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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선거 영상' 된 미 국립묘지…트럼프도 할 말 있다?


오프라인 - SBS 뉴스

지난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군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표적 안보 실책 중 하나로 꼽힙니다. 20년 아프간 전쟁을 끝내기 위한 결단이었다고는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무기가 탈레반 손에 넘어갔고 철군 과정에서 아프간 난민들이 미군 수송기에 매달렸다 추락하는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 미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더구나 카불 공항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로 미 해병대 13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책임론이 들끓기도 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맞은 폭탄 테러 희생자 3주기 추모 행사에 트럼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이든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당시 참전용사들과 유가족들이 트럼프와 함께 알링턴 국립묘지를 참배했습니다. 트럼프는 이날 SNS에 "오늘은 미국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순간인 아프가니스탄 철군 3주년"이라면서 "총체적 무능으로 13명의 미군 사망과 함께 (아프간 주민) 수백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적었습니다. 또 "그 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으며 이스라엘은 공격받았다"면서 "미국은 전 세계 웃음거리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묘지 내 선거 관련 활동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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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게 유리하게 끝나는가 싶었던 추모행사는 예상치 못했던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트럼프가 국립묘지를 방문했을 당시, 사진촬영 규정위반 문제를 놓고 캠프 관계자와 묘지 관계자 사이에 마찰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온 겁니다. 언론들은 당시 트럼프 캠프 관계자 2명이 헌화 장면을 찍는 걸 막는 묘지 관계자에게 폭언을 하고 밀치면서 언쟁과 몸싸움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측은 "민간 사진사가 촬영을 허락받았는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익명 인사가 매우 엄숙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트럼프 팀 구성원을 물리적으로 막아섰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면서 이를 뒷받침할 영상을 갖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언론 등의 거듭된 요청에도 이를 공개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 육군이 트럼프 캠프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일이 복잡해졌습니다. 알링턴 국립묘지를 관할하는 미 육군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트럼프 캠프 인사들이 묘지 직원을 밀쳐냈을 때 해당 직원은 '묘지 내 정치활동 금지' 규정을 집행하고 있었다면서 "(직원들이) 프로답게 행동했고 혼란이 격화되는 것을 피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번 일은 불행한 일이라면서 묘지 직원의 직업의식이 부당하게 공격당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사자 가족이 촬영 승인" vs "연방법으로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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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사자들 묘역 헌화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린 걸로 보입니다. 전사자 유족들과 함께 헌화하는 모습을 통해 '책임감 있는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동시에 바이든-해리스 정부의 안보 실책을 비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뻔히 속 보이는 정치적 행보이지만 트럼프 측도 할 말은 있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촬영의 대상이 된 전사자 유족들이 촬영에 동의하고 이를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측이 공개한 성명에서 전사자 가족들은 "우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식 촬영 감독과 사진작가가 이 행사에 참석하도록 승인했으며, 이 성스러운 추모의 순간을 정중히 영상에 담고 우리가 이 추억을 영원히 소중히 간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당사자들이 괜찮다는 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방법으로 금지한 건 순국선열을 모신 국립묘지가 정치적 선전에 활용되는 걸 막기 위한 미 의회 차원의 합의이자 조치입니다. 이번 단 건으로는 모르겠지만 원칙 차원에서 보자면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한 견해는 다를 수 있겠지만 사건 후 트럼프 측이 보인 태도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명백히 법으로도 금지된 사안을 마치 합법적으로 처리한 것처럼 '사전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공무 집행에 나섰던 묘지 직원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익명의 인사'라고 공격했습니다. 트럼프 측 주장이 맞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증거 영상이 있다면서도 끝내 내놓지 않고 있는 걸 보면 그렇게 믿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토론이건 뭐건 일단 지르고 보는 스타일의 트럼프란 점을 고려하면 그리 낯선 일도 아니긴 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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