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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당신의 친구인 동시에 적'이라는 관계가 가장 해로울 수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 By 애덤 그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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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그랜트는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 경영대학원에서 조직심리를 가르치며, 베스트셀러 책 "Think Again"의 저자다. 테드(TED) 팟캐스트 "Re:Thinking"을 진행하고 있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지만, 당시의 상사를 떠올리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하루는 조직 내 공로상 수상자로 나를 추천하더니, 얼마 안 가 동료의 대우 문제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나를 해고하겠다고 협박했다. "한 번만 주제넘게 나서면 잘릴 줄 알아." 나는 그가 직장을 그만두는 날까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종종 인간관계를 긍정적인 것부터 부정적인 것까지, 하나의 스펙트럼 위에 놓고 생각한다. 누구나 사랑하는 가족과 따뜻한 반 친구, 나를 지지해 주는 멘토에게 끌리기 마련이고, 언행이 거친 삼촌이나 놀이터의 불량배, 인간성이 더러운 직장 상사를 피하고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가장 해로운 관계는 온전히 부정적이기만 한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뒤섞인 관계다.

때로는 나를 도와주지만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하는 '친구'를 흔히 '프레너미(친구를 뜻하는 friend와 적을 뜻하는 enemy의 합성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친구 사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봐준다고 나서지만 당신의 육아법을 무시하는 친척들, 함께 이별의 아픔을 나눴지만 결국 내 전 애인과 사귀어 버리는 룸메이트, 업무 성과는 칭찬하면서도 승진은 시켜주지 않는 상사도 그런 관계에 해당한다.

이런 관계가 사람을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심리학자 버트 우치노와 줄리안 홀트-룬스타드는 양가적인 관계가 온전히 부정적이기만 한 관계보다 건강에 더 해로울 수 있다는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보다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과 상호작용한 후 혈압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직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독립 연구진이 슬로베니아 경찰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상사로부터 좋은 말과 나쁜 말을 모두 듣는 경찰관들이 안 좋은 말만 듣는 경찰관들에 비해 부정적인 신체 증상을 더 많이 보였고, 결근할 가능성도 컸다. 노년층의 경우, 양가적인 관계가 많을수록 스트레스 시 심박수가 급등하고, 향후 10개월 동안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으로 혈압이 더 많이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이웃이나 동료와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 부정적이기만 한 상호작용만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나를 깎아내리는 이로부터 응원받으면 나쁜 감정이 상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폭된다. 단순히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 아니라, 심장과 혈압에 영향이 드러나는 것이다.

양가적 상호작용은 단 한 번으로도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이는 상관관계가 아니라 인과관계다. 한 실험에서는 사람들이 친구에게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즉흥 연설을 하고 친구의 피드백을 받았는데, 연구진은 참가자 모르게 친구에게 양비론적, 또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도록 무작위로 지정했다. 그 결과 양비론적 피드백을 받은 사람이 비판적이기만 한 피드백을 받은 사람보다 혈압이 더 높아졌다.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하지만, 네 말도 나쁘진 않아."가 "네가 낸 모든 의견에 난 완전 반대야."보다 더 괴로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양가적인 관계가 우리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근거는 강력하지만, 그 이유는 (양가적인 관계 자체와 마찬가지로) 읽어내기 어렵다.

가장 직관적인 이유는 양가적인 관계의 예측 불가능성일 것이다. 적이 분명하다면 만날 때 방패를 들면 된다. 반면 '프레너미'의 경우에는 지킬 박사가 나타날지 하이드 씨가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양가적 감정은 부교감 신경계에 합선을 일으키고 투쟁 혹은 도피(fight-or-flight) 반응을 활성화한다. 포옹을 바라는 동시에 싸움에 대비하는 것은 사람을 몹시 불안하게 만든다.

또 다른 요인이라면, 양가적인 관계 속의 불쾌한 상호작용이 더 고통스럽다는 점일 것이다. 내가 원래도 늘 싫어하는 사람보다 때로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실망하는 것이 더 속상하기 마련이다. 누군가 나의 등에 칼을 꽂는데, 내 눈앞에서는 친절하게 굴었던 사람이라면 배신감이 더 클 것이다.

끝으로 양면성은 사람을 고민하게 만든다. 모호한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그 말을 한 사람을 신뢰해야 할지 말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프레너미'를 피하고 싶은 마음과 어쩌면 그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 사이에서 갈등하다 보면 복잡한 감정을 좀처럼 떨쳐내기 힘들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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