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구글러'였는데 해고…'몸뚱이로 산다' 큰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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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하는 정김경숙 씨

"구글은 제 인생의 거의 99%였습니다. 제 별명이 '뼛속까지 구글러'였어요. 그만큼 나의 회사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심장을 떼면 죽는 것처럼 구글이라는 정체성을 잃으니 상실감이 컸어요."

비영어권 출신 최초로 구글 본사 커뮤니케이션팀 디렉터가 됐다가 작년 초 정리해고 당한 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지낸 정김경숙(56·로이스 김) 씨는 한국법인을 포함해 16년간 몸담았던 구글이 자신을 내쳤을 때의 기분을 지난 24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해고 통지 후 정김 씨는 충격을 딛고 슈퍼마켓 체인점인 트레이더 조의 크루 멤버(시급제 매장 직원)와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또 승차공유 서비스업체 리프트의 운전사로도 활동하고 반려동물을 돌보는 펫시팅도 하는 등 이른바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로 살았습니다.

정김 씨는 "N잡러를 하지 않았다면 해고 충격이나 슬픔을 원만하게 극복하지 못했을 것 같다"면서 "몸뚱이 하나로 (일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큰 자신감을 안겨줬다"고 말했습니다.

몸을 쓰는 일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트레이더 조에서 지게차를 몰거나 손수레로 물건을 옮기는 일은 요령을 익히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스타벅스에서는 복잡하고 다양한 음료 주문에 진땀을 흘렸습니다.

하루 약 2만 5천 보를 걷고 수면 시간이 3∼4시간에 불과할 정도로 강행군했다고 합니다.

새벽 3시에 기상해 트레이더 조에서 10시간을 일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리프트에 로그인해서 운전하며, 오후에는 스타벅스에서 6시간 정도 근무했습니다.

퇴근길에는 의뢰인의 고양이를 돌보고 밤에 집에 와서 각종 컨설팅 아르바이트를 하고서 잠자리에 드는 식의 생활을 한 것입니다.

정김 씨는 이런 경험을 지난달 출간한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에 실었습니다.

링크트인에 올린 경험담을 45만 명 넘게 열람할 정도로 이목이 쏠렸습니다.

정김 씨는 N잡러 생활에 대해 "해보는 것과 해보지 않은 것은 정말 다르다"며 "배울 것이 매우 많았다"고 새로운 경험이 만족스러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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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정김경숙 씨

"(구글에서) 엔지니어들, 몇억 원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을 접하다가 (퇴직 후) N잡러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구나'라고 느꼈고 많이 반성했죠." 다만 이들이 모두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N잡러가 된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예를 들면 트레이더 조에서 일하는 이들 중에는 소매 현장을 체험하고 싶어서 부업을 하는 마케터나, 사람들이 어떤 식품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온 셰프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김 씨는 한국 사람들이 전 직장의 지위를 의식해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는 것에 대해 "껍데기, 타이틀에 너무 연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앞서 살아왔던 것 때문에 뒤에 올 기회를 아예 생각 안 하는 건 참 안타깝다"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트레이더 조 동료 중에는 73세 노인도 있습니다.

정김 씨는 그를 만난 후 "내가 이렇게 몸으로 일해도 앞으로 한 20년은 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저보다 더 나이 많은 동료를 보면서 인생 2막이라는 것은 정말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축구의 승부는 전반전이 아니라 후반전에 결정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후반전을 막 시작한 단계죠."

10대 때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여러 경험을 쌓으며 진로를 선택하는 미국 젊은이를 지켜본 정김 씨는 한국이 너무 획일화된 것이 아닌가 안타까움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의대 등 경제적 보상이 기대되는 분야로 인재가 치우치는 것을 젊은이들만 탓할 수는 없다면서 "아이를 키울 때 획일화된 방향으로 너무 푸시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기성세대에게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김 씨는 트레이더 조에서 6개월 만에 쿠키·캔디 코너 책임자인 섹션 리드로 승진했고, 그로부터 5개월 후에 매장 중간관리자인 메이트가 됐습니다.

기회가 되면 매장 책임자인 '캡틴'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1년간 계산대나 운전석 등에서 만난 사람은 어림잡아 1만 명에 달합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자신을 내보내 준 구글에 대해 "날 끊어줘서 고마워"라고 책에 쓸 정도였습니다.

정김 씨는 N잡러 생활을 지속할지, 전업으로 할 새로운 일을 선택할지 고민 중입니다.

다만 구글에서 일할 때와는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30년간 직장 생활을 했고 N잡러도 해보니 설레는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여러분들이 풀타임 자리를 제안하셨지만 결정할 때는 회사의 규모나 산업군과 상관없이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요."

(사진=정김경숙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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