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찾다가 부랑자로…본명도 모른 채 진실규명 앞두고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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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희망소년원 피해자 고(故) 김선기 씨

"진짜 가족을 꼭 만나고 싶고 고향, 본적 등을 찾게 되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서울 희망소년원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 김선기 씨는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여러 차례 이 같은 간절한 소망을 피력했습니다.

진실화해위는 김 씨에 대한 인권침해를 인정해 지난 24일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습니다.

김 씨가 '가족을 찾고 싶다'며 진실규명 신청을 한 지 2년 10개월 만입니다.

하지만 김 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그는 진실규명 결정을 5일 앞둔 지난 19일 질병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김 씨는 국민학교도 입학하기 전인 1955년 2월께 재가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전남 장성에서 홀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왔습니다.

전쟁 상흔이 가시지 않은 혼돈의 시절이었습니다.

서울역 앞에서 헤매던 그는 경찰에 '부랑아'로 단속돼 서울 희망소년원에 강제수용됐습니다.

김 씨는 제복을 입은 경찰들에게 납치되듯 끌려가 속옷만 입은 채 희망소년원에 버려졌다고 그날을 기억했습니다.

인적 사항을 묻거나 가족을 찾아주려는 이는 없었습니다.

희망소년원에서 먹을 것은 주로 멀건 콩나물국 정도였고 시설 경비들에게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하는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비가 내린 뒤 산사태를 막기 위한 공사나 꽃밭을 만드는 작업에 강제동원됐습니다.

김 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시설을 나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고 도망도 쳤는데 걸리면 반 죽도록 맞아서 나중에는 도망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번은 철조망을 뚫고 도망치다 붙잡혔고, 이후 평생 왼쪽 다리를 절뚝이게 됐습니다.

맞다가 부러진 왼쪽 넓적다리뼈가 잘못 붙어 장애를 갖게 된 것입니다.

성인이 된 김 씨는 지인이었던 김 모 씨의 양자로 입적됐고 생년월일을 1949년 2월 2일로, 본적은 양부를 따라 '김해김씨'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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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희망소년원

김 씨의 아들 김도진(50) 씨는 언론 통화에서 "아버지는 호적에 올라야 해 김해김씨가 됐지만 실제로는 광산김씨라고 이야기하시곤 했다"며 "진짜 이름도, 정확한 나이도, 생일도 모르고 사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김 씨에게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잃어버린 가족뿐이었습니다.

김도진 씨는 "형제가 여러 명 있었다고 하셨다"며 "남아있던 기억으로 형제들을 찾으려 관련 기관도 여럿 찾아가시고 하셨다"고 전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었던 만큼 자신이 꾸린 가족을 애틋하게 여겼다고 자식들은 회상했습니다.

딸 김희옥(52) 씨는 "아빠가 저와 동생은 가족이라고 둘뿐이니 서로 사이좋게 보듬어주며 지내라고 늘 당부하셨다"고 했습니다.

김도진 씨도 "아버지는 정말 가정적이고 일밖에 모르셨던 분"이라고 기억했습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4일 열린 전체위원회에서 김 씨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당시 보호자로부터 잠시 이탈된 김선기를 부랑아로 분류, 자의적으로 단속하고 시설에 강제수용해 가족 품에서 건전하게 성장할 기회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 등을 박탈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에 김 씨에게 사과하고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김희옥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진실화해위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아버지 생전에 들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장례식장에도 저희 말고는 가족이 하나도 없어 눈물이 많이 났다"며 울먹였습니다.

(사진=유족·진실화해위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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