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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아봤자 소똥밖에 안 남아요" 한우 사 먹긴 비싼데 농가들은 무너지고…뭐가 문제인가 [스프]

[더 스피커]


오프라인 -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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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둔치 주차장, 트럭에 붙은 "소 한 마리당 200만 원씩 적자"라는 현수막 아래 소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치솟는 사룟값에 도저히 버틸 수가 없으니 정부에 반납하겠다며 멀리 경남에서부터 데려온 소입니다.

이날 여의도에는 주최 측 추산 1만여 곳의 한우 농가가 모였습니다. 한우 도매가격이 계속 떨어지면서 소를 키울수록 적자를 보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농민들이 '한우 반납 집회'를 연 건 지난 2012년 이후 12년 만입니다. 집회에는 소 영정사진이 등장했고, 일부 참가자들은 축사 모형에 사료 포대를 던져 무너뜨리고 경찰 방어벽 너머로 한우 모형을 반납했습니다. 이들이 왜 또다시 집회에 나섰는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소 한 마리 키워봤자 남는 게 소똥밖에 없네요"

경기 평택시의 한 한우 농가, 30년 가까이 한우를 키워온 농장주 이인세 씨는 평생 지금만큼 어려운 적이 없었다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사료값은 두 배 가까이 치솟았는데, 반대로 소 출하 가격은 폭락하면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겁니다. 올해부턴 한 마리당 200만 원 넘게 적자가 쌓이면서 아예 소를 250마리에서 200마리로 줄여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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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팔아봤자 소똥밖에 안 남습니다, 지금. 그런데 이게 생물이기 때문에, 제조업 공장 같으면 그냥 문 닫고 안 하면 되지만 소는 생물이니까 내다 버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생업으로 애지중지 길렀던 것들을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소홀하게 대할 수도 없고... 빚만 늘어 가는데도 기르고 있는 현실입니다."

물론 어느 산업이든 당연히 부침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최초 공급 가격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최종 상품 가격도 하락하면서 다시 수요가 늘어나는 형태로 조정이 이뤄집니다. 경제학의 기본 원칙인 '수요-공급 균형'입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의 한우 시장만큼은 여기서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소 가격이 폭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소고기 소비자가격은 내릴 줄 모르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한우를 평생 기른 저부터도 소고기가 너무 비싸서 못 사 먹고 있는데 소비자들이 사 먹을까요? 구조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격 폭락의 원인은 '공급 과잉…그런데 소비자가격은?

한우 산지 가격이 폭락한 가장 큰 원인은 '공급 과잉'입니다. 코로나19가 심각했던 지난 2021년,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식이 어려워지면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좋은 음식을 요리해 먹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한우 수요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공급이 한정돼 있는데 수요가 크게 늘었으니 자연스레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고, 한우 가격이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자 한우 농가들은 송아지 수를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307만 8천 마리였던 사육 두수는 2022년 355만 7천 마리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합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한우는 보통 30개월 정도로, 농가가 6개월 된 송아지를 축사에 입식해 2년 동안 키운 뒤 시장에 내놓습니다. 즉, 올해는 2년 전 급증한 한우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시점입니다. 당연히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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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 2021년 6월 한 달 동안 평균 소고기 도매가격은 1kg당 21,326원이었습니다. 반면 지난달 평균 가격은 kg당 13,481원. 3년 전과 비교해 37%나 떨어진 겁니다.

그런데 정작 소비자들은 가격 하락을 느끼지 못합니다. 같은 기간 소비자가격은 101,702원에서 84,996원으로 불과 16%만 줄었습니다. 산지 가격 하락률의 절반도 채 반영되지 않은 건데, 그나마 이것도 마트나 시장 등 소매점에서 살 때 이야기고 인건비 상승 등을 고려하면 음식점 가격은 오히려 더 올랐다고 봐야 합니다.

950만 원짜리 소가 2,300만 원으로…결국 유통 '구조'의 문제

소는 그 크기와 복잡한 신체 구조 때문에 아무나 다룰 수 없고, 도축과 정형을 위해선 설비와 전문 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즉, 이를 갖고 있는 대형 유통업체들을 거치지 않으면 아예 팔 수 없기 때문에, 생산자인 농가보다 중간 유통업자들의 협상력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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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도축장, 경매장, 도매, 소매점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유통 구조 속 각자 마진을 늘려 잡으면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습니다. 농가에서 출하할 때 한 마리에 평균 950만 원이었던 한우는 도축과 정형 작업을 마치면 1,250만 원으로 뛰고, 이동과 보관 과정을 거쳐 최종 판매처인 대형마트에서는 2,300만 원, 백화점이라면 3,000만 원 넘는 가격에 팔립니다. 전체 소매 단계 평균 가격은 2,030만 원, 유통 과정에서만 가격이 두 배 넘게 뛰는 겁니다.

대체 왜 이렇게 비싸지는 걸까요? 인건비, 물류비 등 여러 부대 비용이 있지만, 특히 소고기라는 상품의 특성으로 인한 '폐기 비용'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고기는 큰 덩어리를 여러 부위별로 소분해서 파는 데다, 장기간 보관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당일에 판매되지 않은 양은 모두 폐기해야 하는데, 유통 단계에서 이 비용까지 합쳐서 이윤을 책정하니 결국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넘겨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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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소매점에서 등심을 하루에 2kg 정도 팔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고 쳐요. 그럼 도매상에서 2kg만 사 올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게 살 수 없어요. 그쪽에서 정형한 7~8kg짜리 덩어리를 받아와서 이걸 소분하는 거예요. 또 일단 소분하면 유통 기간이 짧으니, 그렇게 팔다가 남은 부위는 다 버려야 하고. 그러니 현실적으로 이런 상태에서 이윤을 남기려면 일반 소매점에서 가격을 낮추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죠."
- 한우 직판장 관계자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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