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라는 곳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의식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신 사람을 치료·보호하는 곳입니다. 다른 외상이나 질병 없이, 심하게 취하기만 했더라도 '치료'를 받을 필요는 있으니까요.
이런 곳이 서울에 4곳, 전국엔 무려 19곳이나 됩니다.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고요? 말이 응급의료센터지, 장소가 따로 마련된 것은 아닙니다.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응급환자를 치료하다가 주취자들이 실려오면 이들도 같이 케어해 주는 겁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경찰관이 한 명이나 두 명쯤 항상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주취자가 난동을 부릴 때를 대비해서죠. 당연하게도 의료진과 경찰, 구급대원은 모두 한 목소리로 주취자는 일반 환자보다 케어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합니다. 그중에서도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의학적 개입이 필요 없는 단순 주취자'를 어디로 보낼지에 대한 겁니다.
"의학적 개입이 필요 없는 주취자까지 받을 수 없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한 주취자응급의료센터의 의사에게서 메일이 한통 왔습니다.
만취상태로 쓰러져 있는 환자의 경우, 단순히 술을 많이 마신 것일 수도 있지만 뇌출혈 등의 의학적 문제가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기 때문에 머리 CT 등의 검사가 필요하기에 병원진료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프거나 다친 곳도 없고 의식도 떨어지지 않는데, 난폭행동을 보이는 주취자들을 병원으로 데리고 오는 문제들은 병원 현장에서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보호자라도 바로 확보가 된다면 경찰이 보호자를 통해 집으로 귀가시킬 수 있지만 보호자가 연락이 안 되거나 신원조회가 안 되는 경우(외국인 등) 경찰이 단순 주취자를 병원으로 데려오면 의료진과도 마찰이 생기고, 병원에서도 매우 난감합니다.
심지어 경찰이 신원 조회나 보호자 확보 등에 소극적인 경우도 많아, 병원 의료진들 입장에서는 '경찰이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며 경찰들과 자주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응급실 의료진들이 겪은 어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경찰은 의식은 있지만 난폭한 행동을 하고, 신원이나 가족의 전화번호조차 말하지 않는 주취자들을 병원으로 데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경찰이 단순히 무책임해서일까요?
애매하고 어려운 '주취자 보호조치' 규정경찰의 '주취자 보호조치 매뉴얼'을 보겠습니다.
단순 주취자는 의료기관 보호조치 대상이 아니며 단순 주취자와 의식이 없는 만취자를 구분하고, 의식이 없는 경우 호흡이나 심장박동을 확인해 의료기관에 후송하라
주취자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단순 주취자와 의식이 없는 만취자, 또 의식이 없는 경우 호흡과 심장 박동까지 확인해서 주취자를 어디로 보낼지 구분해야 합니다. 의료인이 아닌 경찰의 자의적 판단으로 현장에서 주취자를 구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최근에 경찰이 술 취한 사람을 집 앞에까지 데려다줬다가 동사하는 등 주취자가 숨지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이 판단이 더 중요하고, 더 어려워졌습니다. 혹시 몰라 병원 응급실로 호송하면 응급실에선 "의학적 개입이 필요 없다"라며 안 받아주기도 합니다. 병원에서 거절당한 주취자가 마지막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지구대나 파출소뿐입니다. 경찰들은 이들의 난동을 받아주며 술이 깨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왜 단순 주취자가 갈 곳이 없게 된 걸까요?
주취자 보호의 역사아주 예전엔 경찰서 안에 주취자 안정실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주취자를 한꺼번에 관리했는데, 외관이 유치장과 거의 흡사했고, 주취자에게도 이동의 자유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인권 논란이 불거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