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덫이 된 '종중'…주민을 보호할 법은 어디에?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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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모은 재산으로 집 하나 장만했는데, 너무 막막하고 잠이 안 와요."

몇 달 전 10년째 살고 있는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한 주민이 남긴 탄식입니다. 작년 말부터 이 주택 단지의 주민들은 종중과의 소유권 소송에서 져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2심 재판부가 이 사건의 핵심 법률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심판해 달라는 결정을 내리며 한 줄기 희망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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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째 산 땅, 종중에 뺏길 위기"…헌재 판단 받는다

이번 위헌제청 결정은 비법인사단의 재산 관리 및 처분에 대한 법률 조항, 즉 민법 제275조와 제276조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들은 종중과 같은 비법인사단의 재산을 거래할 때, 반드시 사원총회의 결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원이 이 조항들이 선의의 제삼자를 보호하지 않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민법
제275조(물건의 총유) 
② 총유에 관하여는 사단의 정관 기타 계약에 의하는 외에 다음 2조의 규정에 의한다.

제276조(총유) 

① 총유물의 관리 및 처분은 사원총회의 결의에 의한다.

덫이 된 원칙들

2심 재판부인 수원고등법원의 위헌제청 결정문을 살펴보겠습니다. 결정문은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민법 제275조와 제276조, 그리고 이 법들을 근간으로 한 대법원 판례들을 비춰봅니다. 이들 모두 종중과 같은 비법인사단의 재산을 '총유'라고 규정하고, 이를 처분할 때는 반드시 사원총회의 결의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공동의 재산은 총회, 즉 단체 전체의 결정에 따라 처분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해 못 할 법도 아닙니다.

우리 민법은 '재산의 원래 주인을 최대한 보호한다'는 원칙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비법인사단 내부의 절차에만 집중하다 보니, 거래 상대방, 즉 주민들과 같은 제삼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법원은 꼬집습니다. 재산을 거래한 상대방은 현실적으로 종중이 어떤 절차를 거치지 않았는지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또 

우리 민법은 '절대적 무효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어떤 거래에서 법적 문제가 발생했다면, 문제가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모든 거래는 무효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거래 상대방이 내부 문제를 나중에 알았어도 마찬가집니다. 법원은 절대적 무효 법칙 앞에 종중과 거래한 이들의 재산권이 침해되는 건 부당하다"며 "거래의 신뢰와 안전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라고 봤습니다.

원주인을 최대한 보호하고, 원주인에게서 시작하지 않은 모든 거래를 무효로 보는

원칙들이 거래의 덫이 현실

. 법원은 비법인사단과의 재산 거래 문제가 단순히 한두 거래가 아닌 법적 구조 자체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선의·무과실의 제삼자에 대해 아무런 보호규정을 두지 않은 이 사건 법률 조항은, 재산권과 거래의 안전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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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뿌리, 비법인사단

결정문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비법인사단과 사단법인 간의 차이에 대한 지적입니다. 종중 소송에서 나타난 법적 혼란의 뿌리는 비법인사단의 특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비법인사단이란 법인격은 없지만, 법인으로서 법률상 권리·의무를 부여받는 집단입니다. 종중, 교회 등 종교 단체가 대표적인 비법인사단입니다.

이런 비법인사단들의 사회적·경제적 활동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

대법원 종합법률정보'상 종중이 당사자인 소유권이전등기 사건은 총 403건이 검색되는데, 특히 1990년대 163건, 2000년대 48건, 2010년 이후 48건 등 1990년대 들어 급증한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비법인사단과의 거래를 적절히 보호할 법적 장치가 없다는 게 법원의 지적입니다.

예컨대 사단법인의 경우 대표자가 총회 결의 없이 재산을 처분해도 그 행위가 절대적 무효로 간주되지 않고, 선의·무과실의 거래자들을 보호하는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종중과 같은 단체는 수백 년 이어온 조직의 특성상 내부 갈등이 많고 대표자나 임원직을 두고 다툼이 빈번합니다. 때문에 누가 적법한 대표자인지, 그 대표자가 적법하게 재산을 처분했는지 여부를 외부에서 확인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현행 법률은 이 같은 단체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선의·무과실의 제삼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겁니다.

주민들을 보호할 법은 어디에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주민들입니다. 법과 등기부등본을 신뢰하고 합법적으로 거래했지만, 그 신뢰가 소송이라는 배신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 결정이 이뤄졌다 해도 주민들의 피해는 여전합니다. 수년이 걸릴지 모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주택 매매나 담보 대출 등은 불가능합니다. 생존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합니다.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한 소유권 분쟁을 넘어,

법망 내에서 어떻게 법적 안전성을 확보할 것인지, 법이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헌법 2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라고 규정합니다.

재산이 법률에 의한 것임을,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도 있음을 명시한 겁니다. 재산을 지켜주지 못하는 법률이 있다면, 들여다볼 헌법적 가치가 있는 이유입니다. 수년 뒤 나올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이후 중종과의 거래에서 나올 피해를 막아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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