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타는 게 낙"…NYT, '무료승차' 한국 노인의 하루 조명


오프라인 대표 이미지 - SBS 뉴스

한국의 노인들이 65세 이상에게 주는 지하철 무료 승차 혜택을 이용한 '열차 나들이'를 늘그막의 낙으로 삼고 있다고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조명했습니다.

NYT는 23일(현지 시간) 자 지면에 실은 "나이 든 지하철 탑승자들이 여행에서 기쁨을 찾는다"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다양한 '지하철 여행자'들의 일과와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8월의 어느 날 무더운 날, 한복에 운동화를 곱게 차려입고 집을 나선 이 모(85) 씨는 집 근처의 4호선 수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1차례 환승해 1시간여 만에 1호선 종점인 소요산역에 도달했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다 은퇴한 이 씨는 역 근처를 거닐다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남쪽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전날엔 지하철에서 내리지 않고 4호선과 수인분당선, 1호선을 갈아탔다는 그는 시간을 보내는 데에 공짜 지하철 타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며 "집에 있으면 지루하고 누워만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NYT는 많은 노인이 이 씨처럼 지하철을 타고 종착역까지 가거나 혹은 특별한 목적지 없이 다니다 돌아오는 데에 하루를 보낸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무더운 여름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고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에 좋은 데다 노선도 많고 긴 수도권 지하철은 소일하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하철 나들이에 나서는 노인들은 나이도 이전 직업도 다양합니다.

한시 이론서 한 권을 가지고 탄 전 모(85) 씨는 수학 교수로 일하다 은퇴했습니다.

그는 지하철을 타고 가며 책을 읽다가 졸기도 한다면서 "(지하철 여행은) 정말 멋지다. 서울 구석구석 못 가는 곳이 없다"고 예찬론을 폈습니다.

공사 감독관으로 일했다는 박 모(73) 씨는 지하철이 "내겐 오아시스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오프라인 - SBS 뉴스

가톨릭 신부 김 모(80) 씨는 "집이 너무 더운데 이런 날 지하철은 휴식처이자 여름 휴가지"라고 말했습니다.

NYT는 노인인구 증가로 서울에서 지하철 무료 승차 대상이 연간 승차 인원의 15%를 차지하게 되면서 이들에게 '지공거사'라는 별명도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지하철 공짜'에 놀고먹는 사람을 뜻하는 '거사'를 붙인 말입니다.

이 '지공거사'들은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한 나름의 규칙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대는 피하기,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자리에 앉은 청년들 앞에 서 있지 않기 등입니다.

신문은 지하철 적자로 노인 무료 승차를 폐지하거나 기준 연령을 올리는 방안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지만, 노인 빈곤율이 일본이나 미국의 2배에 달하는 한국에서 1회 탑승 요금 1천500원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은 어르신들에게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지난 2월 서울시 관련 토론회에서 노인들이 지하철 무료 승차를 이용해 활동을 계속하게 되면 국가적으로 의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며 "왜 이 행복을 빼앗으려 하는가"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배 모(91) 씨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는 70년을 해로한 아내가 지난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깊은 우울감에 한동안 며칠씩 씻지도, 먹지도 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지하철 나들이를 다니게 되면서 옷을 찾아 입고, 밥을 챙겨 먹게 됐으며 잠도 더 잘 자게 됐다고 합니다.

배 씨는 날마다 어디로 지하철을 타고 갈까 찾아보려 수도권 지하철 노선도를 5부나 챙겨뒀다면서 "만약 요금을 내야 한다면 이렇게 다니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댓글
댓글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