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제보>, 이번에는 사회적 고민을 제보합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40대 직장인입니다.
한 달 전, 인사 발표가 났는데요.
동기들은 하나씩 중간 관리자로 올라섰는데
저만 이번에도 승진에서 미끄러졌습니다.
만년 과장, 그게 바로 접니다.
밑에 있는 후배들도 일을 잘해서
저보다 먼저 승진하더라고요.
개중에는 이미 중간 관리자가 된
후배도 있습니다.
동기들한테 밀려서 서러운 건 둘째치고
후배들 보기가 참 쪽팔립니다.
그리고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회사가 비상 경영에 들어간 상태인데요..
그다음 단계는 구조조정일 것 같고,
그땐 이번에 승진 못 한 제가
1순위 대상자가 되지 않을까요?
이 궁금증을 황준철 응용심리학자와 인사 분야 전문가인 황성현 대표와 함께 고민해 봤습니다.
황성현|인사 분야 전문가
직장인들한테 '구조조정'만큼 저승사자 같은 말이 없을 것 같아요. 두려운 얘기죠. 30년 동안 기업에서 인사를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제가 구조조정 상황을 많이 보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보니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직장인 45.3%,
올해 구조조정, 해고, 임금 삭감 예상"
- 출처 : 직장갑질119, '2024년 경기 및 직장 내 고용관계 변화'
"올해 회사 경영에
'발전 없을 것 같다'는 기업 82.3%"
- 출처 : 한국경영자총협회, '2024년 기업 경영전망 조사'
황성현|인사 분야 전문가
한계 기업들이 많이 좀 발생하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경제가 한 10년 가까이 호황이었는데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터지면서 한 2년 정도를 어려운 상황에 들어가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그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거죠.
중견기업 이상이나 대기업들은 그나마 좀 나은 상황이고요, 스타트업들은 지금 삼중고를 겪고 있어요. 요즘에 구조조정 얘기도 나오지만, 스타트업들은 아예 없어져 버리는, 스타트업 회사 직원들은 구조조정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당장 다음 달 월급을 걱정해야 하죠. 생존이 바로 위협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이슈가 되고 있고 앞으로는 불안감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봅니다.
구조조정의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40대 직장인들황준철|응용심리학자
모든 직장인이 생존의 이슈를 가지고 회사 안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IMF 때 모 기업의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직원들의 심리 상담을 해봤더니 나가는 분들은 경제적인 문제, 가족적인 문제, 양육의 문제, 이런 것들로 괴로워했고요. 남아있던 분들도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황준철|응용심리학자
남아있는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심리학적으로 '서바이벌 신드롬, 생존자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조조정에서 생존해서 아직 내가 회사에 있다는 것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것들을 겪는 거죠. '나도 언젠가는 그 대상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그래서 지금은 네가 나가지만 그다음 차례는 내가 될 수 있고 언제 경제 상황이 좋을지 모르는데 난 어떡하지?'라는 심리인 거죠.
황성현|인사 분야 전문가
불안이라는 거는 뭔가 공격을 당한다는 건데 공격이 경제적인 공격이든 경쟁 회사로부터의 공격이든 또는 내 회사 내에서 경쟁자로부터의 공격이든 불안해지면 사람의 행동이 정상적이기 어렵잖아요. 그렇게 되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사람들은 납작 엎드립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시도를 잘 안 하려고 하죠. 내가 안 잘리기 위해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기는 할 거예요. 근데 그 이상의 것들 '여기서 저쪽에 먼 길을 한번 건너뛰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기는 굉장히 어려워지는 거죠.
황준철|응용심리학자
생존자 증후군 증상 중의 하나가 죄책감이에요. 우리나라 조직 문화는 정으로 끈끈하게 메어 있잖아요. 외국 기업과 다르게 우리나라 기업은 형님 동생 하면서 직원들끼리 끈끈한 관계를 맺었는데,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내가 존경하는 형님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서 힘들고 어려운 과정들을 겪고 있다는 것들을 보면서 '그럼 나는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죄송해요, 저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요'라는 얘기를 하면서 생존 증후군으로 너무 힘들어하는 것들을 많이 봤습니다.
황성현|인사 분야 전문가
그런 면에서도 40대는 낀 세대인 거 같아요. 50대 때는 어차피 우리가 정말 완전히 정으로 끈끈해진 사람들이고 20~30대는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세대죠. 40대는 그 중간에서 50대들의 끈끈한 관계를 보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그걸 극복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양가적인 감정인 것 같아요. 미안한데 저 사람이 아니었으면 나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참 복잡한 감정인 거죠.
서구의 외국계 회사들은 아무래도 산업화가 일찍 돼서 프로세스가 정형화돼 있는데, 나가는 사람한테 만약에 1년 치 보너스를 준다고 하게 되면 남아있는 사람을 위한 보너스가 별도로 책정돼 있습니다. 물론 미안하긴 하지만 이 사람들이 남아서 계속 죄책감을 느끼고 심리적으로 힘들면 그 피해는 회사한테도 오는 거거든요.
황준철|응용심리학자40대를 향한 구조조정이 불러올 위기
생산성에 영향을 주죠. 40대 직장인 대부분 일은 일대로 해야 하고 관리는 관리대로 해야 하는, 일이 되게 많은 시기일 텐데 일은 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안과 두려움이 생기다 보면 또 일은 또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요.
황준철|응용심리학자
가장 임팩트가 클 수 있는 게 가족, 가정 그리고 재정적인 이슈들이 힘들고요. 어려운 시기인데 가장 재정적으로 많이 돈이 나가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30대나 50대보다는 40대가 임팩트가 가장 큰 시기일 텐데, 위험한 건 가장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중에 한 부분을 회사에서 도려내야 되는 상황들이 된다면 이거는 정말 회사에서도 문제가 되고요. 개인에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정말 깊게 할 수밖에 없네요.
IMF 때 경험했잖아요. IMF 때 대한민국이 OECD 자살률 1위였고요. 20년이 넘게 지금 대한민국이 OECD 자살률 1위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나 많은 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요. 사업을 하는 사람들, 직장에서 퇴사하는 사람들 중에 자살을 하신 분들이 왜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은 외로웠던 거죠. 그리고 억울했던 거고요.
황성현|인사 분야 전문가
IMF가 굉장히 큰 하나의 전환점이 됐던 것 같아요. 그전 1997년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평생 고용이 당연한 생각이었죠. 한 번 그 회사 들어가면 30년, 35년 그냥 뼈를 묻는다, 이런 생각이었는데 IMF를 겪으면서 그 패러다임이 다 무너진 거죠. 물론 아직까지 완벽하게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회사가 나를 보호해 주기는 어렵다 이런 생각들이 자리 잡게 된 것 같습니다.
쌍용차 구조조정 같은 사례에서 많은 개인과 가정들이 임팩트를 받았고 굉장히 극단적인 대치 상황까지도 가는 상황을 우리는 겪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트라우마가 분명히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고요. 직장에 대한 기대가 있었어요. 우리 직장이 우리를 보호해 주고 우리 아들 대학 보내는 비용까지 다 책임져줬던 그런 존재였는데 어느 순간에 이제 나 몰라라 하는 존재가 돼버렸던 거죠.
황성현|인사 분야 전문가
기업이 사람을 30% 줄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30%를 사람을 줄였을 때 비용이 절감되고 팻(fat)이, 지방이 좀 더 줄어들어서 좀 더 가벼운 몸체가 돼서 이 이후에 상황이 호전돼서 좋아지는 게 목적이지 사람들을 집에 보내는 게 목적이 아니거든요. 남은 사람들이 또는 사회적으로 건강해지는 게 목적인데 이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면 안 되는 거죠. 40대라 그러면 더 힘들어지는 거죠. 저도 40대를 겪어봤지만, 40대의 특징을 보면, 기업에서는 허리 같은 입장이 되는 거고, 집에서는 가장인데, 여러 가지 심리적 압박이 굉장히 큰 상황에서 회사가 어려워지고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예고된다면 그 압박은 엄청 날 것 같습니다.
현 기업 입장에서는 회사의 재무적인 입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직원 수가 가장 많은 40대를 가장 쉬운 타깃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거기서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그래서 남아 있어야 될 사람이 없어지게 되거나 또는 과도하게 이 팻을 걷어내면서 이제 근육까지 좀 심하게 건드리게 되면 결국은 우리가 3년 내지 5년 후에 성장할 때 동력을 뺏어가게 되는 아마 이런 위기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잣대를 놓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