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프리미엄

[스프] 대세가 된 '넛지', 그러나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뉴욕타임스 칼럼]


오프라인 - SBS 뉴스

*레이프 웨더비는 뉴욕대학교(NYU) 디지털이론 연구소장이다.

현대인은 아침에 일어나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기도 전에, 또 집을 나서 한 블록을 채 걷기도 전에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시스템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라거나 이 물건을 사라거나 이렇게 하면 살을 뺄 수 있다거나 치매를 예방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등 우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려는 시도는 수없이 많다. 손목에 찬 워치는 끊임없이 ‘쉬어가기 알림’을 보내온다. 패스트푸드점 메뉴판을 보면 모든 메뉴 옆에 칼로리가 표시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 바꾸려는 과학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다.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과 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는 이렇게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에 ‘넛지(nudges)’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사람이 만들어 낸 ‘넛지’ 이론에 따라 

미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에는 수백 개의 ‘넛지 부서’가 생겨났다. 정책과 절차에 ‘넛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장기 기증

에 ‘옵트아웃(opt-out)’을 적용해 따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사람은 모두 장기를 기증하게 유도하는 제도나 자가용 운전자가 카풀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돈을 얼마나 아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발송하는 

정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러한 ‘넛지’의 효과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에 나온 ‘넛지’ 개입에 대한 대규모 

연구 결과

를 보면, 긍정적인 결과가 더 많이 발표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넛지’가 사람들의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변화시킨다는 주장의 근거는 다소 부족했다. ‘넛지’를 뒷받침하는 과학은 인간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비합리적인” 존재이며, 정책과 시스템은 그런 비합리성의 영향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 정도다.

‘넛지’ 이론은 공공 정책과 알고리듬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응용사회과학 분야인 행동경제학에서 비롯됐다. 행동경제학은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네만과 아모스 츠버스키의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두 사람은 1970년대에 유명한 실험을 통해 인간이 통계를 추론할 때 체계적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주식 시장 예측처럼 다양한 예측을 한다. 이때 적잖은 예측이 확실한 근거를 따지는 대신 우연히 얻게 된 정보나 최근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과 같은 어림짐작(heuristics)을 기반으로 한 예측이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 심리학의 한 분야로, 사람들이 어떤 정보에 노출되는지, 어떤 말을 듣는지, 삶과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지에 따라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늘거나 줄어드는 현상에 대한 연구다. 근본적인 전제는 우리의 상식적인 직관이 비합리적일 때가 많지만, 데이터의 도움으로 비합리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가치 있는 목표처럼 보인다. 개중에는 어린이를 학교 무상 급식 프로그램에 

자동으로 등록

시키는 시스템이나 주택 수요자를 위한 

대출 정보 간소화

 등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는 행동 개입도 있다. (물론 이런 개입을 ‘넛지’로 볼 수 있는가를 두고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상식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꼭 심리학 연구에 의존해야 할까? 더군다나 이런 연구의 과학적 근거가 그다지 견고하지 않은데도?

행동경제학은 현재 이른바 

‘재현 위기’

에 처해 있다. 이는 상당수의 사회과학 실험 결과가 다음 실험에서 재현되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넛지’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생각하거나 보는 것에 반응하여 행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시험하는 ‘점화(priming)’ 연구의 일환이다. 이 분야의 기초가 되는 실험 가운데 하나로 대학생들이 실험실에서 ‘빙고’나 ‘플로리다’처럼 노인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집중적으로 접한 후에는 걸어 나오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사실을 밝혀낸 

실험

이 있다. 그러나 이후 비슷한 실험에서는 그 결과가 

재현되지 않았고

, 이 분야에 대한 신뢰가 전반적으로 약화됐다. 우리가 노령과 느린 걸음을 연결 짓는 것은 당연하고, 노인에 대해 생각하면 때로 행동이 느려지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또한, 과학자로서 어떠한 훈련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실험 내용만을 듣고도 어떤 실험이 재현 불가능한지를 

잘 맞힌다

는 

사실

도 드러났다. 일각에서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실은 나쁜 데이터로 포장된 상식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오프라인 - SBS 뉴스
댓글
댓글 표시하기
스브스프리미엄
기사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