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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투구게가 인간에게 전하는 메시지 "있을 때 잘해"

By 데보라 크라머 (뉴욕타임스 칼럼)


오프라인 - SBS 뉴스

*데보라 크라머는 철새 붉은가슴도요와 투구게에 관해 쓴 책 "The Narrow Edge"의 저자다.

인간은 투구게(horseshoe crab)한테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 독감 예방주사나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사람, 혹은 어렸을 때 아무 백신이라도 맞은 사람, 심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했거나 전고관절 대치술을 받은 사람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내독소(endotoxins)

를 검출하는 검사 덕분에 안전하게 백신을 접종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는데, 그 검사에 쓰이는 핵심적인 물질이 바로 투구게의 파란 피 속에 있다.

내독소는 의학계의 걱정거리다. 특정 박테리아의 세포벽에 달라붙어 있던 내독소는 박테리아가 분해되거나 죽을 때 세포벽에서 떨어져 나온다. 사람이 내독소에 오염되면 급격한 고열, 오한, 패혈성 쇼크에 시달리고,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백신 같은 주사용품, 스텐트나 인공 고관절 같은 임플란트 제품이 내독소에 오염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안전성 검사는 1년에 7천만 번 정도 이뤄진다. 이 검사에 쓰이는 리물루스 아메보사이트 라이세이트(Limulus Amebocyte Lysate, LAL)라는 물질이 바로 투구게의 피에 든 성분이다. 정확히는 투구게의 혈액 세포에서 추출한 물질인데, 이 라이세이트 물질은 극소량의 내독소에도 반응한다. 투구게 혈액 속 라이세이트는 지금까지 자연에서 발견된 물질 가운데 내독소에 반응하는 유일한 물질이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투구게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 제약회사 임원은 AFP에 "라이세이트의 수요는 사실상 무한한데, 물질을 만들 수 있는 자원은 유한하니, 두 가지를 다 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넘치는 수요를 만족하지 못하거나, 자원이 고갈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투구게의 혈액에 든 내독소에 반응하는 효소를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재조합 C인자(rFC, recombinant factor C)다. 재조합 C인자는 2003년 처음 출시됐다. 이후 10년이 지난 2013년에 두 번째 업체가 재조합 C인자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또다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 약전(藥典)에는 재조합 C인자에 관한 표준이 확립되지 않았다. 약전이란 정부 또는 비영리 기관이 과학적 데이터를 토대로 약물의 화학적 특성, 성분, 순도, 조제법과 사용량 등을 정해놓은 문서를 뜻한다. 재조합 C인자는 발명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평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미국 약전은 2019년 이후 재조합 C인자와 관련해 두 차례 표준을 제안했었다. 첫 번째 제안은 철회됐고, 2020년에 나온 두 번째 제안에 대해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심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미국 약전 측에서 해당 심사위원회를 돌연

해산

했다. 당시 미국 약전은 "위원회의 기본적인 구성이 서로 생산적으로 협업하며 표준을 세우는 작업을 진행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된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미국 약전은 최근 전문가 심사위원회를 새로 꾸렸다. 지난주 처음으로 모인 위원회가 부디 재조합 C인자에 관한 합당한 표준을 마련하기 바란다. 그래야 약전에 표준도 마련되지 않은 검사를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서 해가며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온 제약회사들도 숨통이 좀 트일 것이다. 미국 약전의 최고과학자(CSO, chief science officer) 잽 베네마도 "재조합 C인자 표준 제정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위원회가 "리물루스 아메보사이트 라이세이트의 대체 성분 표준을 정하기 위해 필요한 과학적 근거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최대한 취합하고 경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구게는 지난 4억 7,500만 년 동안

다섯 차례의 대량 멸종

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인간의 안전을 위해 남용된 탓에 오늘날 투구게는 멸종위기종이 되고 말았다.

전 세계 야생 동식물의 개체수를 추적하고 관리하는 국제자연보호연맹(IUCN, International Union for the Conservation of Nature)에 따르면, 아시아에서는 투구게가 혈액뿐 아니라 식용으로도 인기가 있어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 투구게 개체수가 급감했고, 베트남에서도 개체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의 투구게 개체수도 줄어들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속도가 느리다.

미국에서는 매년 투구게 어획량이 140만 마리 정도인데, 이 가운데 절반은 미끼로 쓰인다. 제약회사들이 나머지 70만 마리를 사서 피를 뽑아 내독소 검출 검사용 시약을 만들고, 투구게는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나 피를 뽑는 과정에서 투구게의 30%가 죽고, 바다로 돌아간 투구게도 대부분 다시 자연에서 번식하지 못한다.

국제자연보호연맹은 미국 동북부 연안에서 투구게가 멸종 위기에 처했으며, 그 밖의 동부 연안 전체에서도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여 년간 동부 연안 주들이 다양한 어획 규제를 시행했지만, 투구게의 개체수는 끝내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투구게의 개체수가 줄자 철새들도 영향을 받았다. 붉은가슴도요가 대표적인 예다. 붉은가슴도요는 남아메리카에서도 최남단인 티에라 델 푸에고에서 북극까지 이동하는 길에 봄철에 미국 동부 연안에 들른다. 사우스캐롤라이나 해변부터 델라웨어만에 이르는 해변에 사는 투구게들은 봄철에 알을 낳는다. 영양소가 풍부한 투구게의 알은 철새들의 중요한 먹이다.

투구게를 보존하고, 나아가 투구게가 포함된 먹이사슬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투구게를 미끼로 쓰려고 남획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1991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가 관련 법을 제정했고, 2008년엔 뉴저지주도 비슷한 법을 만들었다.

또한, 미국 약전은 서둘러 재조합 C인자 관련 표준을 제정해야 한다. 미국 약전에서의 논의가 지지부진한 사이 유럽 약전은 재조합 C인자 사용을 승인했고, 일본 규제당국도 재조합 C인자 사용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다.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생물학자 제이 볼든은 2013년부터 식품의약국에서 재조합 C인자 사용을 승인받고자 노력해 왔다. 조류학자이기도 한 볼든은 투구게의 개체수가 줄고, 그로 인해 붉은가슴도요처럼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새들이 위협받는 상황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 일라이 릴리와 사노피파스퇴르(Sanofi Pasteur), 화이자(Pfizer), 로슈(Roche) 등 제약회사들은 그동안 재조합 C인자가 내독소 검출 검사에 쓰기에 투구게의 핏속에 있는 라이세이트 성분 못지않게 효과가 있거나 혹은 더 뛰어나다는 걸 입증하는 데이터를 제출해 왔다. 현재 일라이 릴리는 의약품 제조 공장 여덟 곳에서 재조합 C인자를 사용해 주사 약품 등의 안전성 검사를 하고 있다.

사노피파스퇴르와 화이자, 로슈도 일라이 릴리와 마찬가지로 투구게의 개체수 감소를 우려하고 있으며, 재조합 C인자 사용을 꾸준히 늘려 왔다. 화이자의 네드 모지어 부사장은 미국 약전이 재조합 C인자 관련 표준을 만들어 사용을 승인하면, "신약을 개발, 출시할 때마다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기 위해 안전성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문서화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몇 주나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의 모든 제약회사가 미국 약전의 결정을 고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이오약품 관련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일하다 은퇴한 크리스토퍼 얼은 미국 약전이 재조합 C인자를 투구게 피에서 뽑은 성분의 대체재로 쓰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의약 분야의 모든 합성검사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여러 바이오의약품 회사나 바이오테크 회사들이 재조합 C인자를 이용해 지금의 안전성 검사를 대체하고 싶어 해요. 미국 약전이 행동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지금 상황이 이렇다. 곧 투구게의 산란기인 봄이 온다. 미국 동부 해안가 곳곳에는 투구게들이 매년 그렇듯 알을 낳으려고 몰려들 것이다. 본능에 따라 알을 낳으러 온 투구게의 운명은 어부에게 잡혀 미끼가 되거나 제약회사의 저인망 어선에 의해 해저에서 끌어올려져 피를 뽑히고 버려지는 것 중 하나다.

대형 제약회사 로슈에서 재조합 C인자를 이용한 합성검사를 관장하는 미생물학자 에블린 데어는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고생물이나 다름없는 투구게에 내독소 검출 검사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지금의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썼다. 그는 이어 "내독소 검출 검사에 재조합 C인자를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하는 일은 투구게와 투구게에 의존하는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약전이 새로운 전문가 심사위원회를 꾸린 지금 이 순간에도 투구게는 미국 동부 해안 곳곳에서 중대한 위협을 맞닥뜨렸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어부들이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해변에서 투구게를 잡아 피를 뽑아 팔고 있다. 뉴욕 롱아일랜드 해변에서 지난해 봄과 여름에 투구게를 관찰한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곳에서 투구게가 낳은 알은 지난 20년 이래 가장 적었다. 델라웨어만에서도 더는 투구게알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1990년대에 미국 동부 연안의 투구게 개체 수는 수백만 마리가 줄었다. 자연히 동부 연안을 찾던 붉은가슴도요의 숫자도 급감했고,

미국 야생동물보호청

은 붉은가슴도요를 '개체수 감소 위기종'으로 지정했다. 마찬가지로 투구게의 산란 규모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뉴저지 해안가에서는 도요새를 비롯해 투구게의 알을 먹이로 삼는 철새들의 숫자가 1980년 이후 85%나 줄었다.

공중보건을 위해 제약회사들은 내독소 검출 검사를 아무런 제한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검사에 필요한 물질을 야생동물에서만 얻을 수 있다면, 그 방식은 위험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투구게의 숫자는 유한하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 숫자가 더 줄지 않도록 우리가 지켜줘야 한다.

원문 :

When the Horseshoe Crabs Are Gone, We'll Be in Trouble,

(c) 2023 The New York Times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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