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의료원 전공의 사직 관련으로 진료 지연 및 많은 혼선이 예상됩니다. 특수 처치 및 검사가 불가한 경우 진료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서울시내 대형병원 곳곳에서 '의료대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오늘(20일) 세브란스병원에 붙은 안내문입니다.
의료계와 정부에 따르면 오늘 오전 6시를 기해 각 병원 전공의가 근무를 중단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곳곳에서 수술과 입원이 연기되고, 퇴원은 앞당겨지는 등 극심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은 전공의 집단사직에 앞서 수술 일정을 조절했고, 과별 상황에 맞춰 추가 조정하고 있습니다.
안과 등은 사실상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외래 진료를 대폭 줄였습니다.
이미 환자들에게도 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때 진료를 재예약해달라고 요청한 상태입니다.
세브란스병원 내부적으로는 전공의 이탈로 향후 수술 일정을 50% 정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가 전부 빠졌을 때 기존 대비 50% 수술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그보다 더 밑으로 내려가진 않을 것"이라며 "절반만 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고, 진료과별 인력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수술은 최대한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은 성모병원 등과 함께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병원으로 꼽힙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오늘 응급·중증 수술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당장 21일부터는 수술 일정을 '절반'으로 줄일 예정입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오는 26일 수술 예정이었다는 한 갑상선암 환자는 수술이 취소됐다는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암 수술 전부터 취소라니, 암 환자는 암을 키우라는 거냐"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등 다른 '빅5' 병원도 환자의 중증도나 응급도를 고려해 입원과 수술 일정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각 병원은 수술이 연기·축소된 데 따라 신규 환자의 입원도 제한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일부 진료과는 환자들의 퇴원을 다소 당기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환자들의 불안은 극심합니다.
지방에 거주하는 한 보호자는 "어머니가 최근 폐암 진단을 받아 서울시내 '빅5' 병원에서 수술 일정을 잡기 위한 검사를 앞두고 있었는데, 당장 검사도 못 받게 생겼다"며 무기한 연기되는 게 아니냐고 걱정했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한 암 환자의 보호자는 퇴원 수속을 밟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보호자는 "파업 때문에 정상적 진료가 힘들어 인근 다른 종합병원에 입원하고, 다음 달 다시 입원하라는 안내를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암을 진단받아 수술을 잡아야 하는 환자는 물론이고, 암 의심 소견을 받고 병원에 추가 검사를 예약한 환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검사가 남아있는 만큼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불안이 큽니다.
서울대병원 노조 등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이미 병원 현장이 '아수라장'이라고 전했습니다.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 생명과 직결된 곳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6개월간 수술을 기다린 환자들의 수술 예약이 취소된 사례도 나왔다고 합니다.
의료연대는 "신규 입원환자를 받지 않고 환자의 퇴원 일정을 앞당기는 등 환자들의 입원을 제한하는 움직임도 있다"며 "서울 상급종합병원의 한 병동은 '재원 환자 0명'으로 병상을 비운 상태라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를 통해 환자 불편 사례를 취합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전날 오후 6시 기준 접수된 34건 중 수술 취소는 25건, 진료 예약 취소는 4건, 진료 거절은 3건, 입원 지연은 2건이었습니다.
복지부에 따르면 신고 사례 중에는 1년 전부터 예약된 자녀의 수술을 위해 보호자가 휴직까지 했으나, 입원이 지연된 경우도 있습니다.
병원들은 전공의들의 빈 자리에 대체인력을 투입하면서 대응하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더욱이 24시간 운영되는 응급의료센터의 경우 전공의 업무공백을 교수들이 채우고 있어 벌써부터 피로도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24시간 일정' 수준의 노동강도로 지속해서 진료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상대적으로 빨리 지칠 수밖에 없다"며 "중증 의심 환자는 여전히 신속하게 보고 있지만, 환자들의 대기 시간도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