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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얼굴의 남자"…스파이와 비슷한 영화감독이 만든 이중 첩보극 [스프]

[취향저격] <동조자>, 박찬욱표 스파이물의 매혹 (글 : 김선영 TV평론가·칼럼니스트)


박찬욱 감독의 첫 TV 시리즈 연출작 <리틀 드러머 걸>(BBC, AMC, 2018)은 스파이 문학의 거장 존 르카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스라엘 정보국의 비밀 작전에 연루된 무명 배우와 요원들의 첩보전을 그린 이 작품은 박찬욱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미장센과 지적인 각색으로 호평받았다.

그로부터 6년 뒤, 박찬욱 감독이 다시 스파이물로 돌아왔다. 이번엔 이중스파이다. 미국 HBO와 국내 OTT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된 두 번째 TV 시리즈 연출작 <동조자>는 1970년대 베트남전 당시 남베트남군 스파이로 위장해 방첩 활동을 펼친 북베트남군의 이중 첩보극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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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물의 어떤 점이 박찬욱 감독을 매료시키는 걸까. <동조자>의 국내 방영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 당시 박 감독은 영화감독과 스파이의 공통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스파이들의 정교한 공작 시나리오와 그 실행 과정이 영화감독의 디렉팅과 유사하다는 이야기다.

박 감독의 이같은 생각은 그의 스파이물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령 <리틀 드러머 걸>에서는 첩보 활동 전체가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에 캐스팅당한 배우 찰리(플로렌스 퓨)의 연극 공연처럼 묘사된다. 그 각본이 너무도 섬세한 나머지, 찰리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하다 팔레스타인 해방군들과 동화되기까지 한다. 박찬욱 감독은 그렇게 적과 아군의 구분이 뚜렷한 이분법적 세계 속에서 양 진영을 오가는 경계인으로서 스파이의 특성에 각별히 주목한다. 그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정체성의 고뇌야말로 박찬욱 스파이물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이는 <동조자>에서 한층 더 두드러진다. 주인공(호아 쉬안데)의 진술로 시작되는 작품의 첫 내레이션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밀정,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모든 일의 양면을 보는 저주를 받았죠." 이름도 없이 '대위'라는 직급으로 불리는 주인공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을 오가는 이중간첩이자 동양인과 서양인의 피가 반반씩 섞인 혼혈인이다. 이분법적 세계관이 극에 달한 냉전 시대에, 이 경계인으로서 정체성은 대위가 어느 한쪽 세계에 완전히 소속될 수 없도록 만드는 동시에 양쪽을 다 이해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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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대위는 북베트남의 혁명을 지지하면서도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원하는 남베트남인들의 마음에도 공감한다. 사이공 함락 뒤, 남베트남의 거물 장군(토란 레)을 감시하기 위해 함께 미국에 체류할 당시에는 인종 차별에 분노하는 한편 그 풍요로운 문화에도 매혹을 느낀다. '양면을 보는 저주'로 표현된 이 다중의 정체성은 대위를 끊임없이 갈등 속으로 몰아넣지만, 극단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으로도 작용한다. <동조자>는 그렇게 냉전 시대의 모순을 온몸으로 통과하는 경계인을 통해서 이분법적 구도의 폭력을 비판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연출도 여전히 매혹적이다. <리틀 드러머 걸>의 스파이 임무가 한 편의 연극 공연 같았다면, <동조자>의 그것은 마치 영화 촬영에 가깝게 그려진다. 박찬욱 감독은 리와인드(되감기) 기법과 부드럽게 화면을 전환하는 매치컷 기법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위의 진술서를 "헐리우드식" 시나리오처럼 묘사한다. 실제로 4회는 아예 영화 촬영 에피소드로 전개된다. 시청자들은 이 과정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 그 경계선에 더 집중하게 되고, 그 선을 넘나드는 대위의 갈등과 고뇌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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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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