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추노 실사판' 노비 곱덕의 야반도주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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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비매매와 관련된 조선 시대 고문서

'1784년 3월 노비로 들인 최곳대의 삼녀 곱덕이 1789년 8월 25일(음력) 밤을 틈타 도주한바 오는 10월 5일까지 곱덕을 붙잡아 오겠다. (노비 매매 과정에서) 신뢰를 저버릴 일을 했다면 관청에 고발이 돼 엄한 형벌을 받게 되더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김도형 전북대 국문학과 교수가 오늘(9일) 공개한 전북대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고창 함양 오 씨 문중의 고문서에서 확인된 조선 시대 생활상의 한 대목입니다.

이 문서는 노비 매매를 중개한 거간꾼 오재삼(吳再三)이 1789년 9월 3일 오 씨 문중 대리인인 노비 운노미(雲老味)에게 써 준 약정 문서와 같은 수기(手記)입니다.

이 짧은 고문서에는 조선 시대의 노비 매매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또 노비가 도망갔을 때 어떻게 조치했는지에 대한 단서가 담겨 있습니다.

배우 장혁이 주연한 인기 드라마 '추노'의 한 장면과도 같은 조선 시대 노비 매매와 도주 사건이 약 240년 전 고창에서 실재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거간꾼인 오재삼은 1784년 3월 11일 오 씨 문중의 노비 매매에 보증인으로 참여해 거래를 성사시켰으나 5년 뒤 매매한 노비가 도망을 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오 씨 문중의 다른 고문서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사건의 정황이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양인이었던 곱덕의 아버지 최곳대는 1784년 3월 11일 거간꾼 오재삼의 중개로 자매문기(自賣文記·스스로를 파는 문서)를 써 셋째 딸 곱덕을 오 씨 문중 노비로 보냅니다.

작성된 매매 문서를 보면 최곳대의 집안은 지난해(1783년) 흉년으로 집안 전체가 굶어 죽을 형편에 놓이게 됐고, 셋째 딸 곱덕을 오 씨 문중에 싼값에 매매해 곤궁을 면하고자 했습니다.

문서에 적힌 '흉년으로 수많은 식구가 오랫동안 부황이 들어 살길이 막막하니 굶주려 함께 죽는 것보다는 여식을 싼값으로 팔아서 생을 도모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에 삼녀 곱덕을 (오생원)의 집에 뒤에 태어날 아이와 함께 영영 방매합니다'라는 문구는 남은 식구들을 위해 여식을 노비로 보내야 했던 조선 시대 가장의 착잡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김 교수는 "곱덕의 도망과 매매 등에 관한 문서를 살펴보면 곱덕은 흉년으로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운 형편인 집안 식구들을 위해 싼값에 노비로 팔려 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후 어떤 연유에서 인지 5년 만에 야반도주를 하고, 추노꾼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거간꾼 오재삼의 다짐은 결연했지만, 도주한 곱덕은 추노꾼의 손에 잡히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전북대박물관이 소장 중인 오 씨 문중의 호적단자(집안 구성원과 노비 목록을 기록한 문서)에는 곱덕이 1879년까지 '도망 노비'로 기재돼 있습니다.

이로 미뤄 18세에 도주한 곱덕은 108세가 되는 해까지도 붙잡히지 않은 것입니다.

김 교수는 "언뜻 보면 실용적인 문서로 보이는 노비 매매 문서, 호적단자, 약정 문서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연구하면 조선 시대 생활상과 특정 인물에 대한 미시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면서 "또 이런 연구 자료는 문화 콘텐츠의 기초 자료로서 가치도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북대박물관은 국내 대학 중 가장 많은 고문서를 소장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전북대 박물관이 소장한 15∼20세기 조선 시대 고문서만 해도 2만5천여 점에 달합니다.

이 고문서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전북대 사학과를 주축으로 벌인 '전북 지역 고문서 조사' 과정에서 기증과 기탁, 구매를 통해 박물관에 보관됐습니다.

김 교수는 "곱덕의 이야기는 고문서에 찾을 수 있는 극히 일부 이야기"라며 "고문서에는 조선시대판 병역 비리, 집안 재산 싸움, 고단했던 과부의 삶 등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 자료가 숨겨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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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덕과 관련된 고창 함양 오 씨 문중 문서들

(사진=전북대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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