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서교공②] 납품업체 발명권에 직원 이름…"문제 없다"는 서울교통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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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연속으로 단독 보도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의 납품 비리 의혹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사 측이 선정한 납품업체들의 핵심 기술 특허에 공사나 자회사 직원들이 발명자로 등록돼있다는 점입니다. 지하철 환기용 세정식 필터 특허와 지하철 사물함의 OTP 잠금 특허 등의 발명자 명단을 확인한 경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한 이유입니다.

특히 공사가 계약한 A 업체의 환기 필터의 기술 발명자 명단에는 납품업체 선정 권한이 있는 기계처 소속 부장급 직원 2명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납품 과정에 사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될 소지가 큰 겁니다. 또 발명자 지위는 실제 기술 발명에 핵심 역할을 해야만 얻을 수 있어서 특허법 위반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도 후 서울교통공사 측은 '직원들을 발명자로 등록하는 건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해명서를 보내왔습니다. 공사와 직원들의 이름을 발명자로 올리는 것은 공사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직원 개인이 발명자로서 얻는 이익은 모두 공사의 이익으로 돌아가도록 해두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퇴사 후 보상금 요구 가능…천지인 판례 등 있어

하지만 변리사 등 특허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서울교통공사의 해명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굳이 납품업체의 특허 발명자로 직원들의 이름을 올려서 얻을 공사의 실익이 없고, 다른 기관에서는 보기 드문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직원들이 퇴사한 뒤 직무발명보상금을 청구하면 공사 측의 의지와 달리 보상금을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지난 2004년 삼성전자에서 퇴사한 한 연구원이 애니콜 휴대폰의 '천지인' 입력방식 특허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통해 최소 수억 원의 보상금을 얻었고, 이후에도 비슷한 판례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A 업체의 특허로 미래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직원들이 납품업체를 선정하고 관리하고 있는 상황인 겁니다.

거기다 발명자로 등록된 직원들이 소속된 기계처는 납품 받은 환기 필터를 향후 225개 역, 1천800억 원 규모로 확대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내부 감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직원들이 추후 요구할 수 있는 보상금의 액수가 수십 억 규모로 커질 뻔 했던 것입니다. 공기 질을 관리하는 다른 부서에서 해당 필터 성능에 부적합 판정을 내린 걸 고려했을 때, 기계처가 사업 확대 의견을 냈던 근거가 명확했던 것인지 확인할 필요도 있습니다.

"현황 조사, 행정 지원 등 기여했다"

다음으로 서울교통공사는 납품업체 기술 발명자로 등록된 직원들이 기술 개발에 실제로 기여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해당 직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기여했냐고 묻자, 공사는 이렇게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자동세정형 금속필터를 현장 설치 후 운영상의 문제점 보완 등을 통한 제품 최적화 과정에서
1) 1~8호선 필터 현황 조사 및 문제점 도출
2) 기 적용필터 문제점 분석 (교체 및 세정시 문제점 등)
3) 서울교통공사 시설에 맞는 노즐 커버 아이디어 도출
4) 열풍 건조 시 고온으로 인한 공기조화기 내구성 및 내부압력 설계지원
5) 시범 설치 후 시범 운행 및 행정지원 등 현장 성능검증 및 기술지원 기여를 하였음.

-서울교통공사 답변서 중

이 해명에도 문제 소지가 있습니다. 특허청에 등록된 환기필터 특허의 핵심이 '금속이지만 세척이 가능하다'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기여로는 일반적으로 발명자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선 직원들이 내놓았다는 '노즐 커버 아이디어'나 공기조화기 내구성 설계 지원 등은 '금속 필터 세척 기술'을 보조하지만, 특허의 핵심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현황 조사나 현장 성능 검증 등 기타 행정 지원은 공사 직원의 일반 업무에 가깝지, 발명자 지위 획득 요건은 아닙니다.

협약서 명시도 안 했는데…"다른 특허에도 직원 이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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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답변서에서 공사 측은 다른 분야의 납품업체 특허에도 공사 직원들이 발명자로 등록된 경우가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업무협약서에 별도로 기재하지는 않지만, 시범사업을 함께 진행한 납품업체의 경우 공동 특허를 추진해왔다고 했습니다. 경찰 수사를 받는 두 특허 외에도 납품업체의 여러 특허에 공사 직원들의 이름이 올라 있는 상황인 겁니다.

김영두 특허전문 변리사는 "공사 법인이 아닌 직원들의 이름까지 발명자로 등록하는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다"며 "의도가 어떻든 공정한 입찰경쟁을 방해하는 요건인 건 명확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공사 측은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해당 직원들에게 맞는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만약 수사에서 직원들의 납품비리 혐의가 밝혀진다면, 공사 측은 그동안 있었던 납품업체들과의 공동 특허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합니다. 또 보다 공정한 납품업체 입찰을 위해 구조적인 개선안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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