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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자신에게 스스로 화풀이하고 있는 소녀들

By 파멜라 폴 (뉴욕타임스 칼럼)


오프라인 - SBS 뉴스

*파멜라 폴은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아주 어릴 때 독성 물질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 나이에 비해 성숙했다. 학교에서 지나치게 똑똑했다. 학교가 너무 엄격한 곳이었다. 학생들을 너무 풀어주는 학교였다. 어린 시절 발레를 했다. 호르몬 불균형을 앓았다. 그냥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지나치게 미성숙했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원했다.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섹스에 집착했다. 섹스에 반감이 심했다. 남자가 되고 싶었다. 케이트 모스가 되고 싶었다. 시대정신의 일부였다.

의사, 상담사 등 전문가들이 극심한 신경성 거식증을 앓는 해들리 프리먼을 두고 한 75가지 설명 가운데 일부다.

흥미로운 신작 회고록 <굿걸스: 거식증에 대한 연구와 이야기>의 저자 해들리 프리먼은 1990년대부터 거식증을 앓기 시작했다. 그러나 환자 대다수가 10대 소녀인 거식증의 발병률은 최근 몇 년 사이 더욱 높아진 듯하다. 컬럼비아대학교와 뉴욕주 정신의학연구소의 섭식장애 연구 클리닉 연구 책임자 조애나 스타인글라스는 "코로나19 기간 발표된 여러 데이터에 따르면 입원 환자와 일부 외래 환자 사이에서 섭식장애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프리먼이 태어난 미국뿐만 아니라 프리먼이 진단과 치료를 받았던 영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거식증에 대해서 알게 된 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팬데믹 때문에 거식증이 늘어난 것일까? 소셜미디어와 연관이 있을까? 어린 여성들 사이에서 늘어난 우울증이나 불안감과 관계가 있을까?

내가 10대였을 때 "날씬해지려다 죽는다"는 서사의 중심에는 카펜터스의 보컬 캐런 카펜터가 있었다. 그는 1983년 거식증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거식증의 주범으로 꼽힌 것은 부모(주로 어머니)의 실책, 그리고 모델처럼 마른 체형을 찬양하는 문화였다. 발레나 체조는 거식증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활동으로 여겨졌고, '완벽주의 성향' 역시 위험 신호로 읽혔다.

우리는 여전히 거식증의 원인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최근 수십 년간 관련 지식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예전에는 거식증을 개인이나 가족의 행태, 또는 문화적 영향력이라는 렌즈만을 통해 보았다면, 이제는 조현병이나 우울증 같은 다른 정신 질환처럼 거식증에도 신경학적인 요인이 있다는 사실이 보다 널리 알려지게 됐다.

"지난 20여 년간, 거식증의 신경학적인 이해가 넓어졌습니다. 사람이나 행동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뇌의 메커니즘이 작용한다는 것이죠."

스타인글라스의 설명이다. 일례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거식증 환자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분은 섭식장애가 없는 사람과 달랐다. 신진대사 기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유전적인 요인이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만 유전자와 환경이 각각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프리먼의 저서에 등장하는 킹스 칼리지 런던의 섭식장애 연구소 소속 전문가는 이에 대해 "유전적 토양과 환경적 도화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프리먼의 책 외에도 거식증 경험을 다룬 회고록이 최근 여럿 출간됐다. 베스트셀러가 된 <엄마가 죽어서 기뻐(I'm Glad My Mom Died)>의 저자 제넷 맥커디는 심각한 폭식증에 이어 거식증을 앓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저널리스트인 레이철 아비브는 <나 자신이 낯선 사람들: 불안한 마음과 우리를 만드는 이야기(Strangers to Ourselves: Unsettled Minds and the Stories That Make Us)>에서 불과 여섯 살의 나이에 거식증으로 입원했던 경험을 들려준다.

거식증에 취약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촉발제' 혹은 '트리거'가 되는 사건인 듯하다. 아비브의 경우, 유대교의 속죄일을 지내면서 음식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비브는 "음식을 거부하기로 한 결정에는 종교적 에너지가 담겨 있었고, 순교의 기운마저 느껴졌다"고 썼다. 맥커디에게는 배역을 따내기 위해 2차 성징을 막아 더 어리고 날씬해 보이고 싶었던 11살의 아역 배우 시절, 거식증에 걸린 어머니가 '칼로리 제한'을 지시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프리먼에게 '트리거'는 체육 시간에 다리가 유난히 마른 친구 옆에 앉았던 경험이었다. 친구가 프리먼의 허벅지를 보며 "내 다리도 너처럼 평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프리먼은 책에서 "내 안에 검은 터널이 열렸고 나는 그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고 썼다. 그에게 '평범'이란 지루한 것이었다. "보통은 곧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이후 거식증은 프리먼의 정체성이 됐다. "제가 10대 청소년이었던 90년대에는 고스족, 스케이터, 펑크족 같은 선택지들이 있었죠. 하지만 저는 거식증을 택했습니다." 프리먼이 털어놓은 이야기다. 그의 병세는 빠르게 깊어져, 여러 차례의 입원으로 이어졌다.

한번 정립된 거식증 정체성은 병동과 같은 단체 생활환경에서 무심결에 강화되기도 한다. 의사로부터 새로운 행동 양식을 배운다는 애초의 입원 목적과 정반대로, 아비브와 프리먼 모두 병동에서 환자들끼리 서로의 행동을 따라 하며 섭식장애를 강화해 갔던 경험이 있다. 2016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많은 학교에 다니고,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를 둔 소녀들이 거식증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

이처럼 거식증에 사회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근거가 있기에, 소셜미디어가 트리거, 또는 악화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지난 1월, 뉴욕주 헤이스팅스 온 허드슨에 사는 한 여성이 메타와 틱톡, 그리고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역 신문 '리버타운스 엔터프라이즈(Rivertowns Enterprise)'의 보도에 따르면, 이 여성은 딸이 앱에서 운동과 식이요법 관련 계정을 팔로우하자 섭식장애 관련 게시물이 뜨기 시작했고, 이후 딸이 거식증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섭식장애 클리닉에서도 환자들에게 소셜미디어에서 다른 환자들과 친구를 맺지 말라고 권유한다. 서로 돕다 보면 회복에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경쟁 심리 때문에 예전의 나쁜 습관에 다시 빠지게 되는 경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 습관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깨지는지가 최근 거식증 연구의 핵심 분야인 것도 놀랍지 않다. 먹지 않는 행동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의식이자 덫이 된다. 아비브는 저서에 "결국에는 충동적인 결정이 추진력을 만들고, 되돌리기가 어려워진다"고 썼다. 프리먼의 거식증은 강박 장애로 인해 더욱 악화됐다.

"거식증은 집착적으로 칼로리를 계산한다는 점에서 매우 강박증적인 질환입니다. 저는 칼로리를 세는 루틴을 통해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꼈죠."

프리먼의 책에 따르면 일부 의사들은 거식증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 사이에 교차점이 있으며, 두 질환에 공통적으로 사고의 경직성이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도 유전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다. 2022년에 발표된 스웨덴의 한 연구에 따르면, 질환의 가족력을 통제한 후에도 섭식장애를 가진 어머니의 자녀는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및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유의미한 연관성을 갖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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