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리(萬里)'였다. 만리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전 세계 스포츠인들의 관심이 파리로 집중되던 지난달 하순, 중국 서남부 구이저우성(貴州省)의 한 조그만 마을에는 열성 축구 팬과 관광객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어 때아닌 축구 열기로 가득했다. 올 3월 이곳에서 제2회 '동네 축구 슈퍼 리그(Village Super League)' 시즌이 시작되었고, 오랜 예선 과정을 거쳐 7월 20일 개최된 결승전에서 당샹촌(党相村) 축구팀이 둥먼촌(東門村) 축구팀을 5대 0으로 물리치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동네 축구리그 결승전의 관중석 열기는 유럽 프리미어리그를 방불케 했다.
이 축구 리그의 정식 명칭은 중국어로 '마을 축구 슈퍼 리그(鄕村足球超級聯賽)', 줄여서 '춘차오(村超)'라고 한다. 중국 전국 규모의 정규 프로축구 슈퍼리그를 약칭으로 '중차오(中超)'라고 하는데 앞 글자만 바꿔 부르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축구를 우리식의 차는 동작의 '축(蹴)'자가 아닌 발 '족(足)'자를 써서 주치우(足球)라고 부르며, 춘차오나 중차오의 챠오(超)는 영어 단어 슈퍼(super)를 뜻한다. 중국의 축구 팬들에게 인기가 높은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잉차오(英超)'라고 한다. 춘차오(村超)라는 단어는 그 인기를 반영하여 2023년 중국 국가언어자원 연구센터(中國國家語言資源監測與硏究中心)가 선정한 중국의 10대 신조어에 포함되었다.
이 리그는 작년 5월에 처음 시작되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강변에서 모여 마을 축구를 하였는데 작년부터 축구장에서 경기 리그를 본격화한 것이다. 작년 구이저우 롱장(榕江) 축구장에서 열린 경기에는 수만 명의 관중이 몰렸고, 리그기간 동안 더우인(抖音) 등 플랫폼으로 중계되어 총 130억 뷰, 480억 클릭 수를 기록했다고 바이두(百度)는 전한다. 작년에는 약 60만 명, 올해는 1백만 명이 넘는 축구 팬과 관광객들이 리그 개최 기간 동안 멀디먼 동네인 이 롱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또한, 프로리그 중차오(中超)의 평균 관중이 약 2만 명 수준인데 비해, 동네축구 춘차오(村超)의 관중은 5만에 달한다. 다윗인 동네 축구가 골리앗 프로 축구의 인기를 능가하고 있는 셈이다. 평범한 한 시골 마을의 축구 경기가 이렇게 갑작스레 폭발적 관심을 끈 이유는 무얼까?
롱장현(榕江縣)은 인구 30만 명의 작은 지역이다. 국가 환경생태 보호구역으로, 2020년에서야 빈곤 지역에서 벗어났다. 롱장은 구이저우성 내의 '먀오족 퉁족 자치주(苗族侗族自治州)'에 위치한다. 전 인구의 81%가 먀오족이나 퉁족을 비롯한 16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일 전쟁 시기인 1940년대부터 축구를 즐겼으며 현재도 5만 명 정도가 축구 애호층이라고 한다. 국가급 1급 선수가 20명, 2급 선수 150명이나 되며, 35개 축구팀이 있다고 한다. 리그에 참여한 축구팀 소속 선수들은 프로 선수들이 아니라 농부나 판매원, 운전기사나 건설 노무자 등 마을 내 각계각층의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춘차오의 가장 큰 인기 이유는 평범한 이웃 같은 이들이 펼치는 진솔하고 리얼한 축구 경기가 관중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데 있다. 기대 수준에 못 미치는 실력과 잦은 스캔들 뉴스에 시달리는 전국 규모의 프로 축구리그에 비해 아마추어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열정을 경기에서 보여주는 춘차오에 열광하는 것이다. 아울러 경기 중간 쉬는 시간에 선보이는 다양한 소수민족 예술단들의 독특한 복장과 예술공연, 현지 특색의 음식과 전통 먹거리들, 구이저우 특유의 깨끗한 자연과 공기 등을 보고 느끼기 위해 축구 팬을 넘어 전국의 일반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최근에는 춘차오 경기와 관련 인터넷 조회량이 급증하면서 구이저우 지역 경제가 더불어 활력을 얻고 있다. 밀려드는 관광객 외에 현지 생산 농산물과 가공식품들을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전국에 판매해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춘차오를 활용한 축구 국제교류에도 나서 세계적 축구 선수인 이탈리아의 파비오 칸나바로(Fabio Cannavaro)와 브라질의 카카(Kaka)도 이곳을 방문하였고, 프랑스 청소년 팀과의 친선 경기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들과의 훈련 교류도 추진하고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