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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연착륙도, 경착륙도 아니다…착륙 못 하는(NO Landing) 세계 경제

"낙관론을 기대하기에는 여전히 변수가 많다."


오프라인 - SBS 뉴스
변하지 않는 메시지 vs 새로 등장한 메시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금리 인상을 발표할 때마다 똑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이언트 스텝'을 발표할 때나 '빅 스텝'을 발표할 때도, 올해 첫 FOMC 회의에서 0.25% 포인트 기준금리 상향을 발표할 때 역시,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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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폭등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열심히 일해서 받은 월급으로 필수적인 재화나 서비스 비용을 감당 못하게 될 것이란 점을 경고하는 겁니다. 이처럼 변하지 않는 메시지도 있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메시지도 있습니다. 'Disinflation'(인플레이션 둔화)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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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이 인플레이션 둔화를 공식적으로 언급하면서, 미국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지지 않고 인플레이션 국면을 극복할 수 있다는 '연착륙(Soft-Landing)'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습니다. 연착륙에 성공만 한다면, 미국 경제가 '골디락스'(높은 성장에도 물가는 오르지 않는 이상적인 경제 상황)에 이를 것이란 장밋빛 예상도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둔화를 선언한 지 이틀 만에 나온 미국의 1월 고용지표는 변수가 됐습니다. 실업률이 3.4%까지 떨어진 가운데 신규 고용은 시장 예상의 3배에 달하는 51만 7천 건이나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일자리는 마구 생겨나는 데, 일할 사람은 부족한 상황이고, 이렇게 고용 시장에서 수급 불균형 현상이 나타나면 임금은 높아지고 임금이 반영되는 각종 서비스 가격도 함께 상승합니다. 올해만큼은 금리는 조금만 오르고 물가는 잡히길 기대하던 시장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지표가 나온 것입니다.

제자리걸음

지난달 미국의 고용 지표는 지난해 7월의 고용 지표와 여러 측면에서 비슷합니다. 당시에도 신규 일자리가 52만 8천 개나 생겨났는데, 이는 시장 예상치를 2배나 뛰어넘는 수치였습니다. 또한, 실업률은 3.5%에 불과해 지난달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일자리는 계속해서 생겨나는데, 구직자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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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이후 월별 신규 고용은 점차 줄었고 물가도 고점을 찍고 서서히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금리도 2% 포인트나 높아졌습니다.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 둔화를 인정할 만한 여러 조건들이 갖춰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용 시장은 6개월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되니 시장에선 의구심이 생겨났습니다. 랜딩 기어를 내리고 활주로에 다다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려다보니 활주로는 어디에 있는지 당최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가는 치솟지만 경기는 심각하게 침체되는 경착륙(Hard-Landing) 시나리오를 꺼내기에도 섣부른 감이 있습니다. '연착륙 아니면 경착륙' 식의 이분법적 사고로는 지금의 시장을 이해하기는 어려웠고, 그 결과 'No-Landing'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등장했습니다.

NO-Landing?!

긴축 조치에도 경제가 크게 침체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가 상승도 둔화되지 않아 연준이 높은 기준금리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상황을 'NO-Landing'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NO-Landing'이 시장에 의미하는 바는 불확실성입니다. 비행기가 마땅히 착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든 착륙하지 못해 기다리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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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Landing'은 경제학적으로 확립된 용어는 아닙니다. 전례 없는 시장 상황을 표현하기 찾아낸 표현일 뿐입니다. 서로 상반된 가능성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특정 사건이나 정부의 개입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어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는 위기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위기들과 지금은 다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예측해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지난 위기들과 지금은 다른 점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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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이야기하면, 그동안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돈을 풀었다면 이번에는 시장에 푼 돈 때문에 위기가 발생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코로나 팬데믹 초기 '락다운(봉쇄)'으로 경제는 마비됐고 실업률은 14.5%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때 미국이 택한 조치는 무제한적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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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준비제도가 자신들이 새롭게 찍어낸 화폐로 미국 국채를 사들이면 재무부는 이를 토대로 경기 부양 조치를 취합니다. 또, 모기지를 대상 자산으로 삼아 발행한 증권, MBS(모기지저당증권)도 사들여 은행에 추가 대출 여력을 제공했습니다. 유동 위기를 겪는 기업의 어음도 매입해 기업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020년 3월 4.2조 달러에 달했던 연준의 총 자산 규모는 불과 3개월 만에 7.1조 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3개월 만에 약 3조 달러가 시장에 풀린 겁니다.

그 이후에도 양적 완화 조치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새롭게 찍어낸 화폐는 계속해서 시장에 풀렸고 2년 만인 지난해 3월 총자산은 8.9조 달러까지 늘어났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0.9조 달러에 불과했던 총자산은 6년여 동안 4.5조 달러까지 늘어났던 점을 고려하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전례 없는 양의 돈이 시장에 공급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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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federalreserve.gov/monetarypolicy/bst_recenttrends.htm

시장에 막대한 양의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개인 소득은 1년 만에 약 30%나 증가했고 소비 지출도 늘어났습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본격화한 공급망 문제와 유가 폭등까지 더해지면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3월부터 연준은 경기가 침체되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가령, 기준 금리 인상으로 대출 금리가 높아지면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가전가구에 대한 수요도 함께 줄면서 상품 가격도 자연스럽게 떨어집니다. 그러나 닥터둠 루비니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이미 너무 많이 풀려버린 유동성 때문에 기준 금리가 급격히 인상돼도 이미 돈을 충분히 번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지 않았습니다. 소비 지출이 유지되니까 인플레이션도 쉽사리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금리 인상을 동반한 긴축 조치에도 미국 경제가 어디로든 착륙하지 못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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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fred.stlouisfed.org/series/DSPIC96 , 출처 : https://fred.stlouisfed.org/series/PCE
"사라진 노동자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고용 시장에서 발생한 가시적인 변화는 바로 노동 참여율입니다. 성인 인구 가운데 코로나 팬데믹 기간 감염으로 인한 후유증이나 가족 돌봄 등의 이유로 노동 시장을 떠난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노동 참여율이 하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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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팬데믹 이전 63.4%에 달했던 노동참여율은 코로나 유행 초기 60.2%까지 떨어졌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 지난달 62.4%까지 회복됐지만 여전히 1% 포인트 차이를 보입니다. 고작 1% 포인트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16세 이상 노동 가능 인구가 2억 6천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약 260만 명이 노동 시장에서 사라진 셈입니다. 이는 파월 의장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일자리 수급 불균형의 구조적 이유 중 하나입니다.

지난달 전미경제연구소에서 나온 연구 자료는 또 다른 구조적 이유를 제시합니다.(▶

관련 자료 보기

) 신용석 워싱턴대 경제학과 교수 등 연구진은 남성 근로자들의 근무 시간이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유의미하게 줄어들었음을 찾아냈습니다. 특히, 이들은 대학 교육을 받은 고학력 남성들이면서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받았던 고소득 남성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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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팬데믹을 거치며 노동 참여율은 감소하고, 고학력‧고소득 남성 근로자의 노동 시간도 줄면서 고용 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기준 금리가 4.75%까지 인상됐음에도 고용 시장은 많은 신규 일자리와 낮은 실업률을 선보이며 완전 고용에 가깝게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금리 인상이 언제쯤 마무리될지 가늠하기 어려워지면서 미국 경제는 NO-Landing이라는 제3의 시나리오까지 고려하게 됐습니다.

비착륙이냐, 무착륙이냐

과도한 유동성에 따른 소비 지출과 고용 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미국 경제의 착륙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NO Landing을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무엇이라 표현하는 게 맞을까요. 상황에 대한 평가에 따라 용어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열됐던 시장이 잡음 없이 식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표면 아래서 여전히 뜨겁게 시장이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면 NO Landing을 착륙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니었던 '비착륙'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비착륙 상태가 장기화한다면 기준 금리는 우리 예상보다 더 높게, 더 오래 유지되면서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점점 높아집니다.

낙관론도 존재합니다. 경기 침체(경착륙 시나리오)와 골디락스(연착륙 시나리오)의 중간 어디쯤에서 나름의 균형점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는 겁니다. 때문에, 현재 상황을 굳이 착륙할 필요가 없는 '무착륙' 상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무착륙의 관점에서 보면, 인플레이션이 길어지더라도 소비 지출과 고용 시장이 지금처럼만 버텨 준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물가가 올라 금리도 오르지만, 일자리도 늘고 임금도 덩달아 높아지는 나름의 균형점을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과하고 있는 것 :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

랜딩 기어는 내렸지만 착륙하지 못하는 비착륙 상태로 받아들이든, 아니면 나름의 균형점을 찾아 비행을 이어가는 무착륙 상태로 이해하든,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양적 긴축 절차가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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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의 총자산은 지난해 4월 8조 9,654억 달러까지 불어나며 고점을 찍은 뒤 양적 긴축에 들어가면서 이달 초에는 8조 4,353억 달러까지 줄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9월부터는 긴축 속도를 높여 지금까지 자산 약 5,300억 달러가 줄어들었습니다. 통상 양적 긴축 절차에 들어가면 연준은 채권의 만기를 연장하지 않거나 시장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풀었던 유동성을 흡수합니다. 유동성을 다시 회수해야 향후 다른 위기 상황에서 양적 완화 조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적 긴축에 들어가 채권 만기가 도래하면, 국무부‧은행‧기업 등은 연준에 빌렸던 돈을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합니다. 각 경제 주체들은 자기 자본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시장에서 새롭게 돈을 빌려서 갚는 게 더 일반적입니다. 때문에, 연준의 유동성 회수 작업이 본격화할 경우 급하게 시장에서 돈을 빌리려는 은행이나 기업 등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미국 시중 은행들의 연방 기금 일일 차입금이 1,200억 달러까지 치솟아 201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연준의 양적 긴축으로 유동성 압박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너도나도 돈을 빌리려다 보면 당연히 금리는 높아집니다. 양적 긴축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금리 인상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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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미 연준은 2.5조 달러 규모의 양적 긴축은 기준 금리를 0.5% 인상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연구 결과를 내놨습니다. 한 달 뒤 미 애틀랜타 연준은 조금 더 세분화한 연구 결과를 내놨습니다. 평상시 2.2조 달러 규모의 양적 긴축은 기준 금리를 0.29% 인상하는 것과 같지만, 불확실성이 극대화한 시기에는 기준 금리를 0.74% 인상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추정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지난 몇 개월 간 이뤄진 5,300억 달러 규모의 긴축은 시장에 큰 부담을 주지는 않았을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바다 건너 유럽에서는 더 공격적인 추정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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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twitter.com/SolomonTadesse/status/1546672691201146882

1,000억 달러 규모의 양적 긴축이 기준 금리를 0.12% 포인트 인상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가정하면, 지금까지 5,300억 달러 규모의 유동성을 흡수함으로써 기준 금리 0.6% 포인트 인상 효과가 시장에 누적됐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실제 시장에서 체감하는 유동성 압박은 기준 금리가 5.35%(4.75% + 0.6%) 수준일 때와 같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나친 도식화일 수도 있지만, 연준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시장의 유동성을 회수한다면 시장이 체감하는 기준 금리는 얼마나 더 높아질까요?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연준은 최소 4조 달러를 시장에서 단계적으로 흡수해야 합니다. 솔로몬 타데스의 추정을 따르면, 이런 양적 긴축 과정은 기준 금리를 4.8% 포인트 끌어올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다음 달 나올 고용 및 소비, 물가 지표가 완전히 안정세에 접어들어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4.75% 수준에서 동결되고 그 상태로 양적 긴축이 완료된다고 보면, 시장에서 체감하는 기준 금리는 9.5% 수준에 이릅니다.

새로운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야

NO Landing이 시장에서 무엇을 의미하든, 시장에는 여러 변수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양적 긴축이 시장에 주는 영향입니다. 금리 인상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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