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의원님, 코인 손실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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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사회적 맥락을 통해서만 투기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투기의 역사는 단순한 경제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사회사의 한 부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투기가 벌어지는 동안 정치인들의 행동과 태도는 중요한 관심사항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법과 규정들을 만들어 집행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금융투기의 역사>, 애드워드 챈슬러, 강남규 역

지난주, 국회 윤리특위 윤리자문위원회는 가상자산 투자를 자진신고한 의원 11명을 심사해 과반수가 이해충돌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윤리자문위는 가상자산 투자 액수로는 1,000만 원 이상, 거래 횟수로는 100회가 넘어가는 의원들이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고 보고, 이번 주에 이들 명단을 국회의장실과 소속 당에 통보하기로 했습니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 논란이 촉발한 나비효과가 시작되는 모양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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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의원

 

쏟아진 입장문…이구동성 "돈 잃었다" 강조

이 소식과 함께 고액을 가상자산에 투자한 의원들 이름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현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이자 4선인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 재산 축소 신고와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제명됐다 최근 복당한 민주당 김홍걸 의원, 여당 원내 지도부의 핵심인 국민의힘 이양수 원내수석부대표가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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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 민주당 김홍걸 의원, 국민의힘 이양수 원내수석부대표

현재까지 투입 현금 기준으로 가상자산에 가장 많이 투자한 걸로 파악된 김홍걸 의원이 어제 오전, 먼저 장문의 입장문을 냈습니다. 선친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상속받으면서 발생한 상속세 17억 원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2021년 3월~5월 사이, 올해 2월 이후 모두 2억 6천만 원을 투자했지만 큰 손실을 봤다고 밝혔습니다. 김 의원은 이해충돌 등 법률이나 윤리규범 위반은 일절 없었다며, "투자는 서투르지만 신고는 성실히 했다"는 말로 입장문을 맺었습니다.

권영세 장관과 이양수 의원은 별도 입장문을 내지는 않았지만, SBS를 비롯한 언론에 '의혹이 부풀려져 있고, 부적절한 것이 없다'는 취지로 억울하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권 장관은 "실제 투자 금액은 2020년경 시작한 3천~4천만 원 정도이고, 투자 금액이 10억 원에 달한다는 보도는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의 금액을 누적해 터무니없이 부풀려 보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모두 합쳐 2천만 원 정도 손해를 봤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이양수 의원 또한 언론에 "모두 3천만 원 정도를 투자했을 뿐이며, 지금은 모두 처분했다"고 밝혔습니다.

코인 투자로 한때 투자액이 불어났던 것일 뿐, 많은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고 있는 김남국 의원처럼, 해명을 내놓고 있는 의원들도 대부분 '투자 손실을 봤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재미를 본 것이 없으니, 문제 소지가 덜하거나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 질서 형성기'의 가상자산…법안 발의까지 한 의원들

문제는 이들 의원들이 투자했던 '가상자산'은 주식이나 채권과는 달리 아직 시장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의 자산이라는 것입니다. 이 자산들에 대한 과세, 거래 규칙, 증권성(證券性) 등에 대해 입법적ㆍ사법적으로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자본시장과 법률시장에서는 가상자산 질서 형성을 둘러싸고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이 진행하고 있는 '루나ㆍ테라' 수사입니다. 복잡한 형태로 설계된 채 시장에 나온 이들 코인을 '증권'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수사당국과 사법당국의 치열한 법리 다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결론 나느냐에 따라서 권도형ㆍ신현성 등 피의자들은 물론 향후 가상자산업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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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형·신현성 등 피의자들

가상자산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관 영업 경쟁도 비슷한 맥락의 현상입니다. 현재 국회 정무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상자산 관련 입법 논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가상자산 업계가 큰돈을 주고 국회 인력이나 법조계 인력들을 영입하고 있는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의원이 가상자산 시장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영향력은 실로 엄청납니다. 법안 하나하나의 세부 규정에 따라 가상자산의 성격 정의와 과세 규율이 정해지고, 이는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의원도 주식 투자하는데 코인은 왜 안 되냐'는 주장도 나오지만, 상품의 성격 정의와 투자 질서가 형성된 증권들과 가상자산은 경우가 다릅니다. 특히 투자 주체가 '시장 질서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의원일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이르는 고액을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 의원들은 가상자산 투자 활성화나 투자자 보호와 관련된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홍걸 의원은 올해 초 노웅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법안은

가상자산소득을 금융투자소득으로 분류해, 다른 금융상품 소득과 합쳐 5천만 원까지 소득공제

를 하는 게 골자입니다. 요약하면 '가상자산 소득공제 확대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 의원은 이에 더해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도 대표 발의 했습니다.

가상자산 사업자가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센터를 만들도록 의무화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습니다.

권영세 장관과 이양수 의원은 모두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유예하는 법안을 공동발의 했습니다. 권 장관은 윤창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이름을 올렸는데, 법안의 주요 내용은 "

중ㆍ장기적으로 가상자산 과세를 시행하되 과세 시점을 2023년 1월 1일부터로 일단 1년 유예하고, 향후 1년 동안 시장 정비 여부를 검토하여 추가연장 가능성도 열어놓는다

"는 것입니다. 이 의원도 김성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법안은 "

국내외 경제상황과 투자자 보호제도 마련의 선행 필요성 등을 고려하여 금융투자소득세 및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 시행 시기를 2년 유예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심' 또는 '손실 여부'가 아니다

이들 의원들은 비슷한 취지의 해명을 내놨습니다. 김홍걸 의원 측은 SBS에 "가상자산 소득 공제 확대 법안은 공동 발의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두 법안 모두 의원의 가상자산 투자와 무관하게 법안의 좋은 취지에 공감해 발의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권 장관과 이 의원도 언론에 '가상자산을 투자하는 동안 가상자산 관련 상임위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해충돌 등 문제 될 소지가 없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습니다. 요컨대 정당한 '투자'였을 뿐, 국회의원으로서 법적ㆍ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투기'는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투자와 투기 사이 기준점을 찾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기 도박판을 방불케 했던 1920년대 월스트리트에서 떼돈을 벌어보기도 하고, 쫄딱 망해보기도 한 뒤 저술가로 전향한 프레드 쉐드는 그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는 것은 사랑에 들뜬 10대 소년에게 사랑과 욕망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시장 질서 형성기에 있는 '가상자산'에 대해서 '질서 형성자'인 국회의원이 투자하는 상황에 주목해 본다면, 투자와 투기를 가르는 '부정성'의 핵심을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바로

공직자인 국회의원이 '입법'이라는 직무를 수행할 때,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가 '관련'되어 공정하고 청렴한 직무수행이 저해될 '우려'가 있는 상황인지

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곧 우리나라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2조에 명시된 '이해충돌'의 정의와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충돌할 만한 크기의 '사적 이해'가 존재했는지 ▲가상 자산 시장 질서 형성과 관련해 이해관계에 영향을 끼칠 만한 '직무상 행위'를 했는지

두 가지가 이번 사안에 있어서 중요 판단 요소가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역사적 현장이자 가문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다'는 '내심'이나 '실제로는 2천만 원 이상을 잃었다'는 '손실 여부'는 의원 개인들에게는 몰라도 공적으로는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 판단 기준을 중심으로 보면 해명을 내놓은 다른 의원들과의 비교도 가능해집니다. 코인 거래를 자진신고한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SBS에 "2021년 '코인'이라는 가상자산이 어떻게 거래되고 어떤 속성이 있는지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알고자 비트코인 1백만 원을 매입했다"며 "한 차례 매입한 뒤 시세만 지켜 봤을 뿐 거래는 한 번도 하지 않았고, 현재 평가액은 40~50만 원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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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역시 자진 신고한 민주당 김상희 의원도 입장문을 내고 "2021년 과방위에 배정돼 메타버스, 코딩 등 생소한 용어나 세계에 대한 체험을 시도하던 중 일환으로 가상자산(코인)도 직접 체험하고자 모두 30만 6,144원을 이더리움에 투자했다"고 밝혔습니다. 체험을 다 한 뒤에는 "27만 3,383원을 매도하고 67원이 남은 상태"라고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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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상희 의원

민주당 전용기 의원도 "청년들의 가상자산 투자와 피해라는 사회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2022년 100만 원을 잡코인 5개에 20만 원씩 나눠 투자했다"며 "첫 매수와 매도 사이에 일체의 거래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재산 신고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자산에 대해 굳이 투자를 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지적은 제기될 수 있겠지만,

▲존재하는 이해관계의 크기와 ▲이해관계와 관련된 직무상 행위 양태에 있어서 분명 차이가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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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용기 의원

비슷한 방식으로 김남국 의원과 권영세ㆍ김홍걸ㆍ이양수 의원 사이에도 추후 조사를 거쳐 구분선이 그어질 수 있어 보입니다. 김 의원과 그에게 엄호사격을 해주고 있는 일부 의원들은 윤리특위 조사를 앞두고 "형평성"을 부르짖고 있습니다만, 김 의원은

▲고액 코인투자를 하며 (이해의 크기) ▲가상자산 과세 유예법안을 발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직무상 행위 양태) 한 것에서 더 나아가, 상임위 시간 중 코인거래를 하고 재산신고를 회피한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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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윤리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 타임즈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였던 애드워드 챈슬러는 튤립투기부터 버블경제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금융 투기의 역사를 종합한 책 <금융투기의 역사>에서 '시장 질서 형성자'인 정치인들이 신종 금융상품의 투기 국면에서 벌였던 부정한 행위들을 소개합니다. 시대와 등장인물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변동성이 강한 투기 상품에 자신의 개인 돈을 밀어 넣은 뒤, 입법 또는 권력 행사로 투기 시장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언론에 의해 폭로됐을 때 '순수한 의도였다'라고 변명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후세에 이를 전하면서 애드워드 챈슬러는 '금융상품의 투기 양상이 벌어질 땐, 그와 함께 시장 질서 형성자인 정치인들의 행동과 태도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교훈을 남깁니다.

반복된 역사의 경험을 참고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진행될 논의와 조사에서는 공직자의 가상자산 투자를 평가할 판단 기준이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자진신고조차 하지 않은 의원들이 있을 수 있으니 국가 기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정치권이 먼저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논란은 끝없이 반복될 것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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