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은행 주담대 열흘간 1.2조↑…가계대출 고삐 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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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들어 열흘 만에 주택담보대출이 1조 원 이상 또 불어나는 등 한국 경제·금융 위기의 잠재 뇌관인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정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최근 인기를 끄는 50년 만기 초장기 주택담보대출에 일제히 연령 제한을 두는 등의 방법으로 다시 가계대출의 고삐를 조일 예정입니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인터넷은행이 '중·신용자 대상 중금리 대출'이라는 인가 취지에 맞지 않게 공격적으로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영업에 몰두하는 데 문제가 없는지도 들여다볼 방침입니다.

하지만, 이런 '대출 규제 부활' 움직임에 대해 은행권에서는 "부동산 경착륙을 막기 위해 불과 몇개 월 전 규제를 대거 풀어 대출 증가를 야기한 정부가 이제 은행 상품구조와 관리 탓을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10일 기준으로 679조 8천893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7월 말과 비교해 이달 들어 열흘 만에 6천685억 원 또 늘었습니다.

특히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하는 주택담보대출은 같은 기간 1조 2천299억 원이나 뛰었습니다.

이런 추세로 미뤄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4월 이후 8월까지 5개월 연속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지난달 은행권과 금융권 가계대출은 각 6조 원, 5조 4천억 원 불었습니다.

기대와 달리 가계대출이 진정되지 않자 당국과 금융권이 결국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은행연합회는 그제 소속 은행들에 일제히 공통 양식을 보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판매 실적과 조건 등을 채워 회신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앞서 10일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한국은행·금융감독원·주택금융공사·은행연합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가계부채현황 점검회의'에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대출 증가의 한 요인으로 거론된 데 따른 후속 조치입니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은 원리금을 50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는 대출 상품으로, 지난 1월 수협은행이 선보인 뒤 5대 은행도 지난달 이후 줄줄이 내놓고 있습니다.

만기가 길어질수록 대출자가 갚아야 할 전체 원리금은 늘어나지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DSR이 1년 단위로 소득 대비 원리금 감당 능력을 보기 때문에 당장 현재 대출자 입장에서는 전체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DSR 우회 수단'으로 지목하는 이유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50년이라는 기간 동안 갚아야겠다는 생각보다 대부분 더 많은 대출금을 받기 위해 DSR 적용에 유리한 50년 만기로 신규대출을 받고 있다"며 "50년 만기로 대출받은 60대 후반 고객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초장기 만기 상품이 주택담보대출 수요를 자극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연령 제한이 도입될 전망입니다.

가계부채현황 점검회의 참석자는 "50년 만기 상품에 나이 제한을 두는 쪽으로 참석자들의 의견이 거의 모아졌다"고 전했습니다.

대출 상한 연령은 '만 34세 이하'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5대 은행 중에서는 신한은행이 유일하게 현재 만기가 40년이 넘는 주택담보대출에 '만 34세 이하' 연령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만 35세 이상 대출자는 초장기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신한은행은 주택금융공사 정책 모기지(주택담보) 상품의 기준을 차용한 것으로, 예를 들어 주택금융공사는 현재 40년 만기 특례보금자리론에 '만 39세 이하 또는 신혼가구', 50년 만기에 '만 34세 이하 또는 신혼가구'라는 조건을 걸고 있습니다.

나머지 주요 은행들은 초장기 주택담보대출에 제한이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특히 카카오뱅크의 경우 45년 만기에 '만 39세 이하' 나이 조건을 뒀다가, 최근 최장 만기를 50년으로 늘리면서 나이 제한을 오히려 없앤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5대 은행의 한 임원은 "곧 은행연합회를 통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연령 등 은행권 공통 제한 기준이 내려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은행권 자율규제 방식이지만 각 은행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인터넷은행의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2분기 말(6월 말) 현재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17조 3천220억 원으로, 1분기 말(13조 8천690억 원)과 비교해 불과 3개월 사이 3조 4천530억 원, 약 25% 급증했습니다.

2분기 석 달 동안 새로 취급한 주택담보대출만 3조 5천290억 원에 이릅니다.

케이뱅크의 주택담보대출도 1분기 말 2조 8천300억 원에서 2분기 말 3조 7천억 원으로 30.1% 뛰었습니다.

정부와 금융권에서는 이처럼 주택담보대출을 빠르게 늘리는 인터넷은행들의 영업 행태가 인가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의 태동 당시 취지는 자신들의 데이터베이스(DB)가 풍부하니 신용 심사를 잘해서 중·저신용자에 대한 중금리 대출을 늘리고, 서류심사 통해 담보를 잡는 등의 구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금리가 높아져 신용대출이 많이 상환되니 영업이 어려워졌는지,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기준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잔액 기준)은 ▲ 카카오뱅크 25.7% ▲ 케이뱅크 23.9% ▲ 토스뱅크 42.06%로, 연말 목표치(30%·32%·44%)에 모두 미달한 상태입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대출자가 만기를 늘리는 용도로 대환하는 것인 만큼, 대환대출이라고 가계부채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또, "특히 인터넷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비대면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소득 관련 정보가 은행과 소통하며 잘 심사되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며 "가계대출이 허술하게 이뤄지면 연체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는 만큼, 차주 신용위험 관리 차원에서도 인터넷은행의 공격적 주택담보대출이 적절한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정부가 거론하는 요인과 대책이 과연 가계대출 증가 문제의 핵심과 관련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하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주택담보대출 LTV(담보인정비율) 상한 완화, 부동산규제지역 해제, 민간택지 내 분양가상한제 지정 해제 등 정부가 부동산 경기 경착륙을 막기 위해 각종 규제를 풀어줬기 때문"이라며 "특례보금자리론도 같은 정부 정책 취지에 따라 도입돼 지금까지 31조 원 이상 신청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핵심은 따로 있는데, 50년 만기 상품이나 인터넷은행 주택담보대출 등을 마치 근본 원인인 것처럼 지적하고 대책의 초점도 거기에 맞춰지는 것 같아 의아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40년 이상 만기의 주택담보대출 출시도 사실상 정부가 금리인상기 대출자의 원리금 부담을 덜어주라고 독려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5월 말 가동한 '온라인 대환대출 플랫폼'도 가계대출 증가세에 일조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직접 겪은 일인데, 대환대출 플랫폼을 통해 다른 은행에서 더 낮은 금리로 대출받는 과정에서 대환하는 대출만큼만 대출이 가능한 게 아니라 낮은 금리를 적용해 추가 대출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대출자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로 시작한 대환대출 플랫폼에도 사실 가계대출 수요를 부추기는 상충 효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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