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씨네멘터리] 티켓값의 수수께끼?…“이러다가 다 죽어”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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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이맘때쯤 ‘5월 한국 영화 점유율 역대 최고’라는 헤드라인을 단 기사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한국 영화가 어렵다 어렵다 하더니 엄살이었네”라는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팩트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맥락이 제거된 팩트는 오해와 왜곡을 부른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 발표된 6월 한국 영화 산업 결산을 보니 한국 영화 점유율이 5월의 반토막인 30%대로 추락하며 10개월 만에 외국 영화에 밀렸다. ‘5월 한국 영화 점유율 역대 최고’는 “범죄도시4” 흥행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한국 영화 시장이 ‘대박 아니면 쪽박’으로 흘러가면서 이런 착시 현상이 빈발하고 있다. 극장에 올리면 더 손해라는 이유로 코로나 이후 개봉하지 못한 영화들이 더러 남아 있는 가운데,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는 예전 같지 않아서 내년이 문제고 내후년은 더 문제라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천만 영화를 제외하면, 지난해에는 여름 시장까지 관객 200만 명 이상을 동원한 한국 영화가 두 편(“밀수” 500만, “콘크리트 유토피아” 300만)있었지만, 올해는 지금까지 단 한편의 200만 영화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아직 여름 시장의 절반이 남았다)

천만 영화가 5편이 나오며 역대 최다의 관객이 들었던 2019년에는 200만을 넘겨봤자 연간 박스오피스 27위에 불과했고 500만이 넘지 않으면 10위권에 들지도 못했다. 올해는 200만 명만 넘으면 바로 연간 박스오피스 5위다. 

‘모 아니면 도’ 현상이 극에 달하면서 천만 영화와 독립·예술 영화 사이를 적절하게 메워주며 관객들을 지속적으로 극장에 데려와야 할 이른바 ‘중박 영화’가 멸종하다시피 한 것이다.

'영화인연대', 멀티플렉스 3사를 공정위에 신고

지난해 11월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산업의 가치사슬과 구조 변화’라는 보고서에서 “극장 시장의 매력도가 떨어져서 투입된 자본의 회수 가능성이 낮아진 점이 더욱 더 재무적 투자자의 불만을 가져오게 되어 수익 배분 이슈로 나타나고 있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지난 주 ‘영화인연대’는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극장 측이 통신사 할인 등 프로모션을 통해 깎아주는 관람료 정산 내역을 상세하게 공개하지 않아 수익 배분을 불투명하게 하는 등 불공정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프라인 - SBS 뉴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감독조합,제작가협회,예술영화관협회,영화수입배급사협회 등이 참여한 '영화인연대' 기자회견, 지난 4일 / 연합뉴스

예를 들어 A라는 관객이 주말에 15,000원 짜리 티켓을 통신사·카드사 멤버십 할인을 받아 9,000원을 내고 “파묘”를 봤다고 치자.(극장료 수입은 배급사와 극장이 대략 5:5의 비율로 나눠 갖는다)

극장 측은 ‘A라는 관객이 어느 통신사/카드사의 어떤 할인율을 적용 받아 최종적으로 얼마를 내고 봤다’ 같은 상세 내역과 기준은 배급사에게 주지 않는다. 다만, 특정일에 특정 영화를 6천 원에 본 관객 몇 명, 7천 원에 본 관객 몇 명, 1만 원에 본 관객 몇 명 등등, 다 합해서 평균을 내면 관객 1인당 평균 관람료(이른바 ‘객단가’) 얼마다, 이런 식으로 뭉뚱그려 배급사에 넘긴다는 게 영화인연대와 배급사 측의 얘기다. 

티켓값이 단기간에 많이 올라 관객들은 티켓값 비싸다고 아우성인데, 배급사(와 제작사)는 자신들이 받는 객단가는 1만원도 안되니(2024년 기준) 불만이 생기고, 게다가 극장측이 객단가가 왜 1만 원 안팎밖에 안되는지 세부 내역을 알려주지도 않으니 ‘깜깜이 정산’을 조사하라고 공정위에 신고까지 한 것이다.

사실 극장-배급사(제작사)가 수익 배분을 놓고 다툰 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십여 년 전에는 법정까지 간 적도 있었다. 다만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한국 영화가 잘 나가던 시절에는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지”하며 넘어가던 문제들도 영화 산업 전체가 어려워지니 터져나오고 있다.

극장 측은 관람료 할인 세부 내역은 영업 비밀이라고 말한다. 멀티플렉스 3사와 3대 통신사, 각 카드사들도 제각각 해당 시장에서 경쟁하는만큼 똑같은 조건으로 협상할 수 없는데, 이런 세부 내용까지 다 공개하면 영업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이다. 다만 카드사나 통신사 할인으로 인한 보전액까지 모두 객단가에 포함해 정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극장 측은 자신들이 통신사/카드사와 각각 맺고 있는 계약 내용이 경쟁 극장에 새나가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CGV와 통신사/카드사 간의 상세한 협상 조건이 롯데시네마에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 말도 이해는 간다. 그런데 각사가 비공개로 맺은 이 정보가 왜 상대사에 넘어갈까봐 우려할까?

멀티플렉스 3사는 제작-배급-상영까지 수직계열화한 대기업 계열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롯데시네마는 CJ가 배급한 영화도 상영하는데, 배급사인 CJ에게 객단가 상세 내역을 공개하면 이게 CJ계열사인 CGV에 들어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CGV도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영화를 상영하는데, 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에게 객단가 상세 내역을 보여주면 이게 롯데 계열사인 롯데시네마가 알게 되지 않겠냐는 우려다. 하지만 냉정히 얘기하면 그건 제작-배급-상영을 수직계열화한 대기업 내부 시스템의 문제다.

지난해 한국 영화 시장 흥행 톱 10 중 7편을 4개 메이저 배급사가 배급했다. (나머지 3편은 디즈니 배급) 1~10위 영화의 전체 매출액 점유율은 49%에 이른다. 그런데 그 4개 메이저 배급사 중 플러스엠과 롯데 모두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라는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메이저 배급사라고 해도 계열사인 극장에 대놓고 문제 제기를 하기가 힘들고, 극장 체인이 없는 메이저 배급사 등도 극장 눈치를 보느라 항의하기가 쉽지 않다. 이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

“2000년대 내내 이어졌던 폭발적인 성장세와 달리 2010년대 중반부터 극장 매출과 관객 수는

정.체.상.태.

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 수와 스크린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영화산업의 가치사슬과 구조 변화’ 중 *볼딕체는 필자)

실제로 코로나가 발발한 2020년을 제외하면 영화 산업이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까지 전국의 극장 수와 스크린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운영위원인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는 영화인연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관객은 주는데 극장은 늘어났다. 수요는 줄었는데 공급이 늘다보니 (경쟁)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 매점 수입 확보를 위해 극장은 공짜 티켓을 늘려서라도 관객을 확보해야 하고 (매점 수입은 극장이 모두 갖는다) ‘되는 영화’는 관객들이 경쟁 극장에 못 가게 더 많은 상영관을 열어야 한다.”

2010년 1억 4,700만 명이었던 한국 영화 시장 관객 수는 불과 3년 뒤인 2013년에 역대 최초로 2억 명을 돌파한다. 하지만 6년이 흐른 뒤, 역대 최다 관객 수를 기록했던 2019년에도 관객은 2억 2,000만여 명에 머물렀다. 지금 같은 영화 산업의 격변기에는 사실 정.체.상.태.만 유지해도 나쁘진 않다. 그러나 지금 영화 산업은 정체하기도 쉽지 않다. 

'틴셀타운' 할리우드에도 불어 닥친 위기감

코로나 이후 심화된 영화 산업의 위기는 한국 영화 시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달 LA타임스는

‘할리우드의 놀랄만한 일자리 감소의 이면: 관객이 떠났다’

라는 제목의 보도 첫머리를 “역사의 철권이 마침내 할리우드(Tinseltown)에 도래하고 있는 것 같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이 신문은 이어 “아무도 할리우드의 주 소득원인 장편 영화의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지금 할리우드가 겪고 있는 위기의 폭과 깊이는 1950년대 초를 제외하면 비견할 만한 것이 없다”고 보도했다. 

1950년 대 초는 미국 가정에 TV가 보편화하기 시작했고, 반독점법에 의한 이른바 ‘파라마운트 판결’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수직계열화가 금지되면서 이들이 더 이상 극장을 소유하지 못하게 된 여파로 산업이 재편되면서 할리우드가 위기를 맞던 시기다. 이 판결이 날 당시만 해도 미국 인구의 2/3인 9천만 명이 매주 영화관에 갔지만 10년 뒤에는 관람객이 반토막났다고 한다. (“할리우드 이코노미스트”, LA타임스에서 재인용)

대공황기에 이은 이 두 번째 위기를 TV프로그램 제작과 판권 판매, 굿즈 제작, 비디오 테이프 및 DVD 판매, 해외 시장 개척 등으로 극복한 할리우드는 1977년 “스타워즈”로 프랜차이즈 영화의 새 시대를 열고 슈퍼 블록버스터 I.P.를 탄생시키며 오늘날까지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공장으로 우뚝 서 왔다.

하지만 지난 십여 년간 전세계를 휩쓸어왔던 마블의 슈퍼 히어로 장르 영화들도 이제는 인기가 시들하다. LA타임스는 대중이 유튜브를 보거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을 선호하고 넷플릭스 같은 인터넷 영상 플랫폼이 부상하는 물결 속에서 할리우드는 관객을 되찾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 이러다가 다 죽어…

“거칠게 얘기하면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한 배급사 관계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관객들은 “티켓값이 너무 비쌉니다”라고 하는데 자신들이 받은 어느 극장의 정산서에는 7,000원대 관람객 비중이 가장 높다고 나오니 황당하다는 것이다.

소고기가 너무 비싸서 사 먹을 수 없다는 소비자의 얘기를 듣는 축산 농가의 입장이라고나 할까.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유통의 역할이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금 객단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에는 대중의 인식과 실제 벌어지는 상황 사이에 괴리가 있다. 누가 뭘 떼어먹었네, 아니네 하는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산업을 둘러싼 플레이어들 사이에 인식의 괴리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팩트라는 말이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를 주축으로 제작자, 배급사, 극장사 등이 참여한 ‘한국 영화산업 위기 극복 정책 협의회’가 꾸려졌다. 객단가, 홀드백, 관람료 이슈 등을 논의해 올해 상반기에 타협점을 찾아 자율 협약을 내놓는다는 얘기가 돌더니만 결국 없던 일로 됐다. 지금은 논의도 중단 상태다. 극장들이 끝내 세부 정산서는 공개할 수 없다고 한 모양이다. 

한국 영화를 ‘방화’(邦畵)라고 부르던, 지금 같은 ‘영화입장권통합전산망’이 없던 시절에는 정확한 관람객 통계가 없어서 입장료 정산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 극장의 관람료 수입 빼돌리기가 일상이었다고 전해진다. 

영화 제작 현장과 영화 행정을 두루 거친 어느 베테랑 영화인은 필자에게 자신이 조감독 시절 겪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극장 측으로부터 받은 돈이 터무니없어 극장에 가서 “왜 정산금이 이것 밖에 안되냐, 상세한 관람료 분배 내역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그건 “영업 비밀”이니 그냥 그렇게 알고 받아가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통합전산망이 갖춰지고 대기업들이 극장업에 진출하면서 전근대적이고 부조리한 시스템은 많이 개선됐다. 그러니 ‘충무로 시절’의 ‘영업 비밀’과 지금의 ‘영업 비밀’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또 대기업이 제작-배급-상영까지 수직계열화한 극장 체인을 운영하면서 한국 영화산업의 규모를 키운 순기능도 있고,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아 극장들이 엄청난 누적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이 정도로 객단가에 대한 배급사와 제작사들의 불신이 팽배하다면 최소한의 신뢰를 담보할만한 어떤 형태의 ‘담보’나 방법을 제시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극장 측에 있다.

객단가 이슈는 한국 영화계가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해법이 아니라 기초에 불과하다. 이하영 대표도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를 영화계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상생을 위한 문제 제기로 봐 달라고 호소했다. 

지금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산인 할리우드도 휘청휘청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객단가 문제 등 기초적인 이슈들에 발목이 잡힌다면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몇 달 뒤면 관객들을 TV와 태블릿, 휴대폰 앞으로 불러 모을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 시즌2가 시작된다고 한다. “우리 이러다가 다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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