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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고통과 삶을 이렇게 표현하다니…'마리나 아브라모비치'식 예술

[커튼콜+] (글 : 황정원 작가)


1974년, 23세의 젊은 여성 아티스트가 대담한 기획을 구상했다. 갤러리 방문객들에게 준비된 물건 중 하나를 사용해 자신에게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허용한 것이다. 테이블 위에는 기쁨과 고통을 상징하는 물체들, 즉 장미 한 송이, 사과 한 알부터 칼과 망치, 톱, 심지어 권총까지 있었다. 그렇게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리듬 0〉에서 자신의 몸을 매개로 관람객의 감정을 전면에 드러내고자 했다. '행위예술'이란 장르가 아직 보편적이지 않던 시대였다.

마네킹처럼 미동도 않는 아브라모비치 주위를 곧 관람객들이 둘러쌌고, 많은 카메라들이 현장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여섯 시간 동안 진행된 이 퍼포먼스에서 관람객들은 점차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브라모비치의 옷을 찢어 상체를 드러내거나 칼로 상처를 내고, 급기야는 권총에 실탄을 장정해 그녀의 목에 겨눈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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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 David Parry

이로부터 50년이 지난 2023년, 런던 왕립 예술원(Royal Academy of Arts)에서 아브라모비치의 작품 활동을 집대성한 회고전이 열렸다. 왕립 예술원의 255년 역사상 처음으로 메인 갤러리에서 여성 아티스트를 선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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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0〉에서 드러나다시피 아브라모비치는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예술 활동의 주요 요소로 삼아왔다.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 감상처럼 관객이 멀리서 예술을 관조하기보다 직접 경험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2010년 뉴욕 현대 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s, MoMa)에서 열린 작품, 〈예술가가 여기 있다. (The Artist is Present)〉는 그녀의 이런 신념은 명료히 드러냈다.

콘셉트는 지극히 단순했다. 아브라모비치는 관객과 일대일로 마주 앉아 관객이 원하는 시간만큼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초반에는 미술관의 큐레이터조차 의구심을 표했지만, 완벽한 침묵 속에서 이뤄지는 이 기묘한 체험을 위해 사람들은 노숙까지 감행해 가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런던 회고전에서는 마주한 두 벽에 당시 녹화된 아브라모비치의 얼굴과 그를 응시하는 관객들의 얼굴을 영사했다. 비웃음을 띈 관객의 얼굴이 점차 진지하게 변해가는 모습이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관객의 얼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당시 경험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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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ina Abramović Photo: Marco Anelli

〈예술가가 여기 있다〉는 꼬박 석 달 동안 계속됐다. 아브라모비치는 매일 8시간씩, 총 716시간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부동자세로 앉아 1,545명의 관객과 시선을 교환했다. 이렇든 그의 작품세계는 종종 '극한'이란 단어로 기술된다. 그는 늘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여왔고, 그런 그를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었고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리듬 10〉에서 그녀는 칼을 잡아 바닥에 놓인 자신의 왼손 손가락 사이를 가능한 빠르게 찍어나갔다. 실수로 손을 찌를 때마다 칼을 바꾸어 다시 시작했으며, 준비된 칼 스무 개를 모두 사용할 때까지 작업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녹음했다. 이후 녹음을 재생하여 앞서 저지른 과거의 실수를 의도적으로 반복,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칼로 다시 상처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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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 David Parry

아티스트를 시작한 지 10년째 되던 해에는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는 창녀를 찾아 4시간 동안 서로의 역할을 바꾸었다. 〈역할 바꿈〉이란 이 퍼포먼스에서 창녀는 아브라모비치 대신 전시회 오프닝에 섰고, 아브라모비치는 홍등가에서 손님을 기다렸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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