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프리미엄, 스프는 '아웃로오션 프로젝트'와 함께 준비한 [Dispatches from Outlaw Ocean]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아웃로오션'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에 스프가 준비한 텍스트를 더해 스프 독자들에게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지식뉴스를 전달해 드립니다.
"젠장, 리비아야" 울부짖는 이주민들
2021년 2월 3일 밤, 130여 명을 태운 고무보트가 아프리카 리비아의 한 항구에서 조용히 출발했습니다. 이들은 리비아를 떠나 유럽으로 이주하길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보트가 국제 수역에 진입한 뒤 이들은 이주민구조센터 '알람폰(Alarm Phone)'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고, 멀지 않은 곳에 상선 한 척이 있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국적의 상선을 발견한 이주민들이 구조를 요청했지만 선장은 구명정이 없다며 그대로 떠나버렸습니다.
수 시간 뒤, 새로운 배 한 척이 나타났습니다. 고무보트로 점차 다가오는 배, 그 배의 깃발을 확인한 이주민들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젠장, 리비아야!" 울기 시작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 배는 '빅토리아 P350' 호, 리비아의 해안경비대 소속이었습니다.
해안경비대는 이주민 전원을 빅토리아 호로 옮겨 타게 했습니다. 총으로 위협하고 채찍질하기도 했습니다. 리비아를 벗어나 유럽에서 제2의 삶을 꿈꾸던 이주민들은 다시 리비아로 송환됐고, '알 마바니(Al Mabani)'에 수감되는 신세가 됐습니다.
악명 높은 리비아의 난민수용소들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알 마바니는 비인륜적인 가혹행위와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 높은 난민 수용소입니다. 8개 방에 1천5백 명이 수감돼 있는데, 화장실은 100명 당 1개밖에 제공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알 마바니의 간수들은 공공연하게 수용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격리실'이라는 공간에서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수감자들을 매달아 놓고 채찍 등으로 고문하듯 구타합니다. 격리실에 들어가면 화장실도 쓸 수 없어 수감자들은 방구석에서 용변을 봐야 했고 제대로 치우지도 않습니다. 격리실을 방문하는 간수들은 냄새를 피하려 마스크를 착용합니다.
리비아에는 알 마바니 같은 난민 수용소가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매일 같이 탈출에 실패한 이주민들이 잡혀오고 있고, 수용소에서는 이들을 상대로 폭력과 가혹행위뿐만 아니라 종교적 박해, 성폭력까지 자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국제 앰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이 수용소 간수들은 수감된 여성에게 물 한 모금을 주겠다며 성관계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해안경비대 배후에는 EU가 있다난민수용소에 갇힌 이들은 왜 리비아에서 유럽으로 떠나려고 했던 걸까요? 그리고 리비아는 왜 유럽으로 가는 이들을 붙잡아오고 있는 걸까요?
사하라 사막 남쪽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이주민들은 대부분 아프리카 북단에 있는 리비아 연안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라페두사 섬으로 이주하는 경로를 이용합니다. 오랜 내전으로 리비아 국경이 허술해진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전쟁과 박해, 혹은 기후 변화로 인한 생계 곤란 등이 이주를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고 합니다.
EU 회원국들은 국제법상 강제송환 금지원칙을 준수해야 하기에 일단 이주민들이 유럽에 도착하면 박해받을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송환할 수 없습니다. 이주민들은 그러니 고무보트를 타고서라도 유럽으로 가려는 건데 리비아 해안경비대는 이들이 유럽에 도착하기 전에 붙잡고 있습니다. EU 입장에서는 이주민으로 인한 여러 사회 문제가 골치인데 리비아 경비대 덕분에 그 수를 줄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주민 인권을 옹호한다면서도 EU가 리비아의 이주민 단속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증거도 여럿 나왔습니다.
리비아 해안경비대에 체포된 이주민들은 EU가 공급하는 버스에 실려 난민 수용소로 보내집니다. 리비아는 2021년 5월부터 EU 지원을 받아 해안경비대에 최소 390만 달러의 비용을 지출하기도 했습니다. EU의 국경 및 해안경비대인 프론텍스(Frontex)가 먼저 이주민을 포착해 감시한 이후 리비아 해안경비대가 이들을 송환해 간 사례도 20건 기록됐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를 비롯한 여러 NGO들이 이주민 구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리비아 해안경비대는 이런 활동을 끊임없이 방해하며 단체들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뒤 리비아에선 오랜 시간 내전이 지속되고 있고 아프리카 다른 지역에서 수많은 이주민들이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 이주민들에 대한 인신매매, 강제노동 등 각종 인권 문제도 더욱 심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파랑: 유럽에 도착한 보트
- 주황: 리비아 해안경비대(LCG, Libyan Coastguard)의 방해
- 초록: 바다에서 사망/실종
- 노랑: 국제이주기구(IOM) 자발적 송환
- 분홍: 유엔난민기구(UNHCR) 출발
특히 이주민이 찾는 제1관문이 되는 이탈리아는 리비아와 협정을 체결해, 유럽 이주를 원하는 이들의 단속을 리비아에 위임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내무부 장관 마르코 미니티는 2017년에 리비아 트리폴리를 방문하여 해안경비대와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2018년에는 리비아 해안경비대에게 리비아 해역에서 100마일 더 떨어진 곳까지도 관할권을 확장해 주며 이들 활동에 더욱 힘을 실어줬습니다. 더 멀리 떠나간 배까지도 다시 리비아로 잡아올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지중해를 건너던 이주민 일행이 리비아 영해를 벗어나 공해상에 들어섰는데도 리비아로 송환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로 2017년 이탈리아와 리비아의 협정이 체결된 후, 이듬해 유럽에 도착한 이주민의 수는 전년도 대비 80%까지 감소했습니다. 이에 2020년 2월, 이탈리아와 리비아는 양국 간 협약을 3년 더 연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