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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도 흙수저였는데 우리의 인생 경로는 어디서부터 달라진 걸까?"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I Grew Up Much Like JD Vance. How Did We End Up So Different? by Beth Macy


오프라인 - SBS 뉴스

* 베스 매이시는 버지니아주에 사는 언론인이자, "금단의 고통(Dopesick)"을 썼다. 출간을 앞둔 회고록 "신문배달 소녀: 미국의 심장부에서 가족과 가정을 찾아(Paper Girl: A Search for Family and Home in the Heart of America)"의 저자다.

나는 오하이오주 서부 어바나(Urbana)라는 작은 도시 출신이다.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상원의원의 고향 미들타운(Middletown)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다. 밴스와 마찬가지로 나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얼룩진 가정에서 자랐으며, 할머니가 삶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준 점도 밴스와 닮았다.

1980년대, 내가 고향을 떠나 대학에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동네 공장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밴스가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에서 묘사한 텅 빈 미들타운의 모습과 아마 비슷했을 거다. 어머니는 비행기 항법등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셨는데, 어머니의 일자리는 해외로 이전하거나 자동화 기계로 대체됐다. 우리 동네를 상징하던 공장은 클리블랜드의 한 기업에 매각됐고, 두 차례 합병을 거쳐 마지막에는 다국적 대기업에 팔렸다. 경제학자들은 일련의 매각과 합병에 찬사를 보냈고, 민주당과 공화당은 한목소리로 이를 지지했다.

밴스의 어머니는 다행히 치료를 받고 중독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가정이라는 커다란 굴레를 넘어서서 어떻게든 생산적인 삶의 길을 개척해 내는 모든 오하이오주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도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끝내 알코올 중독과 말기에 이른 폐암을 이기지 못하고 57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만, 특단의 노력을 강구해야만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다면 이는 분명 문제다. J.D. 밴스는 이번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 상대방인 팀 월즈 주지사를 향해 어떻게 하면 분노를 효과적으로 표출할지 궁리하는 대신 자기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튼튼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내어주는 방법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밴스가 어려움에 처한 지역사회에 이미 소용없는 처방임이 검증된 뻔한 이야기를 되풀이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곧 사람들에게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그러니 더 열심히 일하고, 더 간절히 기도하고, 아이도 낳고 살다 보면 괜찮아질 거다, 그래도 시름을 놓기 어렵다면 그건 당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으려고 미국으로 몰려드는 이민자들 때문이니 그들을 탓하라"는 식으로 말하는 거다. 그는 또 틈만 나면 대학을 경계해야 한다며 대학을 향한 적개심을 부추길 거다.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단한 힘을 지닌 고등 교육을 그는 적으로 간주한다. 2021년 전국 보수회의에서 밴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

했다.

"대학교는 지식과 진리를 추구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거짓말과 속임수를 가르칠 뿐입니다."

그 이후로는 그나마

발언의 수위

를 낮췄다.

공교육과 공교육을 발판으로 이어진 대학 교육은 나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구명줄이었다. 이 또한, 밴스와 내가 공유하는 경험이다. 나는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에게 주는 연방정부의 펠 그랜츠 장학금 덕분에 4년 학부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오늘날 학생들은 펠 그랜츠 장학금을 받아도 4년간 드는 학비와 생활비의

약 30% 정도

를 충당할 수 있을 뿐이다. 밴스는 군대에 다녀온 뒤 퇴역 군인을 위한 연방정부 보조금을 받아 오하이오 주립대에 들어갔고, 예일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했다.

나는 정부가 내게 투자한 돈(장학금)을 졸업 후 열심히 일하며 낸 세금으로 갚아 왔다. 밴스도 마찬가지다. 이는 미국 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아주 중요한 사회 계약이다. 즉, 가난한 집안 출신 아이들을 사회가 교육하면 그 아이는 나중에 훌륭한 시민으로 자라나 열심히 일하고 세금도 잘 내는 훌륭한 사회 구성원이 되는 선순환 구조다. 빠르게 세계화되는 세상에서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관문을 넓혀주면, 우리나라는 더 부강하고, 똑똑하고, 경쟁력 있는 나라가 된다.

어바나를 떠난 지 40여 년이 지났다. 나는 항상 어쩌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 가난과 중독의 악순환에 갇혀 미국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는 동네로 전락하게 됐는지 정확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 밴스는 그런 분노를 선거 유세 연설의 소재로 적절히 활용했다.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서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이 애완동물을 잡아먹는다는

터무니없는 가짜뉴스

를 대놓고 퍼뜨리는 일부터 이민 자체를 나쁜 것으로 몰아가는 선동까지 거침이 없다. 이런 분노는 사람들을 절반만 맞는 사실과 한데 뒤섞인 거짓말과 음모론에 취약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결국, 사실과 거짓을 분간하지 못하고 분노를 매개로 결집한다.

내 고향이 변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 장면이 몇 개 있었다. 예를 들면 한때 남부 노예주 출신의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탈출할 때 이용한 비밀 통로의 중요한 기착지에 남부 연합을 상징하는 깃발이 나부끼는 걸 봤을 때가 그랬고, 큐아논 같은 음모론을 추종하는 단체를 대놓고 지지하는 옛 동창들을 마주쳤을 때도 그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내 고향에선 정신건강 응급 전화가 걸려 오는 건수가 9배나 급증했다.

밴스의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에는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된 엄마에게 당한 폭력과 유기가 생생히 묘사돼 있다. 엄마가 약에 취해 흥분한 채로 어린 밴스를 차에 태운 뒤 거칠게 난폭 운전을 하며 그냥 여기서 다 죽자고 고함을 질러대는 고통스러운 장면은 절대 잊지 못할 거다. 그 상황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부모의 폭력 때문에 죽을 뻔한 적이 있다. 집에는 공과금을 내지 않아 전기며 수도가 끊긴다는 통지서가 오기 일쑤였고, 어느 겨울에는 아빠가 술에 취해 크리스마스트리 위로 떨어진 적도 있다.

밴스는 마약 성분이 든 진통제인 오피오이드 위기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러나 아마도 그는 어떤 지역사회가 약물 중독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건 사람들이 게을러서, 근검절약 정신이 부족해서, 혹은 기독교적 가치를 충분히 체화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믿을 거다. 그러나 이 문제를 10년 가까이 취재하고 기사를 써온 경험에 비춰봤을 때 나는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 개인이 아닌 정부 기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에 약물 사용 장애로 고통받는 미국인이

4,800만 명

에 이른다. 이렇게 문제가 심각해질 때까지 국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우리는

새클러 가문

이 옥시콘틴을 팔아 벌어들인 부당한 수익을 어떻게 환수할지에 관해 토론해야 한다. 애초에 중독 위험이 있던 마약성 진통제를 터무니없이 과다 처방할 수 있도록 식품의약국과 정치인들이 눈을 감게 해준

느슨한 규제

에 관해서도 얘기해야 한다. 트랜스젠더 어린이나 이민자, 자기 몸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겠다는 여성이 대단한 문제를 일으킬 것처럼 공포를 조장하는 일은 제발 멈추자. 중독 치료를 받느니 차라리 마약에 중독된 채 사는 게 더 쉬운 지금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한, 매년

미국인 수만 명

이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으로 사망할 수 있다.

얀 레이더 씨는 웨스트버지니아주 헌팅턴시의 소방서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같은 도시의 오피오이드 대응을 지휘한다. 레이더 씨는 내게 오래전 옥시콘틴 과다 복용으로 쓰러져 심폐소생술을 했던 사람들의 아이, 손주들에게 지금은 마찬가지로 펜타닐을 과다 복용했을 때 효과를 차단하는 약물인 나르칸을 처방해 투여한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트라우마 때문에 의사의 제대로 된 처방을 받고 치료받는 것보다 그냥 오피오이드에 기대는 손쉬운 선택을 하곤 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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