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여학교 독극물 사건, '히잡 시위' 겨냥한 보복 추정


오프라인 대표 이미지 - SBS 뉴스

이란 히잡 시위 현장

지난해 말 이란 여학교 여러 곳에서 발생한 독극물 중독 사건은 히잡 의문사 사건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에 대한 보복성 공격으로 추정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유네스 파나히 이란 보건부 차관은 전날 "쿰에서 여러 학생이 독극물에 중독된 이후 일부 사람들이 모든 학교를, 특히 여학교를 폐쇄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관련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란 의회 보건위원회 의원 호마윤 사메이야 아자파바디 박사도 "쿰과 보루제르드 등 도시에서 벌어진 여학생들의 중독 사건은 누군가 고의로 벌인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작년 11월 이란의 성지 도시인 쿰을 비롯해 수도 테헤란, 북서부 아르데빌, 서부 보루제르드 등 여러 지역 내 학교 14여 곳에서 독극물 중독 사건이 발생해 여학생 최소 200명이 피해를 당했습니다.

이 학생들은 호흡기를 통해 독성 물질을 흡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부분은 치료를 받고 곧 회복했으나 일부는 중독 증상을 수개월째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이번 공격에 살충제에 들어가는 화합물인 유기인산염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서 이런 증상으로 치료했던 환자들은 농약에 노출된 인부들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국내외 극단주의 단체를 이용해 반정부 시위대를 위협하는 것이 이번 범행의 목적이었을 것"이라며 "범인들은 시위의 선두에 섰던 여학생들에게 복수하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인권 운동가 마시 알리네자드는 "이번 화학 공격은 히잡 의무 착용을 거부하고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베를린 장벽'을 흔들었던 용감한 여성들에 대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복수"라고 주장했습니다.

알리네자드는 유엔 등 외부 기관이 나서 이번 사건을 조사해야 한다면서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이 이번 독극물 테러를 규탄하고 하메네이 정권을 고립시킬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독극물 사건이 발생한 후 이란 여학생 일부는 등교를 거부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습니다.

쿰의 한 학교 교사는 학생 250명 중 50명만이 수업에 참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건에 분노한 학부모들은 학교 밖에서 "학교는 안전해야 한다"면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7월 마흐사 아미니(당시 22세)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가 의문사한 뒤 이란에서는 지금까지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란의 젊은 여성층은 '여성, 삶, 자유'라는 표어 아래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댓글
댓글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