔을 때 이미 심폐정지가 확인된 상태였다. 이에 응급처치를 계속했지만 심장 박동이 돌아오지 않았고 박 씨를 불러 사망 선고를 했던 것.

가나코의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 신체에 일체의 골절은 없었고 사인과 관련된 어떤 상처도 남지 않았다. 부검의는 목에 남은 흔적에 대해 팔과 옷이라면 구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가나코처럼 목에 흔적이 거의 없을 때는 자살과 타살 모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침실 매트리스에 묻은 소변 자국이 박 씨가 가나코를 꽉 누르는 행동으로 나온 것이고 그에 따른 사망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없이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매트리스의 소변 자국과 침 자국이 엎드린 가나코의 신체 비율과 일치한다며 바로 제압당하며 질식해 숨졌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재판부는 사건을 담당한 부검의가 아닌 검찰 측의 법의학자 측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 법의학자는 이마의 상처가 박 씨가 아내를 계단에서 떨어뜨린 증거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사망하기 전인 사전기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턱 아래 남은 표피 박탈에 대해서도 아내를 계단으로 끌고 간 증거라고 주장했다.

경찰에 박 씨가 체포되기 1주일 전부터 집 앞에 들이닥쳤던 취재진들. 이에 이웃들이 함께 아이들을 보호해 줬다. 그리고 이웃들은 지금도 하루빨리 박 씨가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그의 성품을 알기에 그를 믿었던 것.

박 씨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동료들은 그의 무죄를 믿고 응원하고 있었다. 항상 육아를 염두에 두었던 이였기에 남겨진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그가 그런 행동들을 했다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 그렇기에 박 씨의 동료는 아이들을 돌봐달라는 박 씨의 부탁대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신경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박 씨는 8년째 거르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아빠 학교라는 이름으로 4남매 각각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보내면 박 씨는 감상평을 편지로 써서 보내고 그리고 매번 다양한 주제로 편지를 썼다. 이에 아이들에게 아빠는 여전히 그립고 사랑하는 존재였다.

사건 당시 열 살이었던 첫째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엄마가 돌아가신 날 아빠가 후우타를 안고 아이방 문 앞에서 서 있었던 것이 살짝 기억난다. 후우타를 달래는 것처럼 보였다"라며 박 씨의 주장과 일치하는 기억을 하고 있었다. 이에 첫째는 그날에 대해 증언하고 싶었지만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고.

증거는 또 있었다. 사건 당시 칼로 2층 방문을 두드린 가나코. 이에 문에 식칼의 파편이 끼어 있었다고. 그리고 이것은 현장 검증에서 밝혀진 것이었다. 그것을 검찰이 증거로 압수까지 했지만 재판에서는 중요시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었다.

또한 가나코가 넷째 낳고 보건소에서도 우울증이 있다는 진단이 있었다. 그러나 가나코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을 거부했고 이후 아이의 장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크게 자책했었다는 것. 이러한 사실들을 아는 가나코의 아버지도 박 씨의 무죄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사건 담당 부검의는 검찰 측 법의학자가 말했던 사전기에 대해 "사전 기라는 법의학 용어는 있다. 죽음과 싸우는 시기라는 뜻이다. 아직 심장이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지만 멈추기 직전인 시간인 것. 그런데 이것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라며 소변 자국으로 질식사 시점을 판단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그는 "목을 조르면 반드시 소변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조금 억지스럽다고 할까? 저는 박 씨가 범인일까 아닐까 법의학적으로 관심이 없다. 다만 검찰이 너무 객관성이 없는 증거를 많이 내놓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법정에서도 이런 내용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 부검의. 그는 "물론 일본이 한국보다 법의학을 먼저 도입했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현에 법의학 연구실이 하나밖에 없다. 그러면 선생님 이 사람이 죽였다고 말씀해 주세요라고 검찰에게 부탁받으면 거절 못하는 사람이 나온다. 결국 일본의 법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영향이 꽤 크고 그런 검찰 측에 치우친 감정을 해주는 사람이 생겨나기 쉬운 환경에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일본 법의학계의 아쉬운 현실을 지적했다.

박 씨의 대학 친구들은 "재판이 길어지는 이유는 그만큼 결정적인 증거가 적기 때문이다. 검찰 측 시나리오조차도 별로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라며 "공정한 재판을 해달라 요구하는 서명 활동을 시작한 게 2심이 끝났을 때였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1165명이 서명하고 일본 주요 언론 집중 보도되며 최고 재판소에서 파기 환송이 결정 났다. 그러나 환송심 결과는 예상과 너무 달랐다.

또한 대학 친구는 "환송심 중에 법의학자 시미즈 선생님이 법정에서 부검 사진을 봤을 때 삭흔이라고 불리는 목을 매고 돌아가신 분들 특유의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분은 살해된 게 아니라 자살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전혀 다루지 않았다"라며 재판부를 지적했다.

또한 이 법의학자는 이마의 상처가 정상적으로 살아있을 때 생긴 상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침실에서는 소변과 침 외에 다른 혈흔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고 이마의 상처가 사전기에 생긴 것이 아닌 생활하던 중 생긴 상처라고 한다면 침실에서 사망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환송심 재판부는 직접 부검하지 않고 부검 사진만 본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가족과 변호사는 환송심 유죄 판결 후 기자회견으로 재판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박 씨 측은 가나코의 많은 자살 증거, 박 씨가 억울하다는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무시당했다며 새로운 유죄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는데 유죄가 되었다고 했다.

전직 고등법원 피나는 "파기 환송 후 2심 판결문을 읽고 든 생각인데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결국 처음 1심과 같은 이유로 유죄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소송 경과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 굉장히 문제라고 생각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국내 법의학자들은 소변 자국을 증거로 타살을 단정한 건 논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소변 자국이 질식사의 절대적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목을 맨 계단에서 소변이 발견되지 않은 것도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마의 상처는 생활 반응이라는 견해를 덧붙였다. 또한 목에 남은 흔적에 대해서는 "타살의 가능성은 매우 적은 목의 손상 소견이다. 손상이 거의 없다는 것 자체가 목맴에서 아주 흔하게 보는 소견"이라고 설명했다.

목 졸려 살해당한 것 치고 손상이 없다는 것. 보통 살해를 당하면 격렬한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순수하게 깔끔하게 다른 손상이 없이 경부압박 질식사한 것을 타살을 당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드문 예라고 말했다.

그리고 삭흔에 대해서도 변호사 측 법의학자와 같은 소견을 밝혔다. 맨 팔로 목에 압박을 가했을 때는 주름이 안 생긴다는 것.

턱 아래 상처와 이마의 상처가 박 씨가 아내를 끌고 갈 때 생긴 상처라고 주장한 검찰. 이에 제작진은 시뮬레이션을 통과 실험을 진행해 검찰의 주장이 타당한지 확인했다.

그 결과 다리를 끄는 순간 목이 돌아가며 턱이 아니라 얼굴 한쪽 부위와 마찰하게 되어 턱 아래는 전혀 계단과 닿지 않아 찰과상이 생길 수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리를 끄는 것이 아니라 상체를 안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어느 경우든 밀었을 때 후두부가 계단과 부딪혀 두개골 골절이 예상되고 경우에 따라 경추 골절도 예측되어 얼굴 전면부에 충격이 가해지는 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확인했다.

전문가는 "상당히 의심할 점이 많이 남는 행동을 박 씨가 했다고 볼 수 있다. 발견한 이후 신고까지 상당 부분 시간이 흐른 게 사실이다. 하지만 거짓으로 진술할 수 없는 부분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라며 "계획적으로 살인하고 사고로 위장하려는 사람이 "계단에서 떨어진 것으로 해주세요"라고 말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산후 우울증 검사 결과와 사건 당일 박 씨와 나눈 가나코의 이메일 내용을 본 정신과 전문의는 자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너무 정신과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전문의는 "어떤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몰려오면 짧은 시기에 착란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럴 때 우울증 증세가 있었으면 아마도 자살 기도를 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라고 말했다.

1심 2심 환송심의 유죄 근거가 판사마다 달랐던 것에 대해 전문가는 "결국은 법의 일관성이 좀 없어 보이고 이렇게 각자 주관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유죄로 갔으면 이게 확실한가라는 의문을 근본적으로 남기는 구조이다. 타살설에 부합하지 않는 자살일 가능성이 있는 정황이나 증거들도 꽤 있어 보인다. 그런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유죄로 인정하지 않는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일본 형사 재판 유죄 선고 비율 99.8%. 이에 일본 전직 판사는 "검찰이 무죄를 두려워해서 위험한 사건은 잘 기소하지 않는다. 검찰관의 기소에 대해 재판관도 검찰의 기소는 기본적으로 옳을 것이라는 일종의 믿음 그런 게 크기 때문에 피고 측이 무언가를 말하더라도 좀처럼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일본 사법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근 들어 일본에는 엔자이(억울하게 뒤집어쓴 죄) 사건들이 큰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입증되지 않은 살인 혐의로 구금된 채 재판을 받아온 지 8년째가 된 박 씨. 그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아내의 자살을 막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저는 결코 아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을 죄가 없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는 분명 아내의 자살을 막을 수 있었고 제게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끈질기게 아내에게 부탁해서 병원에 데려갔다면 아내의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제가 한심하게 두려움에 떨며 아이들 방에 피신해 있지 않았다면 아내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소중한 아내를 지키지 못했습니다"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를 떠올린 첫째 하나는 저는 아이이긴 했지만 엄마가 불안한 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고 뭔가 정말 막연한데 엄마가 죽어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무서운 감정이 들었다. 매일 밤마다 엄마가 죽지 않게 해달라고 무심코 생각해서 기도하면서 자기도 했다"라며 지금도 여전히 엄마와 아빠 모두 사랑하고 있다며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법의학을 전수했지만 형사 사건에 대한 부검을 완전히 민영화시키면서 공신력 확보에 어려움 겪고 있는 일본. 일본인들은 근대화 초기 검찰과 법원이 같은 소속으로 출발한 역사가 지금까지 사법 체계 독립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확증편향으로 인한 오판과 그걸 깨닫고도 스스로 바로 잡지 않으려는 권위주의가 비단 일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법 분위기로 인해 박 씨 사건에 필요한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일 것.

이에 방송은 박 씨의 남은 재판에서는 과학적 사실들이 부디 충분히 고려되고 입증되길 바랐다. 11년 중 8년을 복역한 박 씨,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은 온전한 아버지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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