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프리미엄

"이름이 운명을 좌우한다" 논문까지 있다고? 더 흥미로운 질문은…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Is Your Name Your Destiny?, by Jesse Singal


오프라인 - SBS 뉴스

* 제시 싱걸은 책 "한창 유행하는 심리학으로 우리의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를 썼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이 

레스 맥버니(Les MacBurney, '불타다'라는 뜻의 'burn'이 포함된 성)라는 이름의 소방관

을 발견하고 즐거워하기 한참 전부터 우리 인간은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매료됐다.

고대 로마인들도 이를 주제로 한 짧은 운문을 남겼다.

nomen est omen

"이름이 곧 징조"라는 뜻이다. 기원전 70년에는 이 말이 현실에 적용된 사건이 발생했다. 가이우스 베레스(Gaius Verres)라는 로마 관료가 시칠리아에서 강탈 및 갈취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그의 성 베레스는 수컷 돼지를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베레스로서는 매우 불운하게도, 당시 검사는 전설적인 웅변가로 후세에 널리 알려진 키케로였다. 그는 베레스의 죄가 "이름에 딱 맞는" 행위였다고 주장하며, 치명적인 일격을 날렸다.

그로부터 수천 년이 흐른 지금, 이름과 운명의 관계는 그저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문제나 일화를 통해 강화되는 가설에 그치지 않고, 수량화와 실증적 검증을 통한 과학적 연구 주제로 거듭나고 있다.

이른바 '이름 결정론', 즉 사람의 이름이 직업, 취미, 배우자 등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의 근거를 파헤쳐보면 볼수록 이런 생각을 하나의 이론으로 부를 수 있는지 회의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합당한 증거를 좀처럼 찾을 수 없는데도 수 세기 동안 이런 주장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혼돈의 우주 속에서 질서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뿌리 깊은 욕망과 그러한 욕망을 충족해 주는 과학의 역할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현대 사회에서 이름 결정론에 대한 관심이 다시 한번 환기된 건 1994년으로 보인다. 잡지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는 과학자와 작가들이 이름에 따라 특정 주제를 택한 것처럼 보인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 등장한 사례 가운데 최고는 아무래도 A.J. 스플랫(Splatt, 액체, 또는 물기가 있는 것이 표면에 부딪히는 소리를 의미하는 'splat'이 해당 성과 유사)과 D. 위든(Weedon, 'wee'라는 단어에 '소변'이라는 뜻이 있음)이 영국 비뇨기학 저널에 기고한 

요실금 관련 논문

이었을 것이다. 당시 "저자가 자신의 성에 걸맞은 연구 분야로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에 '이름 결정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도 '뉴 사이언티스트'의 

독자들

이었다. (이후 '이름 결정론'의 의미는 더욱 확장됐다.)

결국, 이름으로 직업뿐 아니라 인생의 다양한 면을 점쳐볼 수 있다는 주장은 표와 그래프를 수반한 본격적인 연구 주제로 대접받게 됐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심리학회가 발간하는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J.P.S.P)에는 사람의 이름이 

직업

뿐 아니라 

거주지

(자신의 이름과 비슷하거나 같은 도시, 거리 이름 선호), 

배우자

(성이 비슷한 배우자 선호)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의 논문이 세 편 실렸다. 물론 이런 연구는 나의 이름에 대한 다른 사람의 반응이 인생에 어떤 영향(예를 들어 흑인으로 인식되는 이름과 백인으로 인식되는 이름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와는 전혀 다른 주제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름 결정론은 심리학 교과서에도 등장하게 됐다. 연구자들은 이름 결정론이 잠재된 자기중심성, 즉 나와 관련된 것을 무의식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회의론자도 있었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심리학과의 유리 사이먼슨 교수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2011년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에 기고한 

논문

에서 인간의 잠재적인 자기중심성이 자기 이름과 관계된 배우자와 거주지, 직업을 찾도록 유도한다고 주장한 기존 연구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매우 꼼꼼하게 해체하기 시작했다. 사이먼슨 교수는 기존 연구들이 이름 외에 좀 더 단순한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인이 자신과 같은 성을 가진 사람과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예로 들어 보자. 사이먼슨 교수는 자기중심성까지 갈 것도 없이, 다른 그럴듯한 설명이 존재한다고 본다. 같은 민족이면 성이 비슷하고, 미국인이라도 민족 내에서 결혼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이라는 성씨를 가진 한국계 미국인이 배우자로 한국계 미국인을 찾는다면, 배우자 후보군에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아기 이름 유행이 바뀌는 현상 역시 이름 결정론이 무시하는 또 하나의 설명이다. 2002년에 나온 한 연구는 '데니스'가 비슷하게 인기 있는 이름인 '제리'나 '월터'에 비해 치과의사(dentist)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했는데, 사이먼슨은 그게 아니라 이 연구가 나온 시기에 '제리'나 '월터'들은 '데니스'들보다 연령대가 높아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은퇴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데니스'는 '제리'나 '월터'에 비해 치과의사뿐 아니라 변호사일 확률도 더 높았다.

사이먼슨의 논문은 과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곳곳에 지뢰가 널려있는 분야인지 잘 보여준다. 또한, 원칙에 천착하는 회의론자들이 과학이라는 분야를 어떻게 발전시켜 가는지도 잘 드러난다. 사이먼슨 교수에게 지금도 여전히 이름 결정론에 회의적인지를 묻자, 그는 그렇다고 답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그 이론을 좋아하는지도 궁금해졌습니다."

나에게도 그것이 이름 결정론 자체보다 더 흥미로운 질문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오프라인 - SBS 뉴스
댓글
댓글 표시하기
스브스프리미엄
기사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