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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사 넘쳐나니 매력 반감…담백함이 그리워지더라 [스프]

[취향저격] 박경수 작가의 <돌풍>이 아쉬운 이유 (글 : 홍수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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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박경수 작가의 정치 드라마 <돌풍>의 성과는 이미 많이 언급되었다. 이 작품은 드물게 한국의 현대사를 해체하고 재조립한 뒤 상상력을 가미해 촘촘하게 엮었고, 정치에서의 윤리적 딜레마를 진지하게 다룬다. 짐짓 용감한 척 으르렁대면서도 이미 (이야깃거리로서) 닳고 닳은 1970년을 우려먹는 작품들에 비하면, <돌풍>의 시선은 새롭고 과감하다.

물론 티 없는 작품은 아니다. <돌풍>은 가끔 다소 허술하고 우연에 기댄 전개로 시청자를 의아하게 만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질긴 나무 기둥처럼 단단하고도 결이 풍부한 스토리라인을 지녔다. 여러 인물과 상황을 교차시키는 <돌풍>의 실력은 국내 작품 중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돌풍>에는 결정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 이 부분은 작품에 대한 시청자의 유입을 방해하고, 보는 이의 소매를 잡아끈다. 나는 이미 주변에서 같은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돌풍>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해 읽어주기를 바란다. 또 혹시 모를 오해를 막기 위해, 이 글은 정치적 방향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돌풍>을 수놓는 박경수 작가의 대사는 맛깔스럽다. 그는 자기만의 말맛이 살아있는 힘 있는 대사로 작품에 무게감을 싣는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 부분이 다소 과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니까 "지나치게 무게를 잡아" 어색하다는 인상을 종종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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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자. 이런 인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먼저 다소 집착적으로 느껴지는 대구법이다. 박경수 작가는 비슷한 말을 짝지어 나열하기 좋아한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서 반복되는 결정적 대사도 대구법을 활용했다. 혼자 침몰하든지, 이 세상의 오물과 함께 몰락하든지.

마치 패턴처럼 반복되는 말은 시와 같은 음률을 자아내고,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자주 활용되다 보니 어색하게 느껴진다. 일상 언어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대구법을 그렇게 자주 쓰지 않는다. 게다가 드라마의 분위기도 묵직하고 대사 하나하나의 무게감이 크다 보니, 이런 어색함은 배가된다.

도치법도 만만치 않게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보고만 있었나요? 대통령의 모습을"이라는 대사처럼, 서술어를 던지고 목적어를 다음 문장에 배치하는 대사가 많다. 거기다가 뒤에 배치하는 문장은 '뿐'으로 끝나는 경우가 잦다. "질문은 같아. 너와 나의 답이 다를 뿐"이라는 대사처럼. 역시나 일상 언어와 달라 어색함이 느껴진다.

<돌풍>은 간단한 사물에 인물의 상황을 빗대는 연출도 즐긴다. 예컨대 정연(임세미)는 그녀의 옛 연인 만길(강상원)에게서 받았던 캔커피를 돌려주며 "받은 것들을 하나하나 돌려주겠다"라고 말한다. 혹은 얼마 안 남은 휴대폰 배터리를 보며 "나한테 남은 게 없다"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연출에서 활용되는 환유법은 다소 직접적이고 일차원적이라 되려 유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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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가 한 말들이 워낙 멋져서 명대사로 남는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도, 들숨 날숨을 내쉴 때마다 명대사를 남발한다면 청자는 쉽게 피로해질 것이다. 멋있는 사람은 무게감이 있지만, 무게 잡는 사람은 멋있지 않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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