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프리미엄

[스프] 김여정 무시한 '조선중앙 TV'의 편집

김여정 정면 얼굴이 한 번도 안 나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20일 담화를 통해, 북한 ICBM 발사에 대한 남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반박했습니다. 남한 전문가들의 구체적인 직책까지 거론하면서 ICBM 발사에 대한 남한 내 평가를 시시콜콜 반박했는데, 김여정의 주장이 납득이 가는 내용이냐를 떠나서 김여정의 담화 발표 자체에 의미를 두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김여정은 하루 전인 지난 19일에도 미국과 남한을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했는데, 이틀 연속 담화를 내면서 건재를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최근 김정은 총비서의 딸 주애에게 위상이 밀리고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김여정의 북한 내 역할에는 크게 이상이 없음을 보여줬다는 해석입니다.

관람석 뒤편 구석으로 밀린 김여정

그런데 김여정이 연속된 담화를 발표하기 직전인 지난 18일, 북한 매체들의 김여정에 대한 보도에서 다소 이례적인 부분이 포착됐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 18일 하루 전에 있었던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 간의 체육경기 소식을 보도했는데, 이 행사에는 김정은과 딸 주애, 김여정 등이 참석했습니다.

18일 오전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들에는 김정은과 딸 주애가 귀빈석 중앙에 앉은 모습들이 포착됐고, 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 9장 가운데 1장에는 귀빈석 중앙에 앉은 주애와 대비되듯 뒤편 구석에 앉아 있는 김여정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열병식을 전후해 김여정이 주애에게 밀려나는 듯한 모습이 관찰됐던 터라, 이때까지만 해도 김주애와 김여정의 서열관계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정도로 이해될 만했습니다.

오프라인 - SBS 뉴스
중앙에 앉은 주애와 뒤편 구석에 앉은 김여정이 대비된다. (출처 : 조선중앙통신 사진)
조선중앙 TV의 이례적인 김여정 편집

하지만, 18일 오후 조선중앙 TV가 보도한 동영상은 김여정에 대한 북한 매체들의 보도 태도가 상당히 달라졌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 TV는 김정은의 체육경기 관람 소식을 5분 40여 초의 동영상으로 보도했는데, 김정은이 딸 주애와 전용차에서 내려 간부들의 마중을 받으며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장면 등에서 김여정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여정은 관람석 전반을 촬영한 장면에서만 포착됐는데, 5분 40여 초의 동영상 동안 뒤편 구석에 앉은 김여정의 얼굴이 잡힌 것은 세 번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두 번은 앞사람 때문에 얼굴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조선중앙 TV가 김여정의 얼굴을 정면에서 촬영한 화면을 내보낸 것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또 조선중앙 TV 화면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 김여정의 옆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다른 간부들은 서로 붙어 앉은 것과 달리, 김여정은 뒤편의 가장 구석자리에 같이 얘기할 사람도 없이 홀로 앉은 것입니다.

오프라인 - SBS 뉴스
김여정 얼굴이 앞줄에 있는 김덕훈 총리에게 가려져 있다. (출처 : 조선중앙 TV 동영상 캡처)
오프라인 - SBS 뉴스
김여정 옆 자리가 비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 조선중앙 TV 동영상 캡처)
주요 인물이라면 촬영과 편집에서 배제되지 않아

김여정이 이른바 '백두혈통'으로 김정은의 여동생이라고는 하나, 직급이 노동당 부부장에 불과한 만큼 관람석의 주변에 앉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김여정의 북한 내 위상을 고려한다면 북한 TV가 화면에서 김여정을 이렇게 홀대할 수는 없습니다.

권력관계가 반영된 행사에서 촬영과 편집은 단순히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사장을 촬영하는 사람이나 편집하는 사람은 그 행사에서 주요 서열에 해당하는 사람들 위주로 촬영과 편집을 하게 됩니다. 이때 촬영자나 편집자는 행사장의 중앙이나 헤드테이블 착석자 같이 행사장에서 주요하게 대우받는 사람들만 주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앙 자리에 앉아있지 않더라도 주목해야 할 인물이라면 촬영자와 편집자가 이 인물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의 회장 아들이 말단 과장으로 입사해서 강당의 후미에 서 있을 경우, 사내 행사를 동영상으로 만드는 촬영자와 편집자는 회장 아들의 모습을 주요하게 촬영하고 편집할 때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북한은 김정은 일가의 의중에 따라 생사 여부가 갈릴 수도 있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북한 국영방송인 조선중앙 TV의 촬영, 편집자들이 김여정을 챙기지 못해 화면에서 김여정의 얼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김여정을 화면에서 무시해도 좋다는 상부의 지침 없이는 이런 편집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조선중앙 TV가 김여정을 화면에서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것, 이것은 열병식장에서 레드카펫을 밟으며 주인공 대접을 받은 주애와는 달리 식장 바깥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이 관찰됐던 김여정의 모습과 함께, 북한 내 김여정의 입지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갖게 합니다.

오프라인 - SBS 뉴스
댓글
댓글 표시하기
스브스프리미엄
기사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