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의대 입학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가운데, 그 효과를 놓고 의료계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전체 의사 수를 늘리면 자연스레 필수의료 분야와 지방에서 근무하는 의사도 늘어날 것이라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낙수효과는 기대하기 힘들고, 성형외과, 피부과 등으로 '쏠림 현상'만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의료 인프라 붕괴 위기를 겪는 지방의 국립대병원과 여러 전문가들은 낙수효과는 분명히 존재하며, 의대 정원은 당연히 늘려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의협을 중심으로 한 의사단체는 의대 정원을 대폭 확대하는 것으로는 필수의료 분야로의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의사 수를 늘려봤자 비급여 진료로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피부과, 성형외과 등으로 쏠림 현상만 더 심해질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상운 의협 부회장은 "의사 증원으로 반드시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가 늘고, 지역 의사가 양성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오히려 미용성형이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 그때는 정책적 해결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전 의협 회장이기도 한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는 더 과격한 주장을 펼칩니다.
그는 한 언론 칼럼에서 "칼자루는 저들이 아니라 우리가 쥐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자"며 "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 전공을 하지 말라는 정부의 강력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고, 필수의료를 포기하고 비급여 시장에 뛰어들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의사단체는 의대 정원 확대보다는 '수가 인상' 등으로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부회장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과감한 수가 개선, 환자를 소신 있게 치료할 수 있는 의료환경 조성, 수련비용의 정부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의사 출신인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18일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낙수효과는) 미미하다고 봐야 한다"며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원가 보존 즉 수가 인상을 주장했습니다.
필수의료 현장의 의사들도 수가 인상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서울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한 전문의는 "쌍꺼풀 수술보다도 분만 수가가 낮은 게 현실인데 의사를 늘려봤자 여기로 오겠느냐"며 수가의 현실화를 촉구했습니다.
의사단체의 주장과 달리 의대 정원 확대의 낙수효과를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의사들의 수입이 다른 직업에 비해 압도적이어서 의대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의사의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수입이 줄어들고 매력도 떨어지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국장도 "의사가 충분하게 추가되면 내부 경쟁과 수요·공급이라는 시장 논리에 따라 적절히 배분될 수 있다"며 "낙수 효과는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성형외과, 피부과 등으로 무한정 의사들이 몰릴 수는 없는 노릇이며, 이들 분야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수익성이 나빠지면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들이 갈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더구나 성형외과, 피부과 등은 이른바 '경기 사이클을 많이 타는' 업종이어서 불황과 의사 공급 확대가 겹치면 수익성이 의외로 나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지방 국립대병원은 의대 정원 확대에 더 적극적입니다.
당장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남우동 강원대병원장은 17일 국회 교육위 국감에서 "경험과 소신에 비춰 의료인력 확충은 100% 필요하며, 지금 해도 늦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지금 확대해도 현장에 배출되는 시기는 앞으로 10년 후이며, 현장에서는 10년 후까지 어떻게 버티느냐를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양동헌 경북대병원장도 "지역 필수의료와 중점 의료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의 애타는 호소는 지역 의료 인프라가 처한 열악한 현실이 그 배경입니다.
지방 의료기관은 3억 원, 4억 원의 고액 연봉을 주고도 필수의료 분야 의사를 구하기 힘들어져, 이제 지방 의료 인프라는 붕괴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주진형 강원대의대 교수는 "지역의료 붕괴의 원인은 무엇보다 의사가 부족한 데 있다"며 "일단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