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이른바 '서울의 봄' 전후 시기의 남북대화 사료를 통일부가 공개했습니다. 이 사료는 정부 공식 기록물로 대화 내용을 그대로 싣는 게 일반적인데, 당시 이걸 기록한 사람은 전두환이라는 이름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 건지, 안정식 북한전문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1981년 1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남북 간 최고책임자 상호 방문을 제의했습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 1981년 1월) : 남북한 당국의 최고책임자가 번갈아 상호 방문할 것을 엄숙히 제의하는 바입니다.]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제안을 거부하면서 광주에서의 학살 행위 등을 거론했는데 전 씨를 살인의 괴수, 민족의 백정 등으로 맹비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남북대화 사료집에는 북한의 성명이 그대로 실리면서도 '전두환' 이름 대신 '전OO'이라는 표기가 등장했습니다.
남북대화 사료집은 남북대화의 역사를 기록하는 정부 공식기록물로 원문 그대로 싣는 게 일반적인데 전 씨에 대한 욕설을 이름과 같이 쓸 경우 혹시라도 생길 피해를 우려해 이름을 생략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과 신군부 위세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북한은 12·12 쿠데타 전후 대화를 제의하는 등 평화공세를 펼쳤지만,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을 거쳐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자 강경 태도로 돌아섰습니다.
이런 내용이 담긴 남북대화사료집을 통일부가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구병삼/통일부 대변인 : 이번 공개를 통해 우리 사회 격변의 시기였던 1979년부터 1981년까지의 남북 간 접촉-대화의 실상, 우리 정부의 회담 제의 노력 등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개된 남북회담문서 원문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와 국회도서관 등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영상취재 : 박영일·최대웅, 영상편집 : 김병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